[맛있는 말씀해설] “네가 하는 일을 여호와께 맡겨라 …”(잠 16:3).
맛있는 말씀해설
“네가 하는 일을 여호와께 맡겨라 …”(잠 16:3).
성경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속상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맡겨드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 일상의 계획이 잘 안되는 이유가 나의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잠언> 16장 3절에서 동사 ‘맡긴다’의 뜻과 ‘이루어지다’의 의미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맡기다’의 ‘갈랄(히)’은 문자적으로 ‘굴리다’, ‘옮기다’, ‘뒹굴다’는 의미다. 내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넘겨주는 ‘주권 이양’과 같다. ‘이루어지다’의 ‘이코누(히)’의 의미는 결과로써 ‘세워진다’, ‘확립되다’, ‘견고하다’는 신적 수동태를 나타낸다. 결국, 하나님께 맡겨드린다는 뜻은 일반은총(노력)과 특별은총(은혜)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는 노력과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을 나타낸다. 그것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는 <잠언> 16장 전체의 대전제이다(1절).
돌을 한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굴리는 것처럼, 나의 인간적인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과정이 쉽지 않다. 이 의미에서 믿음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의미로써 ‘겸손하라’는 것이고(18~19절),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며(20절),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라(16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구체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읽게 되고, 경건생활을 하면서 내면의 동기를 살피게 된다.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그의 삶을 섬세하게 인도해 주신다(9절).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사고, 경영 가운데 깊이 간섭하셔서 그분의 뜻대로 응답해 주신다. 그것이 여호와께 맡기라는 온전한 의미이다.
사람의 경영과 행사가 자신의 노력이라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신적 수동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신적 수동태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나타내는 용어다. 하나님이 그분을 의지하는 자를 잘못 인도하지 않으실 것이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선하신 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델레마(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뜻)’와 ‘뷸레마(하나님의 변하는 계획)’다.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절대적인 뜻이 변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뜻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계획은 바뀔 수도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최선(노력)을 다하고, 그 결과(은혜)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비록 드러나는 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서 전화위복과 인생 역전 예들이 정말 많다. 나쁜 상황에 몰린 모세가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보내져야 했을 때 그의 부모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했다(출 2:1~10절). 모리아산의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 했을 때 심적으로 혼란스러웠지만,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창 22:1~14).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가 다시 아들을 살리실 것을 확신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마 26:36~46)와 바울과 실라의 빌립보 감옥(행 16:27~40)도 다르지 않았다.
‘네가 하는 일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는 나의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주기도문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기도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 행위까지 알고 계시는 창조주이시고, 인격적인 분임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시 139:1~4).
/ 김상수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잠언> 16장 3절에서 동사 ‘맡긴다’의 뜻과 ‘이루어지다’의 의미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맡기다’의 ‘갈랄(히)’은 문자적으로 ‘굴리다’, ‘옮기다’, ‘뒹굴다’는 의미다. 내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넘겨주는 ‘주권 이양’과 같다. ‘이루어지다’의 ‘이코누(히)’의 의미는 결과로써 ‘세워진다’, ‘확립되다’, ‘견고하다’는 신적 수동태를 나타낸다. 결국, 하나님께 맡겨드린다는 뜻은 일반은총(노력)과 특별은총(은혜)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는 노력과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을 나타낸다. 그것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는 <잠언> 16장 전체의 대전제이다(1절).
돌을 한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굴리는 것처럼, 나의 인간적인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과정이 쉽지 않다. 이 의미에서 믿음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의미로써 ‘겸손하라’는 것이고(18~19절),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며(20절),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라(16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구체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읽게 되고, 경건생활을 하면서 내면의 동기를 살피게 된다.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그의 삶을 섬세하게 인도해 주신다(9절).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사고, 경영 가운데 깊이 간섭하셔서 그분의 뜻대로 응답해 주신다. 그것이 여호와께 맡기라는 온전한 의미이다.
사람의 경영과 행사가 자신의 노력이라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신적 수동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신적 수동태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나타내는 용어다. 하나님이 그분을 의지하는 자를 잘못 인도하지 않으실 것이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선하신 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델레마(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뜻)’와 ‘뷸레마(하나님의 변하는 계획)’다.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절대적인 뜻이 변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뜻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계획은 바뀔 수도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최선(노력)을 다하고, 그 결과(은혜)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비록 드러나는 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서 전화위복과 인생 역전 예들이 정말 많다. 나쁜 상황에 몰린 모세가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보내져야 했을 때 그의 부모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했다(출 2:1~10절). 모리아산의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 했을 때 심적으로 혼란스러웠지만,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창 22:1~14).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가 다시 아들을 살리실 것을 확신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마 26:36~46)와 바울과 실라의 빌립보 감옥(행 16:27~40)도 다르지 않았다.
‘네가 하는 일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는 나의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주기도문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기도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 행위까지 알고 계시는 창조주이시고, 인격적인 분임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시 139:1~4).
/ 김상수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