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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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온누리 5주년 축하 예배 드려

특송·삶에 변화 준 간증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  지난 4월 9일(주일) 동경 온누리교회 창립 5주년 기념예배는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예배였다.자원하는 마음으로 찬양팀을 구성하여 남성찬양단, 여성찬양단이 특송을 했고, 일본어예배, 한국어 예배 때 코다이라 장로를 비롯해 각각 두 명씩 간증을 하여 지난 5년간 자신을 변화시키고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감사 드렸다.꼬깔모자를 쓴 주일학교 학생들이 나와 리더십과 함께 케이크의 촛불을 끄며 동경 온누리교회가 다섯살이 된 것을 축하 했다. 그 동안 수고하신 목사님, 사모님께 감사의 꽃다발과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도 있었다.동경 온누리교회에 있다 미국으로 간 한 성도는 5주년 기념예배를 위해 일부러 찾아 주기도 했다. 동경 온누리교회는 2001년 4월 7일 영적 불모지로 불리는 일본 동경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예배를 시작하여 이제 어느덧 성도 수 2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새 신자 수가 급속히 늘어 나고 있으며, 큐티사역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예배 후면 자연스레 그룹을 이루어 큐티 나눔을 시작한다.지금까지 동경 온누리교회를 이끌어 오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담대히 고백하며, 모든 영광을 그분께 돌려 드린다.  / 김향선 선교사(동경 온누리교회)▲ 주일학교 학생들과 리더십들이 함께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며 동경온누리교회 5주년을 축하 했다.   동경 온누리교회 5주년 예배 간증 “교회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코다이라 노리히로 장로 저는 토치기현 토치기시의 전통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메이지 천황, 쇼와 천왕과 친분이 있어 천왕별장에서 지내며, 쇼와 천왕과 함께 등산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의 시련으로 재벌해체를 겪고, 제2차 농지개방화로 인해 지방에 소유하고 있던 모든 토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되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저희 부모님은 큰 상처를 받고, 자존감을 상실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제 위로 누나가 두 명 있지만 제가 장남이었기에 부모님은 제게 기대가 컸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커갈수록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인생은 대체 뭔가? 인생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존재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런 것들만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께 인생의 의미를 여쭤봤지만, 그 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유명 대학에 몇 명을 보내느냐가 선생님들끼리 경쟁 목표였던 학교에 실망한 저는 공부는 안하고 소설만 읽었습니다. 대학 시험도 거부했습니다.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으면서도 놀기만 하는 제게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외국 유학을 권유해 주셨고, 그렇게 해서 저는 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이 중국, 북한과 같은 수준이며 거리에 자전거만 다닐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한국은 경제 성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저는 같은 얼굴을 한 인간이 사고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감동받은 것은 명동에서 반신불구 청년이 팔다리에 고무를 대고, 땅은 기면서 껌을 파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강인한 삶을 보며 ‘이게 사는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온실 속에서 자라왔는지 깨달았습니다. 한국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도 체험하게 되었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한나도 만나게 되고, 두 명의 자식도 얻었습니다. 한국은 저의 인생의 제 2의 고향이라고 해도 틀림 없습니다.그러나 일본에 적응하고, 의사가 되고, 내가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고 보니, “너는 의사 아들이니 제대로 해라”, “이런 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생 성공 못 한다” 하고 내 아들에게 똑 같은 것을 강요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사회에서는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했습니다. 아들과 많이 부딪혔습니다. 도대체 제가 잘못된 건지 아들이 잘못된 건지 고민한 적도 많았습니다.그때 장재윤 목사님께서 ‘아이들에게 부탁하는 말투로 이야기 하십시오, 명령조로 하면 안됩니다’ 라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아들의 인생은 아들의 인생이라고 생각을 바꾸고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말투도 바꿈으로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고교시절 때 동창 2명이 자살을 했었습니다. 매우 뛰어난 아이들이었지만, 공부에 대한 압박이 대단했었습니다. 저는 전철로 통학을 했었는데, 매일 누군가가 뛰어들어 전차가 멈춥니다. 어떤 날은 아침 저녁으로 전철이 멈춥니다. 일본인에서 1년에 3만 2천명이 자살을 합니다. 이런 현실이 어떻게 문명고도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주신 참 자유 맛 봐 제가 받아 온 교육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를 내기 위해 목적과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옳다고 생각했는데, 제 그런 생각이 저를 옳아 매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신념을 갖지 않는 것을 신념으로 하고자 합니다. 신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제 자신의 신념,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니 지금은 자유롭습니다. 교회도 사회와 같이 교회 안에 율법이 생기고, 조직이 생겨 어느덧 목사님 중심으로 피라미드가 생겨나 회사와 같은 교회도 많습니다. 결국 그 안에서 인간적인 목적으로 가는 것에 상처 받기도 합니다. 저도 여러 교회를 다녀봤지만 온누리를 만나서, 하용조 목사님과 장재윤 목사님을 만남으로 결과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통해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일본인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일본인의 가치관이 바뀌고, 자살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지난 3주년 기념 예배 때 1부 예배 대표기도를 부탁 받았는데 그날따라 늦잠도 자고, 교통혼잡으로 대표 기도 시간에 맞추지 못했습니다. 송구스런 마음과 죄책감에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 “죄송합니다” 라고 했을 때 “괜찮습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무 짧은 대답에 놀라기도 했지만, 사람의 실패에 대해서 바로 정죄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대해주는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일본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율법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을 전함으로 인해서 일본은 크게 변할 것입니다. 일본인은 시킨 것을 반드시 지키는 국민, 율법적인 국민입니다. 그런 면을 넘어서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 자유를 맛본 일본인은 주님을 떠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도 기뻐서 이 교회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분이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5주년인데 단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이 소식을 많은 일본인에게 증거하면 일본 구석구석에 그리스도의 문화가 뿌리 내리고, 일본이 더 멋진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