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

마태복음 13장 18절~23절

이재훈 목사

 

좋지 않은 밭에도 씨앗을 뿌렸던 농부처럼 우리도 누군가가 변화될 수 있다고  믿고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합니다.그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포기하지 마십시오.  열매 맺는 좋은 흙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가르쳐주신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이 방법을 비유(Parable)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씨 뿌리는 농부

 

어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떨어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새들의 모이가 되었습니다. 어떤 씨는 겉은 흙인데 속에 바윗돌이 많아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어떤 씨는 흙은 좋은데 가시덤불로 덮여 있어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말씀이 먼저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다스립니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흙에 비유하신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스립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최초의 하나님 나라도 말씀으로 시작되었고, 금지명령도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도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읽으면서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가시덤불이 자라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여러분, 이 농부가 도대체 조심성이 있는 것일까요. 조심성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오죽하면 씨를 길가에 뿌리고, 돌밭에 뿌리고, 가시덤불에 뿌리겠습니까.

잘 개발된 농지에서 씨를 뿌리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농경지 사정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농경지의 대부분이 척박한 산지에 있었습니다. 땅 속에는 돌도 많았습니다. 겉은 흙인데 땅 밑에는 큰 바윗돌이 있거나, 가시덤불이 자라고 있는 땅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농부들이 씨를 뿌릴 때에는 좋은 곳에만 씨를 뿌릴 수가 없었습니다. 씨가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뿌려질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땅과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전해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딱딱한 사람에게도, 가시덤불처럼 복잡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말씀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마음입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이것이 바로 길가에 뿌린 씨와 같은 사람이다”(19절).첫 번째 씨앗은 길가에 뿌려졌습니다. 길가에 씨가 뿌려졌으니 열매 맺지 못했습니다. 씨가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마음이 딱딱한 사람입니다.   길가는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표면이 매우 단단합니다. 길가의 흙은 단단한 겉을 걷어내면 속에는 부드러운 흙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겉 표면입니다. 길가와 같은 사람의 영혼은 벽이 매우 단단합니다. 이들은 시련과 상처 속에서 겉과 속이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겉이 단단해지면 말씀의 씨앗이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심하고 방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 서기관과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질문에 답변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답변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이 마음이 단단해진 사람들입니다.이들은 듣고 싶은 대로만 듣습니다. 해석도 자기 나름대로 합니다. 전달하고자하는 진짜 메시지를 듣지 않습니다.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올바르지 못한 마음입니다. 사탄은 이런 상태의 마음을 매우 좋아합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땅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열매 맺지 못하고, 새들의 모이가 됩니다. 여러분, 사탄은 마음에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틈을 만드시는 하나님

 

여러분,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정신 차리고 말씀에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사탄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이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이 단단해 지기를 원합니다. 씨앗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생각이 복잡한 것이 문제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육성으로 주시는 말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는 곳에 와있어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으면 말씀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이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하더라도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단단한 아스팔트사이에서도 꽃이 피어나는 것을 봅니다. 씨앗은 작은 틈만 있어도 열매 맺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틈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에게 아픔을 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틈을 만들어줍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

 

두 번째 씨가 떨어진 땅은 흙이 얕게 덮인 돌밭입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자마자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말씀 때문에 고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걸려 넘어진다”(20~21절). 이스라엘 땅은 겉은 흙으로 덮여있지만 땅속에는 바위들이 많습니다. 농부들이 흙을 모두 파헤쳐 볼 수 없기 때문에 땅속에 바위가 있는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씨를 뿌립니다. 땅 속에 돌이 많으면 흙이 많은 땅보다 싹이 빨리 난다고 합니다. 돌이 온돌 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싹이 빨리 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돌밭에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렬한 햇볕이 비추면 금방 말라버립니다.

예수님은 겉은 흙으로 덮여있지만 속은 바위가 많은 밭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싹이 나는 것처럼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감정도 좋고 평안해 보입니다. 그런데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시련과 고난이 오면 쉽게 말라버립니다. 이 믿음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피상적입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영적 훈련과 성장>이라는 저서에서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피상적인 믿음을 갖게 된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돌밭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돌밭은 세계관을 의미합니다. 세계관은 어떤 생각이나 사상, 다른 사람의 의견을 판단합니다. 우리가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세계관 때문입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판단하는 것이 바로 세계관입니다. 이 세계관이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가치관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세계관을 형성해 왔습니다. 세계관은 돌처럼 딱딱해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부모로부터, 가정으로부터, 교육과정으로부터 형성된 나름대로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이 세계관을 부수지 않으면 말씀의 씨앗이 열매 맺지 못합니다.

 

새 언약의 축복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세계관을 깨뜨려야합니다. 그래야 고난이나 시련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덮고  있는 흙이 얇을 수 있기 때문에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고집과 아집, 편견과 세계관이 무엇인지 분석해야합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세계관을 분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방법은 성경의 세계관으로 스스로의 세계관을 비춰 보는 것입니다. 잘못된 세계관을 부수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세계관을 깨드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돌처럼 단단한 세계관일지라도 부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망치에 비유했고, 방망이라고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돌도 부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로운 영을 줄 것이다. 내가 너희 육신으로부터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겔 36:26). 여러분, 이 언약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우리 안에 아무리 무겁고 단단한 돌이 있어도 성령님이 임하시면 부드러운 흙처럼 마음이 고와질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새 언약의 축복입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

 

세 번째 씨가 떨어진 땅은 가시덤불이 무성한 땅입니다.  “또 가시덤불 가운데 떨어진 씨는 말씀은 들었지만 이 세상의 걱정과 돈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람이다”(22절).가시덤불이 자라는 토양은 좋은 흙입니다. 그 땅 밑에는 돌도 없고 표면이 단단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씨보다 가시덤불이 먼저 자라는 것입니다. 흙의 영양분을 가시덤불에게 빼앗겨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대개 마음이 착한사람들이 이단이나 거짓사상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길가와 같이 표면이 단단한 사람이나 돌밭과 같이 자신의 세계관이 뚜렷한 사람들은 이단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이단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심성이 착하고 여린 사람들입니다. 이 여린 사람들이 좋은 말씀과 좋은 메시지를 먼저 들었다면 그들의 신앙은 무럭무럭 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들을 가시덤불속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이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은 생산성이 좋은 땅에 가시덤불을 뿌려 놓습니다. 가시덤불이 자라는 땅은 어떤 씨앗을 뿌려도 열매 맺을 수 있는 좋은 흙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세계관도 형성되지 않고, 돌도 없고, 땅의 표면도 단단하지 않은 어린 영혼들입니다. 바로 우리 자녀들입니다. 사탄은 우리자녀들이 자라는 땅에 가시가 먼저 자라도록 합니다. 말씀의 영양분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최우선 순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를 지적하셨습니다. 세상의 걱정과 돈의 유혹입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속도는 말씀이 마음에 임하는 속도보다 비교할 수 없이 빠릅니다. 죄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염려를 잡아매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임하는 속도가 걱정하는 속도보다 빨라야합니다. 돈의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열매 맺는 속도보다 돈에 대한 유혹이 더 빨리 우리 마음에 자라나면 가시덤불이 됩니다. 하나님은 돈이 악하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돈에 집착하는 것이 나쁘다고 하셨습니다. 돈은 하나님이 선하신 용도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심겨지는 것보다 빠른 속도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시덤불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가시덤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바꿔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속도가 가장 빨라야합니다. 예수님이 “네 자신과 부모와 형제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가 없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를 미워하라는 것입니까. 가족을 돌보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말씀이 내안에서 뿌리내리는 것보다 우선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심령에 존재하는 네 가지 흙

 

네 번째 씨앗은 열매 맺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열매를 맺어 100배, 60배, 30배 결실을 낸다” (23절).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부드러운 마음이 만날 때 놀라운 생명의 씨앗이 뿌리내립니다. 내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성품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여러분, 좋은 흙과 좋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오면 100배까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열매 맺지 못하는 세 종류의 흙을 보았는데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는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고, 누구는 돌밭에 뿌려진 씨와 같고, 누구는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와 같다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본 네 가지 흙은 우리의 심령에 모두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길가와 같은 단단한 마음이었는데 성령님의 역사가 임해서 어느 날부터인가 열매 맺기 시작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편견이 부서지고 좋은 흙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좋은 흙이었는데 세상의 유혹에 사로잡혀 가시덤불로 뒤덮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포기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면 됩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좋은 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는 돌을 부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돌을 부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풍성한 열매 맺는 삶

 

“네 스스로 의의 씨앗을 심고 인애의 열매를 거두며 묵은 땅을 잘 갈아라.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다. 마침내 그분이 와서 의의 비를 너희에게 내릴 것이다”(호 10:12).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의의 비를 내려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깨뜨려주시는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합니다.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도록 말씀에 귀 기울여야합니다. 그렇게 묵은 땅을 기경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길가와 같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돌밭에 있던 돌들이 부서지고, 가시덤불을 불태움으로 우리 마음에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포기하지 마십시오. 삶이 정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스스로가 열매 맺는 좋은 흙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십시오. 다른 사람도 그렇게 바라봐 주십시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밭에도 씨앗을 뿌렸던 농부처럼 우리 또한 누군가가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합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그들의 돌을 깨주시고, 가시덤불을 불태워 주실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사역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가정 안에, 교회 안에 온전히 임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말씀의 씨앗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직도 마음속에 길가와 같이 단단한 마음이 있습니다. 겉은 믿는 것 같지만 속에는 단단한 돌이 들어있습니다.  이 세상의 걱정과 재물의 유혹 앞에 흔들리는 가시덤불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올려 드립니다. 불태워주시고, 깨뜨려주시고, 갈아엎어주옵소서. 말씀이 임할 때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열매 맺고 뿌리내리는 놀라운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마음을 주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