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그리스도 안에서 보증 받은 교회

에베소서 1장 13절~14절

이재훈 담임목사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확신과 능력, 그리고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은 어린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듯이 성숙해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의심하고 흔들리던 신앙이 견고한 신앙으로, 불안했던 신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신앙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 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우리의 삶 속에서 체험하고 고백할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성령님이 행하신 역사

 

에베소서 1장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깊이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욱 깊고 견고하게 성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시는 중점사역이 있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우리를 양자로 부르셨고, 성자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우리가 체험하고 믿음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성령님이 행하신 역사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때로는 무시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귀를 열어주시는 성령님 “그리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 약속하신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습니다”(13절).우리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성령님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생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복음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 없이 복음을 듣거나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육성을 직접들은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복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는 성령님을 찬양하십시오. “내가 누구에게 말하고 경고해 듣게 하겠는가? 그들의 귀가 막혀서 들을 수 없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책망이니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는다”(예 6: 10).‘막혔다’는 말의 원어는 ‘할례 받지 못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귀가 할례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이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주셔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립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진리와 복음을 듣는 귀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세상적인 지혜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할례 받지 못한 귀는 막혀 있어서 들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세상의 철학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놀라운 진리가 들리고 믿어지는 것은 바로 성령님이 우리의 귀에 할례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성령님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책망하면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가 없어서 못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귀가 있어도 막혀 있으면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막힌 귀를 열어달라고 기도하십시오.예수님이 성령님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쓰신 단어가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요 14:26)."“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들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들은 것만을 말씀하시며 또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요 16:12~13).성령님이 귀를 열어 주셔야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귀를 열어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세상의 소리와 사탄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들은 말씀을 믿게 하시는 성령님

 

성령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믿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롬 10: 17). 믿음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서 생기는 열매입니다. 믿어지지 않다가도 진리의 말씀을 듣는 순간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자 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불신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위해서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과 축복을 위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믿음의 기능은 파괴되었고, 왜곡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가장 먼저 믿음을 일으켜주시는 것입니다.믿음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 아닌데 우리가 억지로 믿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 모든 일을 성령님이 행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진실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의심과 불안, 염려와 방황이 가득하던 마음에 믿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내 안에 생긴 믿음을 삶속에서 적용해야 할 때가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한 자리에서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고난이 찾아올 때 내 안에 있는 믿음을 활용하십시오. 믿음대로 체험하고 역사하는 삶을 기대하며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보증 로마서에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기록이 있는데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믿음이라고 해석합니다. 믿음은 생활입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성령님이 하십니다.성령님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십니까.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우리 안에 참 믿음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믿음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보증하는 역사를 행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 약속하신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구속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13~14절) 성령님이 인치시고 보증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이라는 표현은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도장을 언제 찍습니까. 당시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입니다.첫째, 물건이나 문서가 진정성이 있는 진품이라는 것을 보증할 때 도장을 찍습니다. 진짜라는 것입니다.둘째,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서 도장을 찍습니다. 내 도장이 찍힌 것은 내 물건입니다. 누구의 소유라는 것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셋째, 안전을 보장하는 의미입니다. 당시에는 밧줄로 물건을 묶고 난 다음에 왁스를 칠하고 왁스가 굳기 전에 도장을 찍어 표시를 했습니다. 도장을 찍은 부분이 손실이 되었다면 누군가 그 물건을 열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중요한 문서에는 반드시 봉인을 하고 도장을 찍습니다. 안전을 보장하는 위해서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인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구원의 복음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증시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치하심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깨닫습니까. 구원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바로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증 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인치심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속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안전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구원에 대한 보장이 생긴 것입니다.여러분, 믿음이 자라고 흔들리지 않으며 승리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의 인치심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초창기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볼로를 통해 말씀을 듣고, 요한의 세례를 받고 회개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질문합니다. 그의 질문에 사람들은 “ 성령님이 있다는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성령님의 존재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들의 믿음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치신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채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저도 에베소 성도들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유아세례를 받고 교회 안에서 자랐지만 저는 성령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성령님이 하시는 역사에 대해 강조하지 않은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에게 성령님이 말씀을 들려주셔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셨습니다. 만약 고등학교 때까지의 저의 믿음을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억울합니다. 중고등부 회장도 했고, 기도도 많이 했고, 전도도 했습니다. 문제는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또 능력도 없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처럼 성령님이 있음도 알지 못했다고 말할 만큼 성령님이 인치하신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한 것도 성령님의 인치심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믿는 것 자체가 성령님의 인치심이고, 믿는 것 자체가 성령님의 세례였다면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성령님의 인치심은 성령세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바울도 믿게 하는 성령의 역사만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사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확실해진 믿음과  복음의 능력

 

사도행전 8장에 빌립집사가 사마리아 사람을 전도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교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안수했을 때 성령님이 그들에게 충만하게 임재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분명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의 인치심의 역사는 체험하지 못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제자들의 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은 진리로 거룩해진 사람들입니다. 깨끗해진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의심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두려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자체가 그들에게 능력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으니 제자들의 능력이 회복되었어야 하는데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가운데에도 의심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지 못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난 이후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분명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능력이 임했습니다. 성령의 인치심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것뿐만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치심의 역사를 체험하고 믿음이 확실해지고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인식, 자각, 체험할 수 있는 ‘인치심’

성령님의 인치심이 언제 일어나는지, 시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동시에 성령의 인치심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도 있고, 믿고 난 뒤에 한참 후에 성령의 인치심을 체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치심 사건은 스스로 인식할 수 있고, 자각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은 무의식속에서 일어납니다.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것을  거듭남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회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다는 것은 이미 내 영혼이 거듭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거듭난 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나를 다시 살리면 나의 죄를 보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을 통해서 내가 그리스도와 한 지체라는 것을 분명하게 체험하고 누리게 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인치심입니다. 구원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 모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구원을 받고도 능력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확신 없이 살아가는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때때로 믿음의 시련을 겪으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부인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능력 없고, 확신 없고, 증거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이유는 성령님의 인치심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치심 체험하면 생기는 변화들

 

성령님의 인치심을 체험하면 뚜렷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첫째, 분명한 내적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오늘 죽어도 주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간다는 확신입니다. 둘째,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으나 사랑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합니다”(벧전 1: 8).베드로가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성도들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기뻐하고 환란가운데서도 부인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예수님을 사랑하고 심지어 순교까지 하는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님의 인치심입니다. 제자들도 성령의 인치심을 경험하고 나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비겁했던 사람이 담대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 8).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임하심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에게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성령님의 인치심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간절한 마음을 드리면 확신과 능력, 그리고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성숙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사느냐 못사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속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사는 성도의 모습을 원하십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