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새로운 시작
부활, 새로운 시작요한복음 21장 1절~14절이재훈 목사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부활한 예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것이 부활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믿음을 갖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부활의 소식을 전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에서 부활의 영광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활을 믿는 크리스천들의 삶에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야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기쁨을 세상에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회복시키는 예수님
부활의 감격이 없어진 이유는 십자가를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경험해야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새사람으로 거듭날 때 십자가와 부활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부활에 관한 말씀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왜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제자들이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40일 동안 사람들을 일대일로 만나거나 단체로 만나셨는데 그 대상은 모두 제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예수님이 부활한 이후에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빌라도나 로마 군병들, 혹은 산헤드린 공회원들 앞에 나타나셨다면 어땠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아마 그들은 혼비백산해 도망갔을 것입니다. 만약 그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었다면 성경의 내용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말씀 드린 생각들은 복수심에서 나온 상상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을 복수하는데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차례도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찾아가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한 이후 40일 동안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회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집중하신 일은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고 놀라운 일입니까.
수제자 베드로의 실패
부활은 새로운 시작이요, 회복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실패와 좌절, 절망과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세 번째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그 후 예수께서는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그 나타내심은 이러합니다”(1절).
성경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녔다는 기록은 한번 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요 내용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친히 찾아오셔서 회복시켜 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둘만의 대화를 나눕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둘만의 대화를 나눈 이유는 베드로가 수제자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실패한 제자였기 때문에 그를 회복시키기 위해 둘만의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흥분하며 대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결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의 말씀이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를 들은 베드로는 자신이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를 과신했고 결국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베드로만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도 도망을 갔습니다. 어떤 면에서 가룟 유다는 베드로보다 더 큰 실패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의 실패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를 회복시키는 과정
만약 실패한 베드로를 예수님이 회복시켜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가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려던 예수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두 차례 회복 과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과정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직후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당신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바로 그때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이 울었습니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하신 주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눅 22:60~62).
예수님이 돌아보신 것은 베드로가 회개하기 전입니다. 예수님의 시선과 베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역 예수님이 베드로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보시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무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회개하게 만든 것은 닭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바라보던 예수님의 시선은 어땠을까요. 미움과 분노, 원망이 가득한 눈빛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인자하고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때 베드로가 회개합니다.
치명적이었던 베드로의 실패 예수님이 보여 주신 두 번째 회복과정은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소식을 전하라고 명령할 때 나타납니다.
“자, 이제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하라. ‘예수께서 너희보다 앞서 갈릴리로 가실 것이며, 그분의 말씀대로 거기서 너희가 예수를 보게 될 것이다’”(막 16:7).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라고만 해도 될 것을 굳이 베드로의 이름을 거명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에게 전하는 것을 특별히 잊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요. 특별히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또 어땠을까요.
예수님은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과 처음으로 만나셨고,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두 번째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을 다신 만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한복음 21장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베드로와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프거나 생계유지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일까요. 아닙니다. 만약 제자들이 배가 고프거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이라면 성경에 기록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는 것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그들이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주도했습니다. 베드로의 제안에 여러 명의 제자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역시 베드로는 타고난 리더입니다. 실패한 제자였지만 그의 리더십은 살아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두려웠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무척이나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그 괴로움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제자들에게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을 본 다른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은 예수님을 부인할지라도 자신만은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그의 실패가 더욱 크게 부각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
베드로의 좌절과 절망이 공감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해놓고 얼마나 많은 죄와 허물을 가지고 있습니까. 죄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모습과 베드로의 모습이 매우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회복시키기 위해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세 가지 준비를 하셨습니다.
첫째, 빈 그물을 준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제자들과 함께 열심히 그물을 내렸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에게 빈 그물은 그물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물을 열심히 내려도 물고기가 잡히지 않고 계속해서 빈 그물만 올라올 때 베드로는 과거 자신이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깊은 물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직접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고,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그물을 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목수가 어부에게 그물을 내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입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어부들은 밤새 그물을 내리고 아침에 그물을 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지금 그물을 내리면 오후에 그물을 씻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부들의 생활리듬이 무너집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 예수님은 가지고 있는 그물을 모두 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부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입니다. 갈릴리는 큰 호수가 아닙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다는 것은 호수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것입니다.
빈 그물로 만드시는 예수님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그물을 내리자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엄청난 기적을 경험했으니 ‘할렐루야’라고 외쳐도 모자랄 판에 그는 죄를 고백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순종했지만 마음속에 기쁨과 믿음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실패와 좌절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물을 내리고 있었지만 빈 그물만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른편으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제자들이 배의 왼쪽으로만 그물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물고기를 못 잡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슴하신대로 제자들이 배 오른쪽으로 그물을 내리자 물고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다’라고 소리쳤고, 베드로는 물속으로 뛰어 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빈 그물을 만드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전히 제자들을 통해 일하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물이 비어 있었을 때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기 때문에 빈 그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식사를 대접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했어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예수님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일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가 물속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합니다. 예수님을 빨리 만나기 위해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당황해서 뛰어 들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믿음 없이 물 위를 걷다 허우적거리던 때가 생각났을지도 모릅니다.
장면이 바뀌어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준비한 두 번째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숯불을 피워 놓고 떡을 굽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손수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시는 모습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부인하고 정죄한 사람을 위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책망은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 숯불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대제사장들은 뒤뜰에서 숯불을 쬐고 있었다고 했고, 잠언 말씀을 인용해서 원수를 어떻게 하라고 할 때 숯불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 숯불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무런 이유 없이 숯불을 피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의 장면을 그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무엇 때문에 제사장들이 있는 뒤뜰에 갔습니까. 몸을 녹이기 위해 숯불을 쬐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끌려가고 있는데 베드로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숯불 옆으로갔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숯불 앞에 섰을 때 자신의 과거의 실패와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베드로는 숯불만 봐도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던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숯불 앞에서 식사를 마련해주시고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이것이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한 제자를 책망을 하지 않고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베드로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이 과정 가운데 베드로는 자신이 대제사장 집에 피워 놓은 숯불 앞에서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다시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활의 의미, 새로운 시작 베드로를 회복시키는 세 번째 준비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질문할 때 그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면서 베드로라는 이름에 합당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께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 하신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잘못을 씻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씻어 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을 부인했던 과거가 그렇게 씻겼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고, 양을 치고,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찾아오셔서 실패로부터 건져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과거를 씻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포기하거나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수준의 각성을 하고 회개를 한다고 할지라도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받아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시작하십시오
부활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한 예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바로 부활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어떤 실패를 할지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갖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우리에게 큰 죄악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실패를 할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십시오. 실패와 좌절이 많았던 과거의 머물러 있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풍성한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영광스런 부활의 능력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생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과거의 실패와 좌절, 절망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