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그물의 비유

마태복음 13장 47~50절

이재훈 목사

 

이세상의 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을 인정하는 사람은 좋은 물고기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 받을 것을 의식하며 사십시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메시야가 오는 즉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씨앗이 땅에 심겨져 있을 때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임하지 않았습니다.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비밀이 드러나고 전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물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물을 발견했다면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 보물을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즈니스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현재보다는 미래에 가치가 있을 일에 투자를 할 것입니다. 미래에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지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쁜 일입니다. 담대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보물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서 헌신하는 것은 엄밀하게 보면 진정한 헌신이 아닙니다. 투자입니다. 가치가 보장된 투자입니다. 기쁘고, 즐겁고, 담대하게 헌신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소중한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비유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마지막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앞에 나온 여러 비유와 연관되어 있고 그 비유들을 완성하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비유들은 매우 논리적이면서 비유마다 초점이 다릅니다. 먼저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떠올려보십시오.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작은 씨앗과 같습니다. 씨가 땅에 묻혀 있을 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씨가 자라나면서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 나라도 씨가 잘라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시작됩니다. 씨가 떨어진 땅의 상태에 따라 열매가 맺히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떠올려보십시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원수가 가라지 씨를 뿌려서 알곡이 자라는 것을 막는다는 내용입니다. 겨자씨 비유는 원수의 방해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룩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은 누룩이 큰 밀가루 반죽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숨겨진 보화와 보물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반드시 기쁨으로 반응하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보석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반응하고 헌신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일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

 

오늘 본문은 바다에 던져진 그물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물을 바다에 던져 물고기가 가득 차면 그물을 배위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구별합니다.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물고기는 버립니다. 이 비유의 초점이 무엇입니까. 나쁜 물고기들은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마무리 될까요. 이 세상에서는 끝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또한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47절). 예수님은 갈릴리에 살던 사람들이 늘 익숙하게 보았던 모습을 비유로 들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를 보여주셨습니다.바다에 던져진 그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씨앗은 개별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그물은 집단을 의미합니다. 학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물을 교회라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교회는 예수님이 이 세상의 물고기들을 잡기 위해서 던진 그물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그물처럼 복음 전파를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도 어부들을 중심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그룹이 어부라는 것이 이 비유와 절묘하게 잘 맞습니다.

 

바다에 나가지 않는 어부

 

당시 사람들은 갈릴리 어부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첫 번째 제자그룹을 어부들로 구성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비유에 근거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 이것이 제자들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낚는 어부들을 변화시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한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부들은 한 마리 고기를 잡기 위해 비린내를 맡으며, 파도에 몸을 맡깁니다. 한 마리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모릅니다. 사람 낚는 어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생과 헌신 없이는 사람을 낚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낚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어부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어부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고기를 잘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토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잘 잡기 위해서 ‘세계 고기잡이 센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어장들을 탐방하고 연구도 시작했습니다. 어업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초청해 고기 잡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그들은 고기를 잘 잡는 방법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를 잘 잡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한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지 않은 것입니다.여러분,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지 않는 어부는 어부가 아닙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토론을 하면서도 실제로 전도와 선교를 하지 않습니다.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지 않는 어부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사명을 감당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그물

 

“또한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47절).여기서 ‘온갖’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개역개정에서는 ‘각종 물고기’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온갖, 각종물고기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그물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여러 종류의 그물이 있습니다. 당시에 사용되던 그물은 높이가 2m, 길이가 100m정도 됩니다. 매우 큰 그물입니다. 혼자서는 그물을 던지고 거두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의 돕는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이 그물의 위는 코르크 재질로 되어 있어 물에 뜨게 되어있고, 아래에는 무거운 납이 있어서 물에 가라앉습니다. 그물이 펴지면서 반원형을 만들어 되돌아오며 물고기를 잡는 방식의 그물입니다. 바다 속을 싹쓸이하는 방식입니다.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가 좋은 물고기인지, 나쁜 물고기인지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는 무조건 잡힙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그물은 어떤 물고기가 걸리든지 차별하거나 구별하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마 11: 28).예수님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초청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그물에는 차별과 예외 없이 나아올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은혜의 그물이 심판의 그물로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거짓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그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연약한 모습이 있습니다. 허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물고기도 있고, 나쁜 물고기도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에게 어느 성도가 자신이 다니고 싶은 교회를 소개해 달라며 찾아왔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성도들의 사랑이 충만한 교회, 설교가 은혜로운 교회, 선교에 헌신하고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라고 답했습니다. 이 외에도 열 가지 정도의 조건을 더 이야기 했답니다. 성도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스펄전 목사가 대답했습니다. “그런 완전한 교회는 세상에 없습니다.” 성도가 실망하고 뒤돌아 가는데 스펄전 목사가 성도를 불러 세웠습니다. “잠깐만요. 혹시 그런 교회를 발견하거든 절대 가지 마십시오.” 그렇게 좋은 교회를 왜 가지 말라고 하느냐고 성도가 재차 묻자 스펄전 목사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그 교회에 가는 순간 그 교회가 불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완전함을 확신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불완전해집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부르기 위해 왔습니다.예수님이 사용하시는 그물은 은혜의 그물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까지 은혜의 그물일수 없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가 함께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물이 모두 차면 그 심판의 그물로 변합니다. 영원히 용납되지는 않습니다. 그물 안에 있는 물고기를 분류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천사들에 의해서 의인과 악인이 구분될 것입니다. 우리가 안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은혜의 그물이 심판의 그물로 변화되는 날을 기억하며 살아야합니다.

 

좋은 물고기로 변화되는 삶

 

그물에 담겨있다고 해서 모든 물고기가 바구니에 담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물에 담겨 있는 성도에 머물지 말고  주인의 바구니에 담기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마지막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삶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그물 비유를 통해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십니다. 첫째, 물고기가 그물에 담겼다고 해서 모두 주인의 그릇에 담기는 것은 아니다. 둘째, 심판이 있을 것이다. 셋째, ‘좋은 물고기로 변화될 수 있다’입니다.좋은 밭에서 시작했다가 나쁜 밭이 되기도 하고 가라지가 알곡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가라지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모두 돌밭이요, 가시덤불과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밭이 되어가고 있고, 알곡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물 안에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물고기로 잡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물고기로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은혜의 그물 안에서 좋은 물고기로 변화되어 주인의 그릇에 담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신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대한 생생한 표현 “세상의 끝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가려내  활활 타오르는 불 아궁이에 던져 넣을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49~50절).  지옥에 대한 생생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에는 언제나 불과 어둠,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을 것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천국은 잘 믿지만 지옥은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도 지옥을 믿고 싶지 않아서 부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한 복음주의라고 말하면서도 지옥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지옥을 ‘게핫나’라는 단어로 표현하셨는데 예루살렘 당시에 쓰레기를 버리는 곳을 의미합니다. 단어대로 해석을 하면 쓰레기 같은 일들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을 피해가려고 합니다. 영원한 형벌이라는 것을 지워버리고자 합니다. 중세시대에 ‘연옥’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면죄부가 팔린 이유입니다.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죽음 이후의 형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옥에 가면 활활 타오르는 불과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교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명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이고, 실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지옥이라는 위험은 핵과 비교할 수 없는 위험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초대교회 신자들이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서 개종시키기 위해 지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CS루이스도 지옥에 대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장 완벽하고 합리적인 결론이라는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을 만들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옥이 없다면 자신을 위해 수백만 명을 학살한 사람이 어떤 대가를 치루지 않고, 뉘우침도 없이 영원히 평안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선하신 분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기 위해서는 악에 대한 정당한 공의가 집행되어야합니다. 악에 대한 공의가 없다면 하나님은 선한 분이 아닙니다. 지옥이 없다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 아닌 것입니다. 지옥이 있는 만큼 하나님이 거룩합니다. 지옥이 있는 만큼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천사들에 의해서 의인과 악인이 가려져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집니다.  우리는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붙잡아 주어야합니다.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대해야합니다. 그물의 비유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비유입니다. 이 세상의 끝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세상의 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끝을 인정하는 사람, 마지막 때에 있을 일을 인정하는 사람은 좋은 물고기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은 면할 수 있지만 또 하나의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받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선다

 

“나는 내 편지에 여러분에게 음행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썼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사람들이나 탐욕하는 사람들, 약탈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숭배하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하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고전 5:9~10).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을 구별하는 심판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어떻게 살아도 심판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심판, 일종의 상급의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구원을 받지만 분명 영광스러움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간신히 구원받은 구원과 영광스럽게 천국의 삶을 살았던 구원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모든 행함이 심판 받을 것이라는 의식을 하면서 사십시오. 좋은 물고기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우리를 은혜의 그물로 초청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자로 택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마지막에 있을 심판을 의식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은혜의 그물이 심판의 그물로 변할 때에, 한 영혼도 고통 속에 처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한 영혼도 불 속에 던져지는 일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