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달란트 비유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

이재훈 목사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십시오. 작은 일에도 충성스럽게 섬기는 태도가 중요합니다.영원한 기쁨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부익부 빈익빈은 자본주의 사회의 단점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데도 계속 부유해지고, 어떤 사람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정의로운 방법을 사용하는데도 계속 가난하다면 분명 공의롭지 못한 사회입니다. 또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는 부유하게 되기까지의 노력은 평가하지 않고 부유한 사람들을 무조건 가난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공의롭지 못한 사회입니다. 공의로운 사회는 심은 대로 거두는 사회입니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는 사회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하나님 나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받아 풍성해질 것이며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모두 빼앗길 것이다”(29절).예수님이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교훈을 주시는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을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오해 중 하나가 부유한 사람은 가난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부유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한 이유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정치, 경제적 유토피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유토피아는 헬라어 ‘후토퍼스’에서 유래되었는데 번역하면 ‘그런 곳은 없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공의로움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나라이며, 뿌린 대로 거두는 나라입니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심지 않으면 거두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진실 되고 충성된 사람에게는 더 주고, 거짓되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하나님 나라는 마치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고 떠난 주인과 같다고 합니다. 

 

종에게 주어진 달란트

 

주인은 종들의 능력에 따라서 여덟 달란트를 세 사람에게 나눠줬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마지막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줬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구별되게 돈을 나눠 주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를 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보다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받은 한 달란트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자신이 준 다섯 달란트보다 다섯 달란트를 더 남기자 주인은 매우 뿌듯했습니다. 주인은 종과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자신이 준 두 달란트보다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이번에도 주인은 뿌듯해하며 종과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이 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주인은 종을 책망했습니다.

 

동일하게 주어진 ‘달란트’

 

오늘날 달란트는 재능이나 특별한 기술을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지만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화폐단위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가질 수 없을 정도의 큰 액수였습니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입니다. 날수로 환산하면 20년 정도의 품삯이 한 달란트입니다.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두 달란트는 40년 정도의 품삯이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는 3만 데나리온입니다. 백 년 동안의 품삯이니 엄청난 금액입니다. 예수님이 이 큰 돈의 액수를 사용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삶의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고귀한 삶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에게 인생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결산할 때가 올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착하고 신실하게 산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악하고 게으르게 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책임을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  예수님이 오늘 말씀에 세 명의 종을 등장시켰지만 사실 두 부류의 사람을 대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는 부유한자가 더욱 풍성하게 살아가는 인생과 나머지 하나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사람의 인생입니다.   먼저 있는 것 마저 빼앗기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숨겨두었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주인은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책망이 지나쳐 보입니다. 원금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주인이 무엇 때문에 종을 악하고 게으르다고 평가를 했을까요.  “그때 1달란트 받은 종이 와서 말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굳은 분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도 곡식을 모으시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운 나머지 나가서 주인님의 돈을 땅에 감춰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주인님의 것이 있습니다’”(24~25절).종의 대답을 보십시오. 자신이 달란트를 땅에 묻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주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나타납니다. 이 종은 주인을 악하고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에 대해 오해하고 있고 주인을 불신했습니다. 자신이 한 달란트를 땅속에 파묻은 이유를 주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함은 도덕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 하나님에 대한 오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자신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악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따먹은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만들어준 여자가 선악과를 먹게 했다며 하나님께도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악하게 살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주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오해와 불신이 만든 두려움

 

종은 주인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주인은 종들을 신뢰하고 사랑했습니다. 성경구절 어디에도 주인이 종들에게 변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믿고 맡겼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더 배우는 인생을 살라고 가르치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무엇이라도 해 보려다 실패했다면 주인은 격려하면서 다시 해보라고 한 달란트를 더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신뢰와 사랑을 믿지 않은 종은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주인에 대한 오해와 불신은 두려움을 만들었습니다. 두려움은 파생되는 감정입니다. 두려움은 무엇인가를 신뢰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반드시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두려움이 생깁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신뢰와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웠던 것입니다. 두려움은 가능성을 파묻어 버립니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과 같습니다. 두려움은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큰 문제를 작게 보고, 작은 문제를 크게 보게 만듭니다. 또 두려움이 생기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게 만듭니다. 가나안 정탐을 보십시오. 가나안 정탐을 하나님이 명하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안 정탐을 하게 된 이유는 백성들의 불신앙이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열두 명이 정탐을 갔는데  그 중 열 명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와와 갈렙은 정반대였습니다. 두려움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가지고 상황을 보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두려움을 만듭니다. 이 두려움은 게으름을 만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들어버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질서

 

“게으름뱅이는 ‘밖에 사자가 있으니 내가 거리에서 죽임 당할 것 같다!’라고 한다”(잠 22:13). 밖에 사자가 있을지 몰라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두려움에 사로 잡혀 인생을 감옥에 가두지 마십시오. 신뢰와 사랑 속에서 창조적인 능력이 발휘됩니다. 두려움은 게으름을 만들어내는데 하나님은 게으름을 악하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허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허비하고 땅에 파묻는 것,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악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책망하십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게을러지면 빈익빈의 사이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인이 종을 쫓아냅니다. 그 종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여러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질서 속에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게으른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주인의 공평하심을 신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두 명의 종은 더욱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부익부 사이클에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첫째, 그들은 주인의 공평하심을 신뢰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능력에 따라 구별되게 나눠주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왜 자신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지 않고  두 달란트 주냐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맡겨진 그대로의 삶에 충성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별하십니다. 차별과 구별은 다른 것입니다. 차별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고, 구별은 공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인생을 공의롭게 대하시며 잠재력까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계획과 뜻에 따라 우리를 구별해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와 한 달란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우리가 불평하고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가져야할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유명한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 부르심과 소명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되도록 인도하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며 살아가기

 

둘째, 그들은 작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불신은 두려움을 낳지만, 믿음은 충성을 낳습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긴 종들을 동일하게 칭찬했습니다. 칭찬의 내용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많은 액수를 남긴 종을 더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칭찬의 내용이 동일하다는 것은 더 많은 성취를 하면 더 큰 칭찬을 하고, 적게 성취하면 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시는 기준은 성취나 성과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성공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성취한 성공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부익부 사이클에 들어간 사람들은 언제나 충성스러운 태도로 살아갑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인생의 태도가 하나님 나라의 부익부의 사이클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충성이 무엇입니까. 따지지 않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두려워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또 다시 도전해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맡겨진 것에 충성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의 부익부 사이클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몸의 근육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발달합니다. 피곤하다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은 더 약해집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말씀가운데 있으면 우리의 영혼은 더욱 거룩해 지고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님을 체험하는 일도 심은 대로 거두는 일입니다. 성령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주인에 대한 신뢰와 사랑

 

오늘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활용한 종들을 평가할 때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닌데 왜 작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많은 돈이라고 할지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작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모든 것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는 너무 작은 돈입니다. 엄청난 액수의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께는 너무나 작습니다. 그렇다고 작은 일을 작다고 여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되게 섬기면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십니다.  둘째, 이 세상에서 큰 재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재물은 없습니다. 재물은 이 땅에서만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재물은 작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시기에 작은 일이기 때문에 멸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 더욱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일이라도 충성스럽게 섬기면 주인이 더 많은 것을 맡길 것입니다. 영원한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익부의 싸이클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밑바탕에는 언제나 주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습니다. 또 기쁨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태도를 보시는 하나님

 

이 땅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에는 믿음과 충성, 기쁨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빈익빈의 싸이클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신과 게으름이 있습니다. 그들은 슬피 우는 인생을 삽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우리의 태도와 받아들이는 믿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십시오. 하나님은 작은 일에도 충성스럽게 섬기는 태도를 보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인의 영원한 기쁨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거나 부모님 탓과  환경 탓하는 것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달라트를 감사와 충성,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부익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소중한 달란트를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불신앙, 게으름, 악함으로 하나님 나라 밖에서의 인생을 살지 않게 하옵소서.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선하심을 의지하고, 사랑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