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빛이 되라
본문: 마태복음 5:13~16
이재훈 목사
하나님께서는 등잔대 위에 올려 진
등불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인생이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는 사람을
반드시 등잔대 위에 올려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떠한 영향을 주는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소금, 둘째는 빛의 비유입니다.
팔복의 삶이 크리스천의 정체성, 본질,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소금과 빛의 비유는 이 땅을 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영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땅에 소금이다’
“너희는 이 땅에 소금이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다시 짜게 되겠느냐?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어 바깥에 버려지고 사람들이 짓밟게 될 것이다”(13절).
‘너희는 이 땅에 소금이다’에서 ‘너희’는 팔복의 삶을 사는 사람들, 이 땅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까지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너희는 이 땅에 소금일 수도 있다’, ‘소금이 되어야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재의 상태가 ‘소금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소금이 아닌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으로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소금’인 사람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회개함으로 성령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마음이 가난함으로 시작되어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단계에 이르면 팔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이미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며 세상의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소금’으로 비유하신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소금은 아주 흔하고 요긴하게 사용하는 물질입니다. 소금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음식이 썩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 어떤 음식에 들어가도 적절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갈증을 일으키는 기능을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소금이 만일 짠 맛을 잃어버리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학적으로 소금은 염화나트륨입니다. 염화나트륨은 가장 안정적인 합성체이기 때문에 맛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소금을 만드는 염전기술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금을 모아놨다가 사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소금 덩어리와 불순물이 함께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된 물질은 소금의 형태이긴 하지만 짠 맛이 없어서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땅에 버려지거나 지붕에 뿌렸습니다. 이처럼 버려지는 소금, 밟히는 소금은 소금이 아닙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소금의 맛을 잃어버린 채 맛을 내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이렇게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은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이 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야합니다. 소금,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소금이 최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소금의 순수도가 높아야합니다. 소금의 염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아주 작은 소량의 염분이지만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됩니다. 이번 40일 특별새벽기도의 목표는 소금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 가운데 소금기를 높이는 40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음식에 뿌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하늘이 아니라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더럽고 추하고 부패할 수 있는 곳에 뿌려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면서 죄는 짓지 않으시는 분, 그들의 부패는 막으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모습처럼 이 땅에 뿌려진 소금의 역할을 하며 살아야합니다. 이 땅에 살지만 땅에 속하지 않는 인생,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원리대로 살지 않는 인생, 이것이 바로 올바른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세 번째는 이 세상을 향하여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합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돕기 원한다면 소금을 그들의 상처에 박박 문질러야합니다.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날카롭게 말해야합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소금으로 이 세상을 문질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이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그들의 상처에 소금이 발라져야만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상처를 아프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상처를 치료하는 소금처럼 이 세상의 상처와 아픔, 부패한 것을 회복시키고 정결하게 하고 낫게 하는 소금으로 우리 모두가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빛이라’
두 번째 비유는 세상의 빛이라는 비유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워진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 등잔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두어 그 빛을 온 집안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14~16절).
예수님께서 먼저 이 땅에 소금을 먼저 말씀하시고 빛으로 말씀하신 순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먼저 우리가 무언가를 하기 전에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Doing’이기 전에 ‘Being’이 있어야 합니다. 소금처럼 자신을 녹이고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이 없으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을 말씀하시면서 두 가지 비유를 드셨습니다. 첫 번째는 ‘산 위에 있는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시골의 깊은 산속에 가면 작은 불빛도 아주 강하게 드러납니다. 집에서 커튼을 달아나도 작은 틈만 있으면 빛이 드러납니다. 이처럼 빛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이 땅을 살면서 자신의 신앙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불가능합니다. 빛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않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신앙을 절대 감출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팔복의 삶을 누린 사람은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빛이 감추어 지지 못하는 것처럼 참된 크리스천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숨기어진 인생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빛으로 나타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등잔대 위에 둔 등불이 되십시오
두 번째는 등잔대 위에 둔 등불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등불은 등잔대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위치가 중요합니다. 작은 불빛이라도 온 집안사람들에게 다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등잔대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려면 등잔대 위에 있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빛을 비출 수 있는 등잔대 위에 올려 진 등불의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빛 된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등잔대 위에 올려 진 등불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생이 등잔대 위에 올려 진 등불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인생이 되기를 원한다는 기도제목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반드시 등잔대 위에 올려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우리 자녀를 등잔대 위에 올려 진 등불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빛을 발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것이 참된 기도제목입니다.
선한 행실을 비추어라
16절에는 빛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팔복의 삶으로 사는 사람들은 선한 행실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선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비추어라’고 하는 것은 등잔대 위에 올려 진 등불이 그의 삶을 통해 나타난 선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비추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비춤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지금 팔복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소금이고 빛입니다. 팔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서 등지고 산 속으로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이 세상 한복판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들의 부패한 인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때로는 이 세상에서 쓰라린 상처를 받지만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면서 이 세상에 영향력 미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숨기우지 못할 것입니다. 핍박을 받더라도 담대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팔복의 삶을 누리며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빛과 소금으로 다시 소금기를 회복하고 숨기우지 못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어떤 직함보다 ‘나는 예수 믿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나의 가장 소중한 직함으로 여기고 고백하는 담대한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