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은밀하게 기도하라

(마 6:5~18)

 

이재훈 목사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십시오. 은밀한 기도가 이 땅에서 하늘 문을 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갈망하는 금식을 하십시오. 금식이 하늘 문을 여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

 

교회 생활은 익숙하지만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밀한 사귐의 시간보다 그 외에 것들이 중요해 질 때, 교회 생활에는 익숙해지지만 하나님과는 친밀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많은 사역과 활동을 하기보다는 성도들의 내면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보십니다. 그 동기를 가지고 심판하십니다. 죄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성령의 도우심, 임재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자연적인 본능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해서이고 죄가 기도를 막기 때문입니다. 때론 기도하면서조차도 죄를 짓게 만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숨기고 포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실하게 기도할 수 있을 때 거기서부터 진정 기도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능력이 없는 것은 그러한 기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잘못된 태도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기도하는 두 그룹의 모습을 예로 들어주십니다. 첫째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기도, 둘째는 이방인들의 우상을 섬기는 기도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다”(5절). 바리새인은 가장 진실하고 정직하고 가장 은밀하게 기도해야 하는 시간을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고 자랑하는 죄악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타락이요, 죄악의 증거인지 모릅니다.

둘째는 이방인들의 중언부언 기도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기도할 때는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반복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아버지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이방사람들처럼 기도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 분이다”(7~8절).우상을 섬기는 이방 종교인들의 기도는 신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 행함,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하면 하나님은 움직이십니다. 이방 종교나 우상종교의 특징은 신에게 우리의 사정을 알려드려야 신이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말이라도 자꾸 반복하는 것입니다. 응답하지 않으면 신이 모를까봐, 알려서 응답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필요한 것, 있어야 할 것, 가장 중요한 것을 이미 아시는 분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고 우리가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지금도 구하지 않은 것도 채워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우리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깨달아 가야 합니다. 우리의 간구의 제목을 가지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방향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대화하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구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이 이방종교와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하늘을 여는 열쇠 ‘기도’

 

기도란 우리가 어떤 것을 요구해서 받는 것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는 것보다 우리와 더 깊은 교제와 만남을 나누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의 기도, 이방종교적인 우상의 기도를 버리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기도의 비밀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은밀하게 계셔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6절).하나님과 나만 아는 그 은밀한 기도에서 우리는 하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40일 특새의 목적은 혼자 어디든지 문을 닫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무릎 꿇는 것. 이것이 이 땅에서 하늘을 열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단지 문을 닫고 홀로 기도했다고 해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이 혼자 자기만의 공간에 있기 시작할 때 외적인 방해세력은 없어졌지만 내적인 방해세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잡념과 죄, 육체적인 피곤이 기도를 막고, 피하고 싶은 더럽고 추한 죄를 가진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과 만나기를 꺼려하니까 자꾸 분주한 삶을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시간이 없으면 삶은 절대 변할 수 없습니다. 외로움과 하나님과 함께하는 창조적인 고독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이 아무리 분주할지라도 하나님과 만나는 내면의 골방이 있다면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축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골방이 나만의 공간과 시간으로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한 자리와 공간, 그러한 삶으로 반드시 나아가야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만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누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의 금식

 

“너희는 금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침울한 표정을 짓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이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다”(16절). 유대인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바리새인인지 보이기 위해 위선과 외식, 포장의 도구로 금식을 사용했습니다. “너는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래서 네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지 말고 은밀하게 계셔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만 보이도록 하여라. 그리하면 은밀하게 계셔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17~18절).예수님은 오히려 금식하지 않는 것처럼 은밀한 금식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진정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게 금식하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성령을 통해 그분의 임재하심을 놀라울 정도로 맛보며 즐거움과 충만함 가운데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더 깊은 갈망으로 금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금식은 굶고 그 금액으로 가난한 자를 도와줘도 기쁨만이 남는 금식입니다. “내가 받고 싶은 금식은 이런 것들이 아니냐? 부당하게 묶인 사슬을 끌러주고 멍에의 줄을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모든 멍에를 부숴 버리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가난한 노숙자를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냐? 헐벗은 사람을 보면 옷을 입혀주고 네 혈육을 못 본 체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사 58:6~7절).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단지 굶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굶은 양식으로 기쁘고 즐겁게 배고픈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금식입니다. 괴로운 금식, 절망의 금식이 아니라 갈망의 금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왔기 때문에 금식은 슬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도와 금식이 하나님 나라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은밀한 기도가 이 땅에서 하늘 문을 여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금식이 이 땅에서의 절망과 탄식의 금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사와 갈망의 금식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그때까지 우리가 참된 종으로 인정받기 위해 기쁨과 감사로 금식하며 이웃을 돕고 노숙자를 섬기며 헐벗은 자를 입히고 섬기는 금식이 되길 바랍니다. 금식은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금식이 축제가 되는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 정리 조은실 기자 ces@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