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말라
(마 7:1~5)
이재훈 목사
스스로가 심판자가 되지 마십시오.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의를 이루고 평강과 기쁨을 누리십시오.
“너희가 심판받지 않으려거든 심판하지 말라(1절).”우리에게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판단력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 위해서는 공의로운 판단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 속 비판, 심판하지 말라는 것의 의미는 모든 비판과 심판을 금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부당한 의도와 파괴적인 의도를 가지고, 자신이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정죄하고 심판자의 권위에 오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판자는 오직 한 사람,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잘못된 심판
인간의 심판, 부당한 비판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다른 사람의 동기를 최악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 그의 동기를 최악의 경우로 추정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동기를 최선의 경우와 최악의 경우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는 사람은 그 사람의 동기를 최악의 동기로만 판단하고 심판하려고 합니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동기를 최악의 동기로 추정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최악의 경우인 것처럼 추정하여 심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의 삶을 살 때 우리가 알 수 없는 동기를 함부로 추정하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최선의 경우로 추정하십시오.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들이되 그의 견해를 논쟁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모든 음식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으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먹는 사람은 먹지 못하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롬 14:1~3절).”
두 번째, 자신의 의견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널리 전해지면서 유대사회와 상관없는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우상숭배와 관련된 음식, 그들이 만든 정결 규례 등에 의하여 그와 상관된 음식들이 나왔을 때 그것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는 그 이슈를 가지고 심각하게 싸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을 배려해 먹지 않도록 하고, 또 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정죄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그러한 문제로 서로 심판자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의 기쁨입니다(롬 14:17).”하나님 나라는 무엇을 먹고 마시는 그런 문제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강과 의로움, 기쁨을 이루는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가운데 심판자가 되기까지 만드는 여러 문제들이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 세우는 규칙일 수 있지만 자신의 선호도, 가치관에 속한 것들로 인하여 확대해석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의 삶속에서 우리가 정해 놓은 법과 규칙, 가치를 절대화하여 서로가 서로를 정죄하고 심판을 하기까지 나아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개인적인 선호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동체에 절대시해서는 안됩니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 진리에 합한 것인지 아닌지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관계 속에서 의를 이루고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심판자가 되지 말고 공동체의 가치, 리더십의 결정을 모두 존중하고 나만 옳다는 심판자가 되지 않고 하늘나라의 의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중요치 않은 문제를 가지고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 형제를 사랑으로 대하는지, 하나님이 받으신 영혼과 관계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와 평강과 기쁨이 하늘나라의 삶입니다.
위선자가 되지 말라
“어째서 너는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3절).”세 번째, 위선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하여 심하게 심판자로 서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고 관용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위선입니다. 다른 사람의 티가 보인다면 자신의 눈에는 어쩌면 들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심판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과 형편에 처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동기, 삶의 형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진정한 의미의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를 심판한다면 자신도 그 동일한 심판의 잣대로 심판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있는 들보부터 빼야하는 것입니다.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런 후에야 네가 정확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5절).”형제의 티를 빼줄 수 있다면 물론 빼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환자의 수술을 할 때, 자신의 손부터 깨끗이 하는 것처럼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부터 빼야지만 형제의 티를 빼줄 수 있습니다. 원수가 아니라 자녀를 대하듯이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들보부터 먼저 고백하며 주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판단의 기준, 오직 하나님
“형제들이여, 어떤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영의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를 살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십시오(갈 6:1).”우리에게는 온유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판단하고 심판할 때에는 예민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사람의 티를 빼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온유하고 관대하면서도 부당한 관용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부당한 관용은 또 다른 죄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의와 사랑을 함께 이뤄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만 다른 사람의 티를 빼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판단을 받든지 사람의 법정에서 판단을 받든지 그것은 내게 아주 작은 일입니다. 사실 나도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습니다(고전 4:3).”
우리가 심판받을 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옳지 않은 사람들의 ‘판단’이었습니다.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 율법주의적인 편견 등 옳지 않은 기준으로 사도바울을 판단하는, 스스로 심판자가 된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하나님만이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동기와 나의 행위를 판단하는 하나님만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판단도 때로는 옳지 않을 수 있다고 고백하고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자신을 평가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의 철학을 본받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은혜의 강물에 빠져있다면 죄와 더러운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심판자가 되지 말라’는 이 말이 우리 삶속에 이루어질 때 하늘나라의 풍성한 삶이 우리에게 이뤄질 줄 믿습니다. / 정리 조유진 기자 uji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