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토)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 7:13~23) 이재훈 목사
12월 29일(토) 말씀 - 인천 온누리교회
예수님이 왜 좁은 문처럼 느껴집니까.
변함없는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좁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은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아버지는 선하시며 악인들도 은혜를 깨닫고 아버지의 넓은 품으로 돌아오도록 기다리십니다. 이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좁은 문 예수
마태복음 7장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땅에서 열렸던 하늘의 문이 닫힐 때가 온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심판자가 되십니다. 악인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아버지가 동시에 심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13~14절).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은 구원을 얻고 들어오고 나가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온다. 그러나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되 더욱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10:9~10).
예수님은 구원을 얻게 되는 문임과 동시에 열린 문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산상수훈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좁은 문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왜 예수님이 좁은 문일까요?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모든 사람을 초청하셨습니다. 좁은 문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좁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태, 죄 때문에 문이 좁아진 것입니다.
공항에서는 입국심사를 하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얼마나 좁은 문입니까. 우리가 하늘의 검색대를 지날 때에는 문 밖에 ‘자신을 밖에 두고 들어오시오’라고 쓰여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검색대에 죄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이 죄에 속한 우리의 옛사람, 죄로 물든 옛 자아는 절대 이 문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변화된 새로운 사람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이 문은 나를 부인하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좁은 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초청하셨지만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변함없는 유일한 진리, 예수님
둘째로 좁은 문인 것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외에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아래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행 4:12).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문이라는 진리 앞에서 사람들은 좁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가리켜 편협한 종교라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이라고 하니 얼마나 좁은 문이라고 느껴집니까. 그러나 하늘 아래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은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진리는 좁은 문입니다. 모든 과학적 법칙을 보십시오. 그 법칙에는 변할 수 없는 진리가 있습니다. 명백한 진리는 언제나 좁은 문입니다. 1더하기 1은 2라는 것에 한 학생이 ‘왜 2만 되느냐’고 따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학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것에 대해 서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서명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1더하기 1은 2입니다.
예수님이 왜 좁은 문처럼 느껴집니까. 변함없는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좁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만나야만 인생의 죄가 해결되고 생명을 얻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어떤 종교지도자가 부활을 약속한 적 있습니까.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죽음을 해결하지 않은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때에만 적용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문이시기에 사람들은 좁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유일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문을 좁다고 여기는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한 명씩만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함께, 동창과 함께, 짐을 들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나 홀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의 반응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이 좁은 문인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길이 나올까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나오는 길은 계속 좁은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계속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좁은 길은 또한 험한 길입니다.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영적전쟁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공격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그 길은 좁은 길이며 또한 험한 길입니다.
여러분, 어떤 길이 좋은 길입니까. 넓은 길입니까? 아닙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좋은 길입니다. 편안하고 넓은 길이 좋은 길이 아니라 내가 가야하는 목적지로 가는 길이 좋은 길입니다. 험한 길일지라도 그 길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좁은 문은 구원의 문입니다. 좁은 길은 제자의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한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좁은 길의 삶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판단기준이 될 주님과의 교제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열매로 그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다가오지만 속은 사나운 늑대다”(15절).
“이와 같이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20절).
열매는 나무로부터 생겨나며, 열매는 내면에서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한 번의 행위가 아닌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매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늘의 삶도 한 번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에 임한 팔복의 삶으로부터 점차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열매를 계속 맺어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살고 있으면 열매는 맺어집니다. 그 비결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능력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붙어있는 것입니다.
“내게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그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할 것이다. ‘주님, 주님,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때 나는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무법을 행하는 사람들아, 썩 물러가라!’”(21~23절).
단지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행함으로 만들어낸 열매로 나타내는 진정한 고백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면으로 주님을 모시고 팔복의 삶을 살고 이 땅에서 아버지를 모시며 좁은 길, 험한 길로 걸어가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나타나는 열매, 교제만이 마지막 심판대에서 우리를 지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과 얼마나 깊은 교제를 나눴는가’가 주님이 우리를 판단할 때의 기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 끝까지 함께 동행함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