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완전케 하다 1
12/19(수) 온누리 40일 특별새벽기도회“율법을 완전케 하다 1” -이재훈 목사마태복음 5:17-32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의롭습니다.우리 마음의 동기와 상태가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보여주는 의로운 삶을 사십시오.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삶이 우리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의 삶은 의로운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의 의로운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구약성경과의 관계를 통해서, 또 한 가지는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관계를 통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의’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모든 요구를 그의 삶을 통해 다 이루시고 순종하심으로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모든 예언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율법에 순종하신 결과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율법의 저주, 그 율법을 어기는 자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담당하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완전케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계명 가운데 아주 하찮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계명을 지키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더 의롭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19~20절).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자신들 나름대로 해석해서 지켰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그들보다 ‘더 나은 의’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심으로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그 의로움입니다. 우리의 행한 것으로 깨끗함으로 삶으로 얻어질 수 있는 의가 아니라 값없이 의롭다 여겨지는 하나님의 의, 그것이 더 나은 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삶
더 의롭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예수님과 연합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면 비로소 하나가 됩니다. 또 성령 안에서 살아야 우리의 삶이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얻는 의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의로운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아닌 성령을 따라 살 때 이루어지는 의로운 삶. 율법의 조항, 우리의 의지, 행위,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사는 죄의 종이 아닌 의의 종으로 사는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수준은 당시의 율법학자와 바리새인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의의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의의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성령 안에서 그 율법의 요구가 삶을 통해서 다 이루어지는 의로운 삶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성령 안에 거하면 가능해집니다.
진정한 율법의 정신
예수님께서는 여섯 가지의 예를 통해 하늘나라의 의로운 삶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율법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대조를 통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살인하지 말라. ‘살인한 사람은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는 옛 사람들의 말을 너희가 들었다”(21절).
여기서 심판이라는 표현은 유대사회에서 어떤 사소한 분쟁이 일어났을 때 지방 하급재판소와 같은 곳에서 판단을 받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살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빼뜨렸고, 살인이라는 엄청난 죄를 지방 재판소의 재판 정도로 약소시켰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해석하게 된 이유는 외면적인 행위에만 더 치중하고 그 마음의 동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라는 것은 단지 문자적으로만 지키는 율법이 아닙니다. 왜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 영혼인지 깨달으면 저절로 그 율법을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조항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의미에 담긴 하나님의 뜻,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진짜 율법의 정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율법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넘어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로운 삶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동기와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의로운 삶’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형제에게 분노하는 사람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또 형제에게 ‘라가’라고 하는 사람도 공회에서 심문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바보다’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떨어질 것이다”(22절).
삼단계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점점 강도가 세집니다. 먼저 분노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노에서부터 멸시 그리고 저주를 말씀하셨습니다. 살인이라는 행위를 먼저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영혼에 대한 저주, 멸시, 분노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인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정말로 지키기 위해서는 분노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분노를 심각한 죄로 여기고 그 분노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우리 마음을 살펴야합니다. 모든 분노에는 죄가 숨어 있습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 는 옛 사람들의 말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음란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마음으로 간음죄를 지은 것이다”(27~28절).모든 유혹은 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특히 시각적으로 약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욕망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마음의 간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눈을 통제해야지 눈이 마음을 통제하면 문제가 됩니다.
욥은 눈을 통제를 잘 했습니다.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라고 말했습니다. 음란한 마음으로 여성을 바라보지 않기로 다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눈과 언약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욥의 마음이 눈을 따르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여자는 정서의 문에 약하고 귀에 약합니다. 달콤한 말이 들려올 때 마음이 움직입니다.예수님은 어떤 각오로 그것을 끊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눈을 뽑고 손과 발을 자르는 각오로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각오가 있으면 왜 지키지 못하겠습니까. 실제로 손과 발을 자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손이나 발, 눈이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면 손과 발, 눈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의 의로운 삶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한 명령을 가지고 주님은 우리의 마음 생각 신체의 일부에 이르기까지 온 몸이 거룩한 삶으로 드려져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 보여주는 의로운 삶
“‘아내와 이혼하는 사람은 이혼증서를 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와 이혼하면 그 아내를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누구든지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31~32절).
랍비들은 아내와 이혼하는 사람들은 이혼증서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조항이 있었지만 그것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지위가 낮았던 그 시대에서는 이혼증서가 없으면 여자들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법을 이혼증서만 써주면 이혼할 수 있다고 바꾸어 받아드렸습니다. 이 얼마나 악한 법입니까. 그리고 스스로 의롭다 여겼다니 얼마나 가증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교묘한 사회적 윤리를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그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사회적 윤리만을 지킴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진심으로 마음으로 지키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깊이 묵상하여 실천함으로서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의로운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분노, 간음, 잘못된 이혼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의로운 삶’이 우리의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 정리 조유진 기자 uji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