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 2 - 예배의 기름부으심

 

교회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부흥을 일으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늘 세 가지 요소가 부흥의 중심에서 부흥을 이끌었습니다.첫째, 위에서 내려오는 부흥에 대한 계시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을 통해 온 성도들을 예비하게 하신 것입니다.둘째, 하늘을 향하여서 부흥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셋째, 기름 부음 있는 예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와 예배가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온 땅에 하나님의 역사를 일어나게 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와 한국의 모든 교회가 기름 부음 있는 예배를 회복한다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새롭게 쓰실 것입니다. 

 

기름부으심이 있는 예배

 

1. 보혈로 드리는 예배

기름 부으심 있는 예배는 무엇인지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기름 부으심 있는 예배는 하나님이 열납 하시는 예배입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는 예배는 나의 행위, 나의 의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 나가는 예배를 하나님은 열납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으로 제물을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은 자기 행위로 자기 의를 의지하면서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예배는 아벨같이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의지하며 나가는 예배입니다.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갈 때 지난 세월에 자기가 지었던 죄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원수 마귀가 주는 정죄감과 죄책감에 빠져서 ‘하나님은 이런 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가인의 예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의를 의지하며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가인의 제사와 같습니다.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는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의지하면서 나아가는 예배입니다. 아벨의 예배를 받으신 이유는 아벨은 양을 잡고 양으로 제물 삼아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는 예배를 통해 내가 받을 은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예배입니다. 열납하시는 예배의 중심은 영광 받을 하나님 자신을 위해 나가는 것입니다.우리는 흔히 예배를 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는 게 아니라 드린다고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산 제물로 드리러 올라가기 전 함께 갔던 종에게 “여호와께 경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예배는 내가 아끼는 것, 사랑하는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정말 기름 부음 있는 예배가 되길 원한다면 받을 것을 생각지 말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면서 귀한 것을 드리면서 나가야 합니다. 나의 모든 예배 중심이 나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주의 공로를 의지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열납하십니다. 그 예배가 기름 부음 있는 예배입니다.

 

2. 지성소로 들어가는 예배

둘째, 하나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2절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 이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만일 우리 예배가 마당만 밟는다면 기름 부음 있는 예배가 아닙니다. 기름 부음 있는 예배는 하나님이 계신 곳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그 보좌로 나갈 때 기름 부음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예배를 인도할 때마다 제가 기대하는 목표는 주님이 계신 보좌 앞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10장 19~2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소는 지성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얘기입니다.우리는 때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드리는 예배는 지상에서의 예배요 멀리 계신 하나님에 대한 예배이며 그날이 되면 임재하심을 경험하고 예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 이 시간부터 하나님이 계신 곳까지 나아가서 예배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한 번도 나가지 못했던 지성소, 하나님이 계신 곳, 보좌가 있는 곳, 임재를 맛보는 곳에 누구든지 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예배를 드릴 때마다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걸어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앤드류 머리는 “여기서 아버지 얼굴을 볼 것이며 그분의 사랑을 맛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로를 맛볼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안에서 독수리 날개침 같이 세상 향한 축복의 능력을 맛보게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기름 부음이 있다고 말하려면 지성소까지 나가서 경험해야 합니다.

3. 임재 가운데 있는 예배

셋째, 기름 부으심 있는 예배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고 임재 앞에 머물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새로워지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이 자라고 자유를 경험합니다. 보좌 앞에서 육신이 치유되고 특히 누가 안수함으로써 낫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지심으로 치유됩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일어납니다.  외양으로 훌륭한 악기나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기름 부음이 없는 예배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기름 부음 있는 예배가 아닙니다. 모든 예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예배하는 자에게 응답하심이 있을 때 기름 부음이 있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조건

 

1. 예배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일하는 자(Worker)가 아니라 예배자(Worshiper)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23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에스겔서 44장에서는 두 종류의 사역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어떤 무리에게는 보좌 앞에 나아오라고 하고 다른 무리에게는 가까이 나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그룹과 금지된 그룹이 있다는 겁니다. 그 차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우상은 반드시 다른 종교 앞에 가서 절하는 것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예배 사역자들이 프로그램과 악기, 순서에만 집중돼 있으면 우상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사독 자손 레위인들은 철저히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좋은 악기, 시스템, 음악, 사람 반응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령에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성령의 인도

둘째,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야 합니다. 진정으로 드린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드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진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 순서는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 진행돼야 합니다.시편 100편 4절에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라고 써 있습니다. 문으로 들어갈 땐 감사함으로 들어가고 궁정으로 들어갈 땐 찬송함으로 들어간다고 돼 있습니다. 그분을 높이기 시작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시편 103편 1~6절에는 문으로 들어가는 예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8~12절에서는 궁정에 나가서 보좌에서 어떻게 예배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이 말씀은 전부 죄악을 사하시며 병을 고치시며 파멸에서 구속하시며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 안에 이뤄진 구원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문으로 나갈 때는 선포하면서 감사함으로 나가는 것입니다.보좌 앞으로 나갈 때에는 찬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노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대로 진실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처음에 문으로 들어갈 때는 감사의 예배는 템포가 빠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보좌 앞에 나갈 때는 템포가 느려질 것이며 그땐 손을 높이 들면서 엎드리던지 무릎을 꿇던지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3. 거룩한 삶

셋째, 예배자가 일상적인 삶에서 거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함이 있어야 보좌에 나갈 힘과 담대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원수 마귀는 거룩함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갖가지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맨 처음 목표가 되는 사람은 기름 부으심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악기 다루는 자나 인도자나 상관없이 영적으로 심한 공격을 받습니다. 거룩함을 유지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죄악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묶여 엄두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거룩함을 상실하면 우리 예배에 기름 부으심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을 위해서 예배자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싸워야 합니다. 매일의 삶에서 거룩함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4. 친밀한 관계

넷째, 예배자가 일상적 삶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삶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이는 주중에는 이것저것 신경 쓰다가 주일 아침부터 그날 예배를 신경 쓰면서 엎드리며 기름 부으심을 원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기름 부으심이 있는 예배는 매일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게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베니힌 목사가 어느 집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면서 온 회중을 압도했습니다. 그런 뒤 저녁때가지 시간을 베니힌 목사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과 다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니힌 목사와 같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 집회에 나갔는데, 오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전 같은 하나님의 임재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바라보는 예배가 되지 못했습니다. 성령님은 오후 시간에 너는 내 앞에 나와서 머물지 않고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렇다고 말씀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갈망할 때 기름 부음이 있는 예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5. 예배자적 삶

다섯째, 예배자가 일상적 삶에서 예배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공중 예배만 집중하는 삶은 안 됩니다.로마서 12장 1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예배는 공적인 예배뿐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알며 사랑할 줄 아는 삶을 사는 그 자체가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예배자적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기름 부음 받은 예배는 평상시에 이처럼 예배자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테크닉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경건의 삶에서부터, 성령에 의지하면서부터 진정한 기름 부음이 있는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오늘 한국교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예배가 풍성해졌습니다. 정말 더 많이 말씀에서 말하는 예배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게 온 열방을 축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가능하도록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풍성해진 예배가 있는 이때에 좀더 우리가 기름 부음이 있는 예배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악기는 필수조건이 아닙니다. 있으면 좋지만 성령을 의지하며 매일의 삶 가운데 거룩함으로 예배자적 삶으로 먼저 주 앞에 간절히 나가면서 드리는 예배에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이때에 우리 교회를 더 높은 차원으로 쓰시기 위한 기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배에 기름 부으심이 있을 때에 부흥이 있는 것이며 부흥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온 땅까지 주를 영화롭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형적으로 잘 짜여진 예배를 넘어서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소리만 많이 내면서 마당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보좌가 있는 지성소까지 나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예배가 돼야 합니다. 그때마다 모든 예배자를 만나주시며 우리를 다시 새롭게 하시며 온 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배자가 되며 예배를 함께 드리는 삶으로 무장된다면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놀랍게 쓰실 것입니다. 

/ 정리 김익겸 기자kik@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