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 5 - 예배의 원칙

 

성경에는 천국에 관한 기록이 많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스펄전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우리가 천국에 도달했을 때 놀라움과 경이함을 안겨주려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 같습니다.”그럼에도 성경에서 천국에 대한 부분을 읽어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예배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한계시록 4장, 5장인데 천국에서의 예배를 주제로 한 내용입니다.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원하신 구속의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이 완성된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성경이 가르치는 예배의 법칙을 다섯 가지로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 가치의 법칙

 

첫째는 가치의 법칙입니다.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려면 예배의 대상에 대한 가치의 인식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는 절대로 출발할 수도 성립할 수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10~11절에는 24장로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있습니다.“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여기에서 예배를 이해하는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합당하오니’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가치가 있으시오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당하오니’란 말은 영어로 ‘worthy’입니다.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하는데 그 어근은 ‘worth’(가치)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이 각각 예배에 대해 가르치는 초점이 다릅니다. 4장은 성부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만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가치, 창조의 신비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어느 과학자는 사람이 서 있는 자체가 신비라고 합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이 신체 구조에서 엎드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엎드려 기어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정말 우습습니다.과학이 많은 것을 발견했지만 하나님의 이 어마어마한 창조는 한 부분도 터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칼 바르트는 과학과 예배의 출발점이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놀라움, 경외감이 과학자로 하여금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지으셨을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놀라움, 경이로움 또 그러한 창조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묵상하던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이렇게 얘기합니다.“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다시 말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실만한 가치가 있으시오니 창조의 가치를 개달은 사람들은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출발점입니다.5장 12절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4장에서 예배 받으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입니다. 5장은 창조자에서 구속자를 거쳐 성자 하나님으로 초점이 옮겨와 있습니다. 7절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기도를 바칩니다. 새로운 노래를 바칩니다. 그리고 1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여기서도 ‘합당하도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번에는 어린양에게 바치는 찬양입니다. 어린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 주시고 그 피를 흘려주심으로 자기 자녀가 되도록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바치는 찬양입니다. ‘합당하도다’를 다시 바꾸면 ‘가치가 있으시다’는 얘기입니다. 창조의 신비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신 그 신비,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신비, 내가 살아서 있다는 것이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창조의 신비를 넘어서는, 능가하는 더 위대한 신비는 구속의 신비, 구원의 신비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내어주셔서 죽임 당하실 어린양으로 예비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거룩한 피를 흘려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왠 사랑입니까? 왠 은혜입니까?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존재가 오직 나 뿐일지라도 하나님은 기꺼이 나를 위해 예수를 내어주셨을 것입니다.그 구속의 신비, 창조의 신비를 넘어서는 이 신비를 묵상하던 사람들이 보좌 앞에 앉아 계신 어린양 앞에 엎드립니다. 여기에서 찬양의 대상은 ‘만만이요 천천인’ 코러스가 큰 음성으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가치가 있으시오니”라고 찬양합니다. 구원의 가치, 구속의 가치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의 그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엎드린 것입니다.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그것이 예배입니다. 그 첫째 법칙은 가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 가치, 예수님이 예수님 되신 가치, 성령님이 성령님 되신 가치, 창조의 가치 이 가치를 깨달은 사람이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경험 - 경험의 법칙

 

둘째는 경험의 법칙입니다. 예배는 경험돼야 합니다. 예배는 이론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경험해야 할 많은 것들 있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것, 이것이 빠지면 예배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 것입니다.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건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5장은 천국의 예배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천국의 커튼을 조금 열어서 보여주셔서 천국의 예배를 보여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1~2절을 읽겠습니다.“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하늘에 문이 열렸습니다. 나팔소리 같은 주의 음성이 들립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올 때는 나팔소리처럼 들립니다. 주의 나팔소리처럼 들리고 성령에 감동하고 있는 가운데 보좌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만유의 창조자, 구속자 앞에 서 있는, 임재 앞에 서 있는, 임재 속에 들어가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 독대하고 홀로 서는 놀라운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어떤 예배 학자는 예배는 아이가 엄마의 젖을 먹는 순간 같은 모습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를 터치하시고 말씀을 공급해 주시고 안아주시고 거룩한 영광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지금 죽어도 행복합니다’라고 느끼는 것이 예배입니다.그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모두 없어도 괜찮습니다. 화려한 예배당, 악기는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다면 우리 예배는 성공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임재를 체험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배를 기획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생각할 많은 것들 중 ‘어떻게 성도들이 임재를 체험하도록 도울 것인지’를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모든 예배마다 하늘 문이 열리고 나팔소리가 들리고 성령의 운행하심 있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집중 - 바라봄의 법칙

 

셋째는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미국의 한 목사님이 유명한 설교가인 헨리 워드 비쳐(Henry Ward Beecher) 목사를 대신해 뉴욕의 큰 교회 강단에 올랐을 때, 몇몇 사람은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헨리 비쳐 목사님을 경배하러 이곳에 온 사람들은 다 교회에서 나가주십시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러 온 사람들만 남으십시오.”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찬양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놀라운 사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흥분됩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합니다. 사랑해도 닮고 미워해도 닮습니다.요한계시록 4장 4절에는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상적인 두 가지가 묘사돼 있습니다. 하나는 흰 옷을 입은 것이고 또 하나는 금 면류관을 썼다는 것입니다.이 두 가지는 하나님의 속성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흰 옷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며 금 면류관은 영광스러움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닮으려고 할 때 이를 악물 필요가 없습니다. 금식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늘 바라보고 살면 됩니다.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예배압니다.예배는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찬양과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보면 어떤 결과 일어날까요? 대상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찬양과 경배하면 닮게 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배의 영광을 놓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산 제물 - 드림의 법칙

 

넷째, 드림의 법칙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10절을 읽겠습니다.“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면류관은 상급으로 받는 것인데 24장로들이 하나님을 세세토록 경배하며 자기 면류관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드렸습니다. 이처럼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예배 정신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드림’입니다. 지금은 실용주의 시대입니다. 실용주의 가치관에 의해 편리한 세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역기능은 이기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익이 나에게 돌아올까를 생각하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으로 우리는 예배드리면서도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예배 시간에 ‘이 시간에 무엇을 얻을 것인가?’ ‘손해 보는 것은 아닌가?’ 등으로 계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러나 여러분,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아니 그의 생명까지 주셨고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분을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생명까지 주셨는데 무엇을 더 기대합니까? 우리를 사랑해서 독생자까지 주셨는데 뭘 더 바라겠습니까? 바라면 더 주시기도 하지만 예배 정신은 받는 게 아니라 드림에 있습니다.우리 개신교 예배에 있어서 과거 가톨릭이 등한히 했던 말씀을 예배의 중요한 자리로 되돌린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하지만 설교 때문에 예배 참석하고 설교가 예배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고쳐져야 합니다. 예배는 찬양 드리고, 기도 드리고, 헌금 드리는 것입니다. 드림의 정신이 치열하게 나타나는 순간은 바로 헌금 시간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케도냐교회 성도들의 헌금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린도후서 8:5)그들은 연보 드리기에 앞서서 자신을 드렸습니다. 여기에 예배 정신의 핵심이 있습니다. 기도, 찬양, 헌금을 드리는 겁니다. 설교 통해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찬양과 기도와 헌금을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게 드림의 법칙입니다.

 

주님과 동행 - 인도의 법칙

 

다섯째, 인도의 법칙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을 읽겠습니다.“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저는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장, 5장은 사도 요한에게 천국 문을 열어 천국 예배 광경 보여주신 내용입니다. 그리고 5장 마지막에 예배가 끝나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6장에는 땅의 광경입니다. 일곱 개의 인봉이 하나씩 뜯겨지기 시작하는데 그때마다 사건들이 진행됩니다. 그러다가 보좌 가운데 어린양이 목자가 되사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어린양은 예배를 받으시던 분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던 그 어린양이 예배를 마치자 우리의 목자가 되셨고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수많은 문제로 쌓여있는 골짜기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던 어린양이 목자가 되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만났던 주님이 여러분 손을 잡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눈물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치료해주는 것입니다. 인도하심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이고 영광입니다.2차 대전 터지고 영국인이 당황하고 있을 때 윈스턴 처칠은 윌리엄 템플 대주교에게 방송에서 설교하시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때 템플은 “여러분, 전쟁은 큰 일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일은 대영제국 국민들을 창조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주일에 모두 모여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을 수 있다면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성경적인 예배의 법칙을 템플의 놀라운 강의로 마치려고 합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의해 양심을 각성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리로 지성이 깨지는 것이며, 하나님 사랑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 목적으로 일생을 바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모두 일 평생 예배의 영광을 맛보게 하시고 예배자로 승리하게 하시고 교회마다 예배 드릴 때 진정한 부흥이 있게 하시기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정리 김익겸 기자kik@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