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첫째날 패널 - 예배

 

사회 : 한홍 목사 (온누리교회 양재 수석)패널 : 조정민 전도사 (전 imbc대표, 보스톤 온누리비전교회 전도사)          김요셉 목사 (원천침례교회 담임)         주승중 교수 (장신대대학원)

 

 

 

 

한홍: 칼빈 같은 경우는 예배의 엄숙함을 강조해 어린아이들이 시끄럽게 굴면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원천침례교회는 가족이 함께 드리는 가족예배를 무척 장려하는 교회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김요셉: 세대간 믿음을 전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른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는 것입니다. 세대간 예배가 달라지는 것 중 하나가 우리가 부모들의 예배에서 아이들을 내보내고 다세대 예배의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처럼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교회는 대예배에 어린 아이들이 들어와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 규모가 커지며 점점 나이가 많은 어린이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의 원래 비전과 다르며 우리가 용기가 없고 게으른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원칙적으로 갓난아이부터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주승중: 초대교회는 어린이 따로, 어른 따로가 아니라 남녀노소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 백성으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학교로 따로 예배를 드린 것은 산업혁명 이후 일입니다. 어른들이 일터로 나가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자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시작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가족예배는 초대교회의 뿌리를 되찾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의 중요 요소

 

한홍: 2000년 교회사가 진행되며 예배 의식 속에 예수님께서 제정하지 않은 것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배에서 강조한 중심축은 어떤 것이었습니까?주승중: 예배 순서에 있어 ‘이것이 정답이다’하는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 예배 순서를 명기해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 안의 파편적 기록, 초대교회 문헌들을 통해 초대교회는 말씀과 성만찬 예전으로 예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예배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몇 가지는 성찬과 회당예배의 영향을 이은 말씀, 설교, 시편을 통한 찬양과 기도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예배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굉장히 역동적으로 성령님께서 역사하는 모습입니다. 성령이 역사해 예배 중 방언을 하고 계시의 말씀을 직접 성도에게 말하는 등 자발적이고 참여적이며 역동적인 모습이 있었습니다. 구약 회당예배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중요한 요소들과 동시에 자유롭고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 모습이 어우러진 예배였습니다.조정민: 초대교회 예배가 모두 바람직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고린도교회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예배 도중에 무질서하게 방언하고 예언하는 문제에 대해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것처럼 예배의 질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홍: 그렇습니다. 요즘은 예배 준비를 할 때 큐시트를 만들고 언제 조명이 꺼지고 성가대가 올라오는 지, 설교까지도 치밀하게 준비합니다. 예배 준비하면서 성령의 자유로운 간섭하심을 어떻게 잘 조화시키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주승중: 신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바울이 ‘내 영으로 예배한다’고 말한 것처럼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를 구속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닌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근거한 질서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예배에서 없으면 안 되는 요소입니다. 주승중: 지금 한국 교회는 예배를 1시간 내에 마쳐야 한다는 압력이 있고 큰 교회일수록 시간 쫓깁니다. 제가 한 큰 교회 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그 교회 목사님은 매주 세 페이지 분량의 설교를 하시고 그 교회 주보에는 그 주 설교 말씀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목사님의 설교가 길어져 두 번째밖에 설교하지 못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세 번째는 주보를 참조하라며 마치셨습니다. 저는 그때 마치 공정과정처럼 예배를 찍어내듯이 하는구나하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런 예배를 원하실까요? 미국 흑인들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열정적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는 너무 인간적인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예배를 제한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배와 평신도의 역할

 

한홍: 교회사에서 믿음의 선배들은 예배가 지나치게 전문화되는 것을 경계해 왔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김요셉: 저는 아직도 종교개혁이 덜 끝났다 생각합니다. 예배 가운데 안수 받은 목사들만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재고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에 대해 많은 글을 쓴 라버는 ‘워십은 동사’라며 예배의 동참과 적극성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성도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봅니다. 예배를 보는 것까지도 좋습니다. 대부분은 목사님이 드리는 예배를 당하다가 나갑니다. 우리는 동참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누군가 평신도의 사역을 운동 경기에 비유해 객석에서 봐야 할 교역자들은 운동장에서 뛰고 있고 누구보다 운동이 필요한 성도는 관객이 되어 앉아있다고 말했습니다. 뛰고 있는 목사가 올라와 앉고 성도가 올라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입니다.

 

조정민: 평신도의 참여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요? 미국 교회 대부분은 평신도들이 축도까지 합니다. 우리는 전도사도 축도를 못합니다. 캐나다 한 교회는 말씀에 은사 있는 성도에게 일년에 한편씩 말씀을 준비하라며 설교 강단을 내 놓기도 합니다. 설교 강단을 개방할 용의가 있겠습니까?김요셉: 저희는 용의 있습니다.주승중: 평신도 설교에 대한 문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에서 한번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실 모든 교인이 세례 받으면 전부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만인제사장 설이 맞습니다. 영어로는 이 섬김을 정확히 구분합니다. 모든 성도는 주의 몸된 교회 섬기는 섬김 사역 ‘미니스트리’(ministry)를 합니다. 안수 받은 사람들 ‘오데인드 미니스트리’(ordained ministry)는 교회 공동체가 그들에게 합당한 전문적 훈련 받게 해서 안수로 세워 교회의 가장 중요한 말씀과 성례전을 집행하도록 위임하는 것입니다. 이 구분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한홍: 예배의 익숙함을 깨고 항상 하나님 앞에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주승중: 예배 구성하고 집례하는 목회자가 예배 인도자가 아니라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야합니다. 예배 순서는 처음부터 이래야만 한다고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예배가 같은 형식으로 이어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칼빈은 때로 십계명을 낭송하고 죄 고백으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되 순서와 내용은 문화의 옷을 입고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속해있는 장로교의 경우도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예배 순서 하나 바꾸는데 1년이 걸리고 때로는 순서를 바꿨다고 쫓겨나기도 합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예배의 익숙함에서 오는 병폐의 하나입니다.김요셉:  저는 예배 매너리즘에 빠지면 핸드폰에 쓴 ‘Audience One(관객은 오직 한 분)’라는 문구를 봅니다. 우리 예배 안에 무릎 꿇게 하는 분은 오직 한 분입니다. 우리는 다 다윗처럼 춤추는 자고, 우리의 모든 재롱을 받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열린예배와 전통예배의 논란

 

한홍: 리쳐드 박스터는 선한 목자상이라는 책에서 영적 지도자는 끝없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는 사람이라 말했습니다. 주제를 바꿔 한국 교회에서 지난 10년간 열린 예배와 전통예배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주 교수님은 그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주승중: 열린예배는 시커스 센스티브 워십(Seekers Sensitive Worship)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며 ‘구도자 예배’란 표현이 딱딱하니 당시 80년대 말 유행하던 열린 교육, 열린 음악회처럼 ‘열린’이란 말을 사용해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열린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문화 벽을 낮춰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돕자는 목적에서 시작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고 집회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구도자 집회’란 번역이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 열린예배는 의미가 바뀐 것 같습니다. 오늘 말하는 열린예배는 젊은 세대가 젊은 문화권 속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열린예배는 구도자 집회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에서 한국교회에서 상황화 된 예배라 생각합니다.김요셉: 저도 번역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구도자 중심이 아닌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입니다. 구도자가 예배자는 아닙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자가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윌로우크릭 교회의 경우도 집회(Service)라고 하지 예배(Worship)라는 단어를 잘 붙이지 않습니다. 때로, 예배를 교인을 늘리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전통적예배든 열린예배든 그 초점이 관객 취향에 맞춰져 있다면 다 발상이 잘못됐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배 관객은 한 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전통과 새로운 문화코드를 절묘히 잘 조화시킨 교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계속 노력하고 시도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조정민: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95%가 배경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드리는 예배라고 합니다.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 예배를 드린다 해도 ‘닫힌예배’입니다. 2000년 전 주인과 종이 같이 예배드렸습니다. 진정한 예배라면 누가 어떤 형태로든 나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형식이나 이름을 열린예배라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한홍: 잔매카터가 윌로우크릭 구도자 예배가 논쟁이 됐을 때 그것을 비난하며 ‘예배는 구원받은 자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구도자예배는 예배라 볼 수 없다’고 비난하자 빌 하이벨스가 ‘예배는 하나님 위해 드리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 마음은 늘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들이 예배자가 되기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가는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반박했습니다. 세 분의 이야기도 그런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주승중: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과 만남이며 구속의 은혜를 깨달은 자가 감사함으로 응답해 하나님 앞에 나와 만남이 이뤄지는 현장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를 드렸다면 그 결과 우리의 삶이 자연스럽게 예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예배는 반드시 미션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첫 번째 미션은 나가서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선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에 특별히 구분 짓고 싶지 않습니다. 예배같은 집회도 있고 집회 같은 예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수천 년 내려온 교회 역사와 전통 무시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질서 위에 역동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조정민: 많은 회중 중 마음이 하나님께 초점 맞춰져 예배자로 앉아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도 그 자리에서 예배자로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처음 나와 예수 영접도 못하고 정식 교인으로 등록도 못했지만 정말 상한 심령을 가지고 주님 앞에 한나처럼 기도한다면 그 분은 예배자로서 앉아 있는 것이지 집회 참석자로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영상예배

 

한홍: 디지털 세대가 되며 화두가 된 것이 영상예배입니다. 온누리교회도 그렇고 대형교회가 영상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김요셉: 무엇이든지 남발하면 좋지 않습니다. 예배 도구로 영상을 사용할 때 설교나 다른 부족한 것을 대체하며 의존하려 하면 안됩니다. 영상 사용은 필요하면 신는 신발이지 의지하는 목발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드리는 사이버 예배에 대해 사실 저는 저항이 많습니다. 예배의 공동체성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번거로움에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시간을 들여 다른 사람과 부딪치며 드려야지 자신의 편리를 위해 사이버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승중: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백성인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몸 된 지체인데 따로 떨어진 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사이버 예배는 이 공동체성을 깨뜨립니다. 예배가 하나님과 성도의 만남인데 사이버상에서 정말 인격적 만남이 이뤄지겠는가 하는 확신이 없습니다.또 하나 예배에는 잔치적인 축제적 성격이 많습니다. 초대교회 예배가 구약과 다른 것은 기쁨으로 떡을 뗐다는 것입니다. 떡을 떼는 것은 성찬을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며 잔치를 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매 주일이 작은 부활절이며 잔치요, 기쁨이며 감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핍박당하면서도 예배를 통해 힘을 얻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의미를 사이버 상에서는 얻기 힘듭니다.조정민: 지난 겨울 보스톤에 눈이 너무 많이 와 온 시내가 다 폐쇄됐고 교회도 폐쇄돼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예배가 그때처럼 고마운 적이 없었습니다. 각 가정에 연락해 인터넷으로 한국에서 드린 주일예배 동영상을 통해 그 주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중에 예배드린 감동을 피드백했는데 놀랍게도 우리에게 동일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공동체가 중요하지만 공동체에 나와도 공동체 의식이 전혀 없을 수 있고 작은 공동체에서도 충분히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듯이 그 예배 가운데서 충분히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

 

한홍: 예배는 24시간 우리 삶으로 연장되어야 한다고 게리 파렛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연장으로서 예배에 대해 각자 느끼는 것을 이야기 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주승중: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면 우리 삶이 예배드리는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칼바르크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예배는 크리스천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이다. 예배에 실패하면 다 실패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결국 삶도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배가 중요합니다. 또 한가지, 예배 가운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역사하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주님의 영인 성령님께서 그 자리에 함께 계시고 우리의 예배를 도우시고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김요셉: 이 훌륭한 축제를 보며 자기 교회는 이렇게 예배 드릴 수 없어 혹시 좌절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최고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이 예배의 모든 준비는 엄청난 힘이 들었고 완벽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린다면, 그것이 때로 아마추어 같거나 잘 차린 무대 아니라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습 그대로 받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조정민: 세상도 돈, 자기 자신 등 많은 것을 예배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힘을 잃고 우리가 기대한 것만큼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 예배가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섰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감염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적극적인 전염자가 되길, 삶의 예배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 정리 전성희 기자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