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 4 - 경배와찬양의 영성

 

교회의 영성은 지도자의 영성입니다. 지도자의 영성은 그 교회 예배를 결정합니다. 교회 비전이 내 비전이라고 말하는 교인이 있는 교회는 분명히 영적으로 영향력을 주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시대 교회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함께 듣기 원합니다.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원하는 교회 모습을 통해 경배와찬양의 영성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영성이 있으면 환경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디 있든, 어떤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영성 있는 교회,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고 받을 수 없는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였습니다. 칭찬은 못 받고 책망만 받았습니다.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교회는 칭찬을 받았지만 책망도 받았습니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받았습니다. 오늘 이 교회들을 통해 교회의 영향력 있는 영성, 사람들이 변화되는 영성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 것은 부요한 교회도, 숫자가 많은 교회도, 영향력을 주는 교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쓰시는 교회는 예배 중에 헌신과 의탁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부르시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겠다는 헌신자가 없다면 예배의 화려함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악기의 소중함, 탁월한 재능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예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과 섬김이 없는 예배라면 죽어있는 것입니다.예배는 노래가 아닙니다. 탁월한 기능이나 기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경배와찬양의 영성은 세 가지를 지향합니다. 발람의 교훈을 받지 말고,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거절하고, 이세벨의 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하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교회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작은 교회, 작은 공동체라도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에베소교회를 보겠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요한계시록 2장 1절에서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는 로마 영토 동쪽부근에 있던 당시 영향력 있는 세 도시 중 하나인 시리아의 안디옥과 알렉스를 따라 형성된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무역의 중심이고, 자주민주 도시로 풍요로운 장소였습니다. 예배소 교회만큼 영적으로 풍요로운 교회가 없었습니다.에베소 교회는 사도바울의 영적 권위와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가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섬기고,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도요한이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한 놀라운 복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보다 더 풍요롭고 복 받은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문제는 첫 세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지도력이 약해졌을 때 찾아왔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후에 세워진 두 번째 세대의 지도자는 첫 세대의 지도력 통해 받은 풍요로운 유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는 마음과 물질을 드렸고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 건물도 생기고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어 많은 사람이 이 교회를 배우러 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영적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최선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주님께 돌아가긴 했으나 주후 300년에는 에베소교회라는 이름조차 없어진 교회였습니다.우리가 교회를 세우고 영적 지도력을 세운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께서 쓰실 때가 교회입니다. 영향력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브랜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첫 사랑, 희생이 있는가

 

에베소 교회는 첫 세대 지도자가 세상 떠났을 때 문제 생겼습니다. 그들이 받은 영적 유산이 물질과 풍요, 건물, 사역으로 나타났지만 서로에 대한 친근감이 없었습니다. 서로 진실을 나누지도 않았고 맡겨진 일이기에 의무감으로 기계적으로 일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교회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요한계시록에 주님은 에베소교회가 열정이 있고 고난을 견디며 악한 것을 피했다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며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을 책망하셨습니다.주님을 향한 첫 사랑의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우리의 모습은 다른 곳과 비교해 가난하고 작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보지 않으십니다. 첫 마음을 지키고 있는지, 하나님이 불러주셨을 때의 감격을 지켜가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의무감 속에 보이기 위한 화려한 예배가 아닌 그리스도의 감격 속에 주님을 높이는 찬양을 하셔야 합니다.우리 속에는 보이는 것에 치중하거나 가식이 많습니다. 발람과 니골라당의 가르침 속에서 헌신과 희생이 없고 이세벨의 영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는 예배, 웃고 즐기는 예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웃는 만큼 눈물을 흘리십시오. 웃는 만큼 희생하십시오. 웃는 만큼 대가를 치르십시오. 이런 대가와 희생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싫어하고 거절하는 예배입니다. 화려한 소리가 나지만 허공을 치고,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교회는 영향력 있을 때만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만 교회입니다.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나 병자를 치료하는 치료소, 군대 병영도 아닙니다. 사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때 그 말씀 배우고자 하는 존경심 생겨야 하는 곳, 기적과 표적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증거하고, 성도들이 자기 것을  나눠야 합니다.이런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슴과 심장을 치며 몸부림치는 예배, 주님을 높이는 예배, 선교하는 예배, 살아계신 하나님을 높이는 사업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첫 사랑을 오늘 회복하십시오. 첫 사랑의 감격이 없는 분은 지금 이곳에 있는 성령님을 만나고 첫 사랑을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을 보려면 예수님을 봐야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 앞에 오는 것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야

 

생명력 있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며 시작합니다. 우리 교회 오는 모든 사람은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 모두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있어도 가고자 해야 합니다.그러나 두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고, 어려운 것을 덮고, 필요하면 물질로 다 도와주겠다고 하는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원치 않습니다. 성령의 부흥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보다 인간적으로 하려 합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돕는 것이지 사람이 돕는 것이 아닙니다.세 번째 버가모교회는 요한계시록 2장 12~17절에서 발람과 니골라당의 유혹을 받고 이교도적 예배를 드려 하나님께 거절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의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우리 생각과 삶으로 낮추지 않고 힘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으로 고난을 받으면 그 고난은 반드시 축복으로 변합니다.요한계시록 2장 12~13절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을 숭배하는 위에 있으며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진실하고 충성되고 신실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발람과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하나님께서 기뻐하며 쓰시는 영성은 항구도시 음란한 곳에 살든지, 견고한 터전에 살든지, 물질의 풍요를 누리든지, 고난과 고통 속에 있든 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15~16절을 보면 버가모 교회의 신실한 사람들 중에서도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람은 모압의 왕이었던 발락이 이스라엘을 세 번이나 저주하도록 매수당했던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진리를 진리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고 이교도 예배를 그대로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와 성도들이 구별됨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니골라당 가르침은 오늘날 ‘네가 사회 속에 살려면 식견이 좁고 그렇게 답답하게 대인관계를 해서는 안된다’며 다가옵니다. 교회 안에서 구별된 성도로 살아가지만 사회에서 술 마시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됨 없이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죄는 전염성이 있어 순식간에 주위를 오염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변화되어 거룩한 삶으로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면 니골라당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알인가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사람은 지금까지 세상 살아온 방법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여지대로 갈 수 있도록 열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도 열어놓지 않고 우리 생각과 방법대로 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내 방법과 내 생각, 편하게 익숙해져 있던 삶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익숙한 데서 편하게 행동합니다. 죄가 익숙하고 세상이 익숙하고 내가 하던 방법이 익숙해 교회 안에 가져와 행합니다. 이것이 니골라당의 가르침입니다.힘들고 어려우면 술로 타협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다 끊어지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병든 사람이 교회에 오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 변화시키는 사람이라면 영향력이 있어야 합니다.교회의 영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넷째로 두아디라 교회를 살펴보겠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에베소나 서바나처럼 로마 황제에게서 핍박을 받은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무역 도시라 길드라는 노동조합이 있었고 여기에 가입해야만 상행위를 하고 먹고 살 수 있다는 특수성이 있었습니다. 무역 도시 조합에 가입한 그리스도인이 우상 재물을 먹고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가 우상을 숭배하고 탐욕적인 사람과 이세벨의 행음을 용납한 사람들을 어떻게 책망했는지가 요한계시록 2장 20~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열왕기하 9장 22절을 보면 이세벨을 음행과 술수가 많다고 기록합니다. 열왕기상 18장 19절을 보면 이세벨은 바알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함께 같은 상에서 식사를 했다고 나옵니다. 이세벨은 바알을 섬기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기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이세벨에게 바알을 섬길 것인지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세벨의 영이 들어가 바알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는 당장에 힘들고 손실이 있어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바른 영성입니다. 이 영성이 바로 경배와찬양의 영성입니다.우리는 오늘 하나님 앞에 결정해야 합니다. 사역자라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로 쓰임받기 원하면 해야 합니다. 다른 교회의 영향력을 받아서 일한다고 그 교회가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향력은 첫 세대에서 끝납니다. 두 번째 세대의 교회가 영향력이 있으려면 그 영성을 가지고 그 목회자와 지도자가 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교회의 이름을 빌어 일어서려 하지 마십시오. 순간은 부흥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이름을 빌린 교회의 영향력일 뿐입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고 자랑하고 나눌 수 없는 교회여도 “내가 사랑하는 교회다. 내가 기뻐하고 받아들이고 너희가 바로 날 기뻐하는 교회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교회가 영향력 있는 교회입니다. 

 

고난 중 ‘증인의 삶’ 살아야

 

라오디게아는 은행과 의과대학이 있었고 섬유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도시였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서 22절 보면 예수님께서는 금과 흰옷과 안약의 비유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부요해지는 교회가 되기 원한다면 불로 연단한 금을 사 부요하라고 18절에 말씀하십니다.라오디게아는 부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연단한 금을 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순금이 되려면 불순물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금이 될 때까지 세공업자는 수십 번 불로 연단합니다.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연단해서 금처럼 귀중한 영적 가치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둘째, 예수님은 흰 옷을 비유해 정결히 되라고 권면합니다. 흰옷은 세 가지 상징이 있습니다. 축제, 승리.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순결한 신부의 상징입니다. 다른 지역보다 섬유산업이 탁월히 발달한 이 지역에 예수님께서 내게 와 흰옷을 사 입으라 말씀하셨습니다.셋째, 의과대학 있고 안약이 가장 발달된 이 교회를 향해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고 말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늘 진리를 발견했다면 우리 삶의 투쟁이 달라져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통해 가장 영향력 있고 건강한 교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고 경배와찬양의 영성은 바로 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서 기초합니다. 서머나교회는 고난받는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버가모에서 이주한 사람이 영향력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으며 주님을 증거하는 모습을 기뻐하셨습니다. 교회 안의 진정한 복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고난을 받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은 “입에는 궤사가 없고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길을 걸어가고 하려 하심이다. 나도 그분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이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저는 모든 목회자와 사모, 사역자들이 마음에 있는 무거운 것을 버리기 바랍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을 따르는 성도를 보면서도 부딪치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고 덮어버린 적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실 때가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인격과 사랑을 가지고 싸우십시오. 뒤돌아 타협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게 되어도 싸우십시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외에 다른 교회는 없습니다. / 정리 전성희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