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이명박, 열정의 지도자-첫날 특강

이명박 시장 ‘열정의 지도자’

예수님과 동행, 참된 리더십에 이르는 길

저는 한국에서 CEO를 가장 오랫동안 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CEO를 한 까닭인지 사람들은 기업인 중에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지 물어 올 때가 있습니다. 역시 CEO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좋아합니다.

예수님이 기업을 했다면 존경받는 총수가 되셨을 겁니다. 정치를 했어도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약소국도 사랑하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셨을 겁니다. 꼭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본받을 만한 분이십니다.

힘을 모으는 협력의 리더십

저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장, 계장 할 나이인 만 35살에 저는 현대건설의 사장이 됐습니다. 상관으로 모시던 60, 70대 임원들을 다시 거느리게 된 상황에서 리더십이 절실했습니다. 모기업 사장으로서 사장단 회의에 들어가 보면 사람들의 몸은 제 쪽을 향해 있는 데 얼굴은 반대 방향을 향해 있기가 일쑤였습니다. 저에게는 제 코드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갈아치울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리더십이 아닙니다. 이 세상 직위는 계급이 아니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봉사했더니 나이 많은 사장단들이 자세를 바꿔 오히려 저를 더 적극적으로 도와줬습니다. 세상일은 혼자되는 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리더십은 혼자서 독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협조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장로라는 직분이 부담이 될 때도 있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장로가 저럴 수 있냐’는 핀잔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장로라는 단어를 떼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시장은 잠시지만 장로는 영구직이기 때문입니다. 참 조심스럽습니다.

악인을 통해서도 길 열어주신 하나님

어릴 때 옆집에 거지 친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옷을 기워 입고 보잘 것 없이 먹던 우리 집과는 달리 그 친구는 자신의 부모님이 여기저기서 구걸해 온 것으로 우리 집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했습니다. 거지보다 못한 생활을 했습니다. 친구 집과의 사이에 쳐진 칸막이 위로 몸을 고추 세워 친구네 집을 엿볼 때면 부러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워싱턴에 머물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만나자고 하길래 대면해보니 어릴 때 바로 그 거지 친구가 아니었겠습니까. 그 친구는 “모든 걸 구걸로 해결하려던 우리 어머니보다 물질이 없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살려고 애쓰던 자네 어머니의 교육이 더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돈이 없어 저를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어머니에게 저를 괴롭히던 지독하기로 소문난 한 선생님이 찾아와 양심의 가책이 된다며 고등학교를 보내라고 독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형 한 사람만 대학가면 되고 저는 그때까지 한 것처럼 일을 해 가계에 봉사하길 바라시고 계셨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반대했습니다. 선생님도 우리의 형편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타협안으로 야간상업고등학교에 시험을 쳐서 1등을 했고, 전액 장학생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었습니다.

이 일로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사람만이 아니라 악한 사람을 통해서도 길을 열어 주십니다. 정말 미운 사람이 주위에 있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갖는 것. 이게 바로 CEO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품는 리더십, 사랑의 리더십

청계천복원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을 때 이를 반대하는 연구결과를 여당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기술자들과 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명단이 아랫사람에 의해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여당 소속 공무원을 중심으로 정책반대론이 형성됐듯이 이들을 해직시키려는 참모들의 심중엔 그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차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시된 명단 자체를 보길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서울시 공무원들이 다시 한 번 저와 함께 뭉쳐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 때 이름조차 보지 않았던 일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도심에서 한강까지 걸어가면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청계천복원이 민간기업에 버금가는 속도로 진척되고 있는 것은 내가 선거할 때 반대하던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한 까닭이 아닐까라는 짐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들 때문에 일이 더 빨리 된 것입니다. 이것도 CEO 예수님의 리더십입니다. 용서하는 겁니다.

한편, 서울시에는 약 36만 명의 고등학생이 있습니다. 게 중에 작년에만 1만 여명의 학생들이 집안의 경제난을 이유로 학업을 그만뒀습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학구열이 높은 한국에서 경제난을 이유로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의 서민 경제가 얼마나 힘든 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과거 때문인지 몰라도 적어도 서울시 내에서는 돈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생활고를 이유로 고등학교를 그만 뒀거나 그만 둘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추천받아 서울시가 그들의 학비를 전액 부담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제 곧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볼 것입니다.

이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미연에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논리로 설득을 했습니다.

수혜 학생들을 잠실체육관에 모아 놓고 성대한 행사를 통해 생색을 내라는 참모들의 얘기에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학생들에게 얼마나 비참한 마음을 안겨 주겠습니까. 타인을 도와 줄 때에는 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장학금을 받게 된 학생들의 명단이 일제 나돌지 못하게 엄격한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대신 학생들에게 구두로 조건을 달았습니다. 10년, 20년 뒤에 잘되면 받은 만큼 후배들을 도와주라고. 이 조건을 단 건 돈을 상황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비참한 마음을 느끼지 않도록, ‘그래, 나는 이 돈을 잠시 빌린 거야. 나중에 꼭 갚을 거야’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느 여대 앞에서 뻥튀기 장사를 할 때가 떠오릅니다. 나이 어린 학생이 장사를 하고 있자니 만나는 사람도 여러 부류였습니다. 게 중에 가장 고약한 사람은 다가와서 아버지는 뭐 하느냐,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등을 꼬치꼬치 캐묻고 그냥 가버리는 사람입니다. 반면 가장 고마운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뻥튀기를 팔아주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도와 줄 때는 말이 아닌 행함으로 보여야 하며 자존감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음의 부자를 실천한 어머니의 리더십

어릴 적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알고 지내는 한 분의 집에 혼사가 있다며 가서 도와주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길을 재촉하는 제게 “가서 일하되 물 한 모금도 주워 먹지 말고, 주는 것도 일체 받아 오지 말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유혹을 물리치고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하루가 저물고 일이 마무리되자 그 집 어르신이 부르시더니 “너 같이 열심히 일하는 아이는 처음 봤다”며 몇 가지를 챙겨주시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주의를 떠올린 저는 정중히 거절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마음에 엄청난 자유와 뿌듯함이 넘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부자들에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 좋았습니다.

거지 건성을 떨쳐버리게 하기 위한 어머니의 심지 곧은 교육방식이었습니다.

총학생회장을 하며 감옥까지 갔다 왔지만 사회주의자가 될 수도 있는 환경을 넘어 하나님의 길로 온 것은 물질은 거지보다 못했지만 마음은 부자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이었습니다. 특정 대학을 작정하지 않고 경영학과면 어떤 학교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청계천 헌책방을 찾아 갔습니다. (제가 청계천과 인연이 많죠?) 수험서를 달라는 제 말에 문과인지, 이과인지 헌책방 주인이 묻길래 ‘경영학과’라고 대답할 정도로 무지할 때였습니다. 그 분의 소개로 강북에서 반포대교 넘어가기 전에 있는 한 곳에서 환경미화원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주경야독식의 생활이 지나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고향에서 올라온 어머니는 단칸방에 거처를 정하고 이태원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마저도 시장에는 장사할 자리가 없어 어느 가게 앞에 양해를 구하고 판을 펼친 것이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고려대학교 합격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순간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제일 먼저 합격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태원시장을 향했습니다. 어머니의 귀에 대고 고려대학교에 합격했다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고 봤더니 어머니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합격한 사실로 이해한 것이었습니다. 한참 만에 아들의 합격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머니는 등록금 걱정에 “네가 큰 일을 저질렀구나” 라며 책망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며칠 후 어머니의 다급한 호출이 있었습니다. 가 뵈니 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저의 등록금을 마련키로 했다며 대학을 가라고 어머니께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정식 자리도 아니고 남의 가게 앞을 빌어 장사하시던 어머니가 시장 상인 전체의 도움을 이끌어 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시장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이 파장하면 마지막까지 시장 바닥의 청소를 도맡아 하셨고, 시장통에 싸움이라도 생길라치면 항상 공정한 의견을 내놓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주일 성수도 빠뜨리지 않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자신이 일하는 영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시장 상인들은 저를 보지 않고 어머니를 보고 저를 믿어준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행함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리더십의 비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일본의 유명한 한 호텔에서 어느 종업원들에게 일을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소포 부치는 일을 맡기고 돌아서는 데 ‘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소포를 안 부쳐버리면 어떻하지?’하는 의심이 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되돌아가 이름을 물으니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본사람입니다.(I am a Japanese!)." 일본사람이라는 신분이 곧 ‘보장’을 의미한다는 투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정체성(Identity)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정직하게 행한다면 우리사회는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영향력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청계천과 관련해 노점상들과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의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사명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220V로 플러그 인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들이 되길 바랍니다.

/정리=차명권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