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갈릴리 집회 말씀 - 폭풍속에 계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14장 22~33절하용조 목사 지금 우리는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계시던 때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이 자리에 그 감동과 환상이 느껴집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전에 예수님께서 2,000년 전 갈릴리 바닷가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만나주시고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며 사명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 평화의 대행진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개인 문제, 가정 문제, 직장 및 사업 문제, 그 밖의 모든 갈등이 해결되길 축원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스라엘에 오기까지 쉬운 걸음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개인적인 사정이 많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극복하게 하시고 갈릴리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의 예수님  서울에 있는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이 오전 11시 30분 예배에서 우리가 갈릴리 현지에서 드리는 예배 실황을 생중계로 보면서 함께 예배드린다고 하니 얼마나 흥분되는지 모르겠습니다.예수님 당시의 갈릴리는 그대로이고, 지금 뜨고 있는 해도 예수님께서 맞이하시던 것이며, 지금 불고 있는 바람도 예수님의 귓가를 스쳤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었지만, 지금은 1,500명이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뒤편으로 갈릴리 호숫가에 어제 저녁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큰 화재가 일어나  많은 소방차들이 출동했습니다. 4시간 동안이나 불을 꺼지지 않는 바람에 사람들이 아주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대학생 200여 명과 CGN-TV팀이 24시간 동안 오늘 방송을 위해 준비 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메시아닉 주’인 사무엘 스미자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스미자 목사님은 사루엘여행사의 사장이신데 오필우여행사와 함께 조명과 음향을 준비하시느라 밤늦도록 고생들을 했습니다. 특히 스미자 목사님은 부친 때부터 ‘메시아닉 주’로서 이스라엘 땅에서 힘들고 외롭게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성경책도 찍어내고,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을 도우며 섬기고 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화재가 발생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시간 동안 대형 화재가 발생한 덕분에 모든 벌레들이 사라진 줄로 믿습니다.(웃음) 또한 갈릴리 주변으로 경치가 좋기 때문에 많은 야영객들이 찾아와 자리를 차지하고 절대로 비켜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야영객들에게 미안하지만, 하나님께서 불이 나게 하셔서 우리는 몸싸움 한 번 하지 않고 깨끗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또 소방차가 와서 물까지 뿌려 깨끗이 청소해 주어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웃음)지금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은혜가 됩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오늘 정말 주님께서 우리를 말끔히 치유하시길 원합니다. 더러운 마음, 음란한 마음, 고통스러운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치유받길 축원합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모두 떠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질병들이 떠나가고 모든 고통과 절망과 상처가 치유되길 축원합니다. 오늘 저는 이 귀중한 시간에 무슨 설교를 할까 생각하다가 마태복음 14장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여기에 ‘즉시’와 ‘재촉하다’라는 두 단어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축복산이 저기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기도하러 홀로 산에 오르신 예수님 그때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열정적인 인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모두 물리시는 동안 제자들을 저 쪽에서부터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쪽으로 배를 타고 이동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내시고 나서 기도하러 산에 오르십니다. 23절 말씀을 봅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여기서도 ‘따로’와 ‘혼자’라는 두 단어가 눈에 띕니다. 예수님께서 환호하던 사람들을 떠나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람이란 인기가 있고 성공했을 때 떠나기 쉽지 않습니다. 인기에 머물고 싶고 성공에 머물고 싶으며 사람들의 환호성에 머물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환호성에 안주하시지 않습니다. 앞서 제자들을 보내시고 무리들을 떠나 홀로 오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저녁 때 배에 올랐습니다. 우리 시각으로 아마 오후 7시쯤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잠깐 노를 저으면 닿을 거리이기에 안심하고 배에 올랐을 겁니다. 어제 이곳에 생각지도 못한 화재가 나자 바람이 부는 바람에 4시간 동안 진화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지중해성 기후는 잠잠하다가도 갑자기 바람이 불고 심지어 폭풍우까지 몰아치는 것이 특징입니다. 태풍에 고난 당하는 제자들 우리 교회 성도인 로마 주재 조 대사님이 이번에 로마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 부부가 지중해 일대를 뱃길을 이용해 여행했는데 태풍이 불어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배가 꼼짝도 못한 채 갇히게 되었습니다. 항구에 정박하면서 기다렸지만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오고 말았답니다. 그 부부는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을 처음 겪어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대목입니다. 24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여기에 또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을 말해 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인생이 항상 순풍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인생이 전개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결혼할 때, 아기를 낳을 때와 키울 때, 나이가 들어갈 때, 직장에 다닐 때 고난의 물결이 치고 파도가 계속 출렁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고 나면 갑자기 쓰나미가 덮쳐 옵니다. 숨 고를 겨를도 없습니다. 정신없이 인생의 파도에 휘말리는 것이 삶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를 건너던 모습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함을 느낍니다. 25절 말씀입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이 말씀은 간단하게 기록돼 있지만 그 안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밤 사경’이면 지금의 새벽 3시쯤 됩니다. 오후 7시쯤 배가 출발해 새벽 3시까지 고난을 겪었으니 7~8시간을 태풍과 사투를 벌였다는 얘기입니다. 태풍이 몰아치면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태에 빠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앞으로 가야 하는데 항상 제자리에 맴돌고 있습니다. 진보 없는 인생, 변화 없는 인생, 애를 쓰는데 열매가 없는 인생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목적지를 향해 밤을 새우면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   그런데 4복음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홀로 올라가 기도하신 산은 바다 한가운데서 고생하는 제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리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외면하시거나 주무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십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예수님께서 서서 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겪을 때 홀로 겪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난 현장을 지켜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우리의 신음을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밤 사경, 곧 새벽 3시까지 주무시지도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더 이상 앉아서 기도만 하실 수 없는 상황이라 일어나십니다. 더 두고 본다면 제자들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난이 길어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 대해 모두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급히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물 위를 걸어서 가신 줄 아십니까? 새벽 3시에 타고 갈 배도 사공도 없었기 때문입니다.(웃음) 바다 한복판에서 제자들이 사투를 벌이는 한 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가시기로 결정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가 없으면 물 위를 걸어서라도 찾아오셔서 인도해 내십니다. 주님은 불가능이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문제 해결을 도와주십니다. 한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시리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위기를 겪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 하시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인간의 경험과 이성과 상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섭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을 때 좌절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럴 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26절 말씀을 모두 같이 봅시다.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예수님을 잘 알고 따르던 제자들마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하다니 매우 이율배반적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성을 내십니다.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예수님께서 위기에 빠진 제자들에게 길게 설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긴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안심하라’는 말이 최고입니다. 오늘 그 음성을 듣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물 위를 걸은 베드로  이번에 우리는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관광하러 온 게 아니라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중보 기도하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곧 회복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됨으로써 전 세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그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땅에 있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위로해 주십니다. 28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너무나 놀란 나머지 얼떨결에 ‘주여,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면 나도 한 번 물 위로 걷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상하고 엉뚱한 베드로의 간청에도 아무 갈등 없이 대답하십니다. 29절 말씀을 봅니다.“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제가 볼 때 베드로가 좀 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30년 넘게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사실,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물 위로 올랐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걷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이나 상식으로 하면 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면 길이 열리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걸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유감스럽게도 그는 믿음에서 현실로 돌아옵니다. 30절 말씀을 보십시오.“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갈 때도 바람은 불고 있었고 파도는 여전했습니다. 바람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붑니다. 바람이 부는 것을 보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주위 환경의 변화를 보면 공포감을 느낍니다. 폭풍우 속에 예수님께서 계시는데 보지 못하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는 겁니다. 따라서 현실로 돌아와 물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고 물보라가 몰아쳐도 계속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폭풍우를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예수님은 참 고마운 분이십니다. 저 같으면  한참 허우적거리며 고생하도록 내버려 뒀다가 건져줬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심함으로 물에 빠진 베드로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 의심하느냐’가 아니라,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겉으로 멀쩡해도 속으로 이미 의심하고 배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에 대해 지적하신 겁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는 말씀이 갈릴리에 온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는 결코 어렵거나 힘들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음이 없을 뿐입니다. 믿음은 현재이고 은혜는 과거에 이뤄진 것입니다. 지금 믿으면 회복이 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32, 33절 말씀을 봅니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친 것입니다. 바람이 그치자 배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문제가 계속 되고 있지만 그대로 나가는 겁니다. 문제가 끝났기 때문에 나가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완성으로 가는 게 아니라 미완성인 채로 가는 겁니다. 미숙하고 실수가 있는 채로 가는 겁니다. 그러면 바람이 그치게 됩니다. ‘주님이 나의 병을 고쳐주시면 주님의 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병든 채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겁니다. 빈털터리인 채로 봉사하면 주머니가 채워집니다. 주님의 복은 그렇게 오는 것입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절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오늘 갈릴리 해변에서 주님께서 주신 메시지입니다. 저는 이스라엘로 오기 전에 로마를 들러 이틀 동안 집회하고 왔습니다. 로마를 방문하며 저는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로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형당하고 부활하신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복음을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 받아 이방인을 위해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아시아로, 유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 곳이 로마였습니다. “내가 로마를 보아야 하리라.” 그렇게 그리워하던 로마에서 결국 그는 참수를 당했습니다. 제가 사도 바울이 참수당한 현장에 가서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저는 바티칸 박물관이나 어마어마한 베드로 성당, 3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베드로 광장을 보고도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카타콤을 비롯해 로마의 수많은 기독교 흔적들에도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 밖의 협소한 곳에 사도 바울의 참수 현장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그의 목을 잘랐던 돌이 그대로 있었고, 작고 음산한 감옥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내게 외투를 가지고 오라”고 편지를 썼던 그 장소입니다. 바울을 감옥에서 이끌고 나와 참수하는데 처음에 목을 쳐도 잘리지 않자 세 번이나 쳤다는 그 현장을 보고 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와, 이게 로마구나!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있었지만, 로마에는 바울의 처형이 있었구나. 이것 때문에 전 세계에 복음의 문이 열렸구나. 내년에는 로마로 가자.’ 복음을 들고 세계로, 세계로 예루살렘에서 부흥의 불길을 받아서 청소년 2,000명, 대학·청년 2,000명, 성인 2,000명, 영어 예배자 1,000명 해서 총 7,000명을 이끌고 내년에 로마에 가려고 생각합니다. 집회를 마치고 거기서 3시간 정도면 튀니지, 그리스, 터키, 소아시아, 동유럽, 중앙아시아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회를 끝내고 바로 아웃리치를 떠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남미로 가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아프리카로, 또 러시아로 가고 해서 10년 동안 세계에 복음의 태풍이 불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이스라엘 여행이 그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우리는 복음을 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복이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지금 시간에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바람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