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성령이 임하시면’

■ ‘리더십축제’ 마무리 메시지_ 하용조 목사

 

(행 2:17~21)

 

 

구제와 나눔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시길 축원합니다.

 

‘오열’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눈물로 선포하는 하용조 목사. 모든 참석자들이 가슴을 치며 성령님이 도우심으로 ‘더 멋진 세상’을 위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나눔과 구제에헌신할 것을 결단했다.

 

오늘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무대에서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큰 감동이 되고 찔림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잘못 도왔구나.” 후회가 됩니다. 선교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사역지에서 고생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 번도 심방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건강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고쳐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선교사님들을 찾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붙잡혔는데 어디를 갑니까?

 

하나님은 저를 일본에 3년 동안 묶어 두셨습니다. 처음에는 제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인 줄 알았습니다. 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에 가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미국에 갔습니다. 거기서 심장마비를 두 번 겪어 수술을 또 했습니다. 이제 제 심장에는 스탠트가 다섯 개 박혀 있습니다. 이후 일본에 돌아왔더니 의사선생님께서 최소한 3개월 동안은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울로 오는 길도 막혔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러실까?”라고 생각해보니 저를 일본에 묶어 두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건강해져도 서울로, 미국으로 도망을 치니까 아예 일본을 떠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벌써 3년째입니다.

 

하나님은 참 집요하고 수가 많으십니다. 제가 아무리 이리 빼고 저리 빼도 일본을 위해 헌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선교사님들이 무대에서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에 이런 감동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셔서 붙잡혔는데 제가 어디를 갑니까?”

 

일본에 있는 3년 동안 배운 것이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복음과 부흥을 기다리고 있는데 목회자들이 그것을 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을 열면 부흥은 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사님들이 사역지를 떠나지 않아서 감사하고, 힘들고, 어렵고, 외롭지만 잘 견뎌줘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사십시오. 도망간들 하늘 끝으로 가겠습니까? 땅 끝으로 가겠습니까? 하나님께 붙잡힌 대로 어렵고 힘들지만 그냥 사십시오. 주님은 곧 오십니다.

 

요즘 세계는 지진, 화산폭발, 홍수 등의 재앙이 물밀듯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이나 건물, 제도는 자연 앞에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금 그런 때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을 대망해야 합니다.

 

저는 45년 전 대학에 입학하던 때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CCC라는 대학생선교회에서 수양회를 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이북에서 피난을 오면서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교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마음속에는 늘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전부인가?”라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45년 전 수양회에 가서 기적같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날 밤 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피 묻은 두 손으로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보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진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벽 6시에 산꼭대기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제 안에 임하시니까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런 영적인 경험을 한지 45년이 지났습니다. 그 후 저는 예수에 미친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전도하는 것이 내 인생의 학문이요, 직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병이라는 끈으로 묶어 놓으셨는데 제가 조금만 교만하거나  도망치려 하면 여지없이 병을 재발시키셨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45년을 살았습니다.

 

목회의 두 축, ‘말씀과 성령사역’

 

제가 신앙생활하면서 발견한 중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입니다. 저는 신앙의 기초가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선배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어린아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두 번째는 성령님입니다. 제가 성령을 체험하고 눈물 흘리며 방언을 하게 한 분은 성령님입니다. 성경공부와 전도에 집중하다 건강을 잃게 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새벽기도에 절대로 나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순진하게 믿었다가 건강 상태는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성령님을 의지하고 목회를 성령사역으로 바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전도도 중요하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성령의 힘이지 네 힘과 능력으로는 안 된다는 음성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장로님들께 “이번 안식년에 제가 들은 음성은 성령사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성령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성령사역은 성령님 중심으로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사역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결심이고 결단입니다. 온누리교회에서 처음 성령집회를 열었을 때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으면 교회입구까지 꽉 찼습니다. 목회자인 저만 모르고 있었지 이미 성도들은 성령님을 갈망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이번 집회에 사인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는데 앉은뱅이가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고, 어느 자매의 눈이 치유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온누리교회는 지금까지 성령사역을 해오고 있습니다. 말씀사역이 한 날개라면 성령사역은 또 하나의 날개입니다. 비행기가 한쪽 날개만 있으면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합니다. 두 날개가 있어야만 비상할 수 있습니다.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으로 온누리교회가 비상하자 청년들과 성도들이 마치 메뚜기 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제가 전도하고 설교를 잘해서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온누리교회를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 선교사로 나가지 못하니까 이재환 선교사님께 “당신이 선교사로 가고 저는 목회로 돕겠다”고 말씀드리고 오매불망, 죽으나 사나 선교사님들을 보내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예산이 있든 없든 선교사를 보내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게 보내지만 말고 네가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담임목사가 선교사로 가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부목사나 선교 목사가 선교를 갑니다.

 

어느 날 성도 한분이 저를 찾아와서 “안디옥 교회를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사로 갔지 부목사가 선교하러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담임목사부터 선교하러 가야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뜻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 저를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그 뜻을 모르고 제 병 낫기만을 기다렸는데 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선교사님들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까 선교사님들의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를 이어 온누리교회 총괄수석인 라준석 목사님이 캄보디아 하노이로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조정민 목사님이 아부다비, 반태효 목사님이 중국, 이재훈 목사님이 일본의 무목교회로 3개월 동안 선교를 가십니다. 온누리교회의 목회는 성령님이 하실 것입니다.

 

나눔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님

 

세 번째는 나눔입니다. 우리는 나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가슴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잘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누리교회는 선교사를 1,235명이나 보냈는데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고 병들어 있는 이 사회를 치료하는 데에는 조금 소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집회를 해보면 개인의 영적 도움을 위한 집회에는 사람이 구름떼처럼 모이는데, 나눔과 선교를 위한 집회에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습니다. 교인들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눔은 자기의 몸을 찢어 주는 것이지, 구제하거나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휴머니즘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셔야 능력을 받고 권능을 얻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아픔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자신의 눈에 타인의 아픔이 보여야 가능하지 보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의 클라이맥스 ‘나눔’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굶주린 고아들이나 병든 사람들을 먹이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복음을 전합니다.

 

배가 고프고, 병든 사람들, 부모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슬림 집안에 복음을 전하면 살해될 수도 있고, 복음을 들은 사람은 집에서 쫓겨납니다. 전도가 오히려 그 사람의 직업을 뺐거나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클라이맥스는 나눔입니다. 저는 이것을 깨닫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탈북민,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에도 굶주리고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눔이 필요한 모든 일에는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가슴은 뛰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삶과 시간을 나누어야 세상이 변합니다.

 

성령을 체험 하십시오

 

여러분, 성령님이 오셔야 내 이성, 상식, 지식이 깨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온누리교회가 CGNTV를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CGNTV가 하나님이 만나를 먹여 주셔서 일본, 중국, 미주, 남미 등에 24시간 동안 방송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곧 태국에서도 24시간 동안 CGNTV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등의 무슬림 나라에도 CGNTV를 통해 복음이 전달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경은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공동체 안에 있으면 위험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가 되었듯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절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여러 지체들이 팀을 이뤄야 가능해집니다. 내가 떠나면 계속해서 선교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공동체인 것입니다.

 

또 한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있어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무조건적인 은혜입니다.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성경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나 안한 사람이나 기도한 사람이나 안한 사람이나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님은 불같이 오십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 자기 생애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을 경험하고서는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선교사님들도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선교지에 와 있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뒤돌아보니 이렇게 큰 교회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전도 종족이나 선교지의 교회를 보면 왜 눈물이 납니까?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곳의 사람들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픕니다. 거기에 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거기까지 간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사건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성령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릅니다. 설교에 영향력과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 생각대로 설교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면 반드시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회에 모이면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아이나 어른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이나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나이든 사람은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요, 성령 공동체입니다. 성령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을 의지하지 마시고 성령님을 체험하십시오.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소리를 말해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날 무렵 저와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은 사람 몇 분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수십만 명의 고아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있었고 상하지 않은 건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조정민 목사님이 그 광경을 보고 신학을 하기로 결정 하셨습니다. 그 사건 하나가 영향을 준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제 주치의로 따라갔던 연세대학교 병원의 심장내과 의사인 안심기 박사도 그 사건을 본 이후 우즈베키스탄으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이렇게 현장을 보고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님께 인생을 맡기십시오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목회와 선교는 성령사역입니다. 성령을 빼놓고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식과 정보, 세상적인 경험으로 목회를 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뿐입니다.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길을 무조건 따라 가야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자신이 갈 길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시는 길에 그냥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계십니다. 이천년 전에 역사하신 성령님의 역사는 오늘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계십니다.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사건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성령의 바람이 불고, 성령의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성령의 터치가 일어나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은사가 나타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설계도를 하나님이 보여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도망가지 못합니다. 제게 일본을 섬기라는 비전을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섭리요,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입니까? 해답은 성령님께 있습니다. 내가 계획을 세운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방향으로 인생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밤에 결정을 하십시오.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를 축원합니다. 선교를 가든지 안가든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번 집회에서 나눔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기를 바랍니다. 구제와 나눔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일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시길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기자 one@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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