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순간까지도 사랑이었다 – 손양원 목사의 흔적 찾아 전남 여수에 가다
손양원 목사의 흔적 찾아 전남 여수에 가다
“여보시오. 나는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고난이 더욱 귀하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가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손양원 목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 일부다. 지난 11월 20일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이 개봉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한 그의 일화가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가슴 시리고 아름답다. 손양원 목사가 보여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은 모든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부끄러운 신앙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손연준에서 손양원으로
손양원 목사가 평생을 바쳐 사랑을 실천한 곳이 있다. 바로 ‘애양원’이다. 애양원은 ‘나병’으로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던 의료기관이었다. 지금은 ‘애양원 순교유적지’로 바뀌어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지가 되었다.
서울에서 차로 다섯 시간을 가면 전라남도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여수시에 도착한다. 여수에 온 것을 환영하는 표지판과 함께 여수공항이 눈앞에 나타난다. 여수공항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여수의 푸른 바다와 고즈넉한 해안도로가 나온다. 바닷가의 짠 냄새와 찬바람을 맞으며 십여 분간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율촌면 신풍리에 위치한 ‘애양원 역사박물관’이 나온다.
애양원의 역사는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포에서 사역하던 포사이트 선교사가 한센병 환자 한 명을 치료하면서부터 애양원이 시작되었다. 몇 주 후 환자는 사망했지만 선교사들의 정성어린 치료에 감동을 받은 윌슨 선교사가 작은 집을 짓고 한센병 환자 20여 명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 일이 애양원의 전신인 광주나병원 설립(1909)으로 이어졌다. 1926년 애양원은 환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더 이상 환자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여수로 이주했다. 그곳에 1939년 7월 14일 손양원 목사가 부임했다.
손양원 목사가 나병환자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26년이다. 매켄지 선교사의 주선으로 나환자 보호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다. 모두가 기피하는 중환자실도 손양원 목사는 거리낌 없이 드나들었다. 육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영혼의 치료도 병행했다. 1939년 애양원 목사로 부임한 후 그는 본래 이름인 ‘연준’을 애양원의 이름을 빌어 ‘양원’으로 바꾸었다.
두 아들 죽인 범인을 양아들 삼고
애양원 역사박물관과 가까운 거리에 성산교회, 요양원,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팔복광장, 수양관, 추모상징탑, 삼부자 묘가 있다. 애양원 역사박물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화해의 길, 용서의 길, 고난의 길을 걸으면 순교기념관에 다다를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시기의 혼란은 손양원 목사 일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손양원 목사는 1940년 겨울 광주형무소에 투옥되었다. 가족들도 ‘카미다나’라는 일본식 제단을 모시지 않아 핍박받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손양원 목사의 아들 동인과 동신은 부산 김신출 집사가 운영하는 통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두 사람 받은 월급 23원 중 20원을 생활비로 보냈다. 손 목사는 가족을 위해 힘겹게 일하고 있는 두 아들에게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고, 큰 인물이 되려면 절대로 죄를 짓지 말라고 옥중편지를 보냈다.
손양원 목사는 해방이 되어 풀려난다. 하지만 1948년 10월 일어난 ‘여순반란사건’은 손 목사에게 투옥보다 큰 고난을 감당하게 했다.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손 목사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좌익청년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부산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다 비보를 접한 손 목사는 여러 날 동안 기도에 몰두했다. 이후, 두 아들을 살해한 범인 안재선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았다.
아홉 가지 감사
순교기념관 건물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현판이 박혀있다. 손 목사가 이 땅에 남은 기독교인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다. 중앙에 솟아오른 원추형 스테인드글라스 지붕도 돋보인다.
‘11월 2일 온누리교회.’
기념관 입구에 마련된 방명록에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서빙고 온누리교회 이수공동체 성도들이 기념관에 다녀간 모양이다. 그 외에도 방명록에는 목회자에서부터 학생들까지 전국 각지에서 손양원 목사의 삶을 본받으려는 흔적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손양원 목사의 섬김을 그대로 옮겨둔 그림, 두 아들 순교 감사헌금 봉투, 일제강점기 가족의 수난을 담은 사진 등이 1~3관으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손양원 목사가 남긴 신앙 유산을 마음에 되새기게 한다.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의 사도였다. 과수원 골짜기에서 순교한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공산주의는 멀리하되 사람은 사랑하라”고 외쳤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살고, 기도로 생을 마쳤다. 손양원 목사는 경건의 사람이자 한센인의 친구, 의의 면류관을 쓴 순교자였다.
순교기념관 앞에 작은 팔복광장이 있다. 광장 한가운데 손양원 목사 비석과 12명의 순교비가 서 있다. 비석에는 그가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설파했다는 ‘아홉 가지 감사’가 쓰여 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나게 하셨으니 감사.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하였으니 감사.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중략).”
두 아들의 살해범을 용서하고, 그를 죽음에서 구해낸 것도 모자라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 자식 잃은 극심한 고통을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따라 사랑으로 승화시키며 토해냈던 그의 아홉 가지 감사는 지금까지도 기독교인들 가슴에 무겁게 남아 있다.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되고 있다.
■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 061-682-9534, 오전 9시~오후 5시30분(주일 휴관)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영화로 만나는 손양원 목사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가 영화로 탄생했다. 영화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은 손양원 목사의 평범하고도 인간적인 고뇌와 고통을 이겨낸 이면을 그린 휴먼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안경선 목사(손 목사의 양아들 안재선의 아들)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손양원 목사는 누구인가? 이렇게 묻는 나는 또 누구인가? 나에게는 왜 그런 사랑이 없는 것인가?”라고 묻고 손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나선다.
성탄절 특집으로 방영됐던 ‘손양원,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KBS 권혁만PD가 메가폰을 잡고 배우 강석우, 이광기, 최강희, 소설가 이철환 등이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애니메이션과 샌드아트 등을 영화 곳곳에 배치해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흔적들이 엿보인다. 전국 주요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다.
작성자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