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그들의 선교열정은 언제나 청춘

 

 

장로선교사들이 써 내려가는 또 하나의 선교 역사

 

온누리교회 선교 역사는 장로선교사들과 함께 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장로선교사들이 많다. 그들은 선교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믿음의 선배들이다.온누리교회 창립 초창기부터 장로선교사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농장, 교육,일대일 제자양육과 큐티, 건축과 기술,탈북자 사역 등에 헌신했다. 죽음과 질병도 그들의 선교열정을 가로막지 못했다. 온누리교회 장로선교사들의 선교열전을 기록했다.

/ 이소정 기자 s2868@onnuri.org

 

 

 

“두 번의 암투병에도 결코 선교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선교는 내 삶의 의미이자 엑기스이기 때문입니다.”이 눈물 나는 간증의 주인공은 함선호 장로다. 함 장로는 장로선교사이다. 6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두 번의 암 투병과 두 번의 소송을 당했다. 결국 선교지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는 온누리교회 1,000호 파송 선교사다.“환갑이 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그러면서 인생의 후반은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그 방법이 선교였어요.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함 장로는 동아시아B국에서 농장 비즈니스 선교를 했는데 또 한 가지 미션이 있었다. 바로 현지 선교사들을 돌보고, 위로하고, 세우는 일이었다. 그는 선교사들의 쉼터이자 생명수로 통했다.“늦은 나이에 선교를 가보니 현지 선교사들이 저보다 어리더라고요. 제가 현지 선교사들을 성심성의껏 섬기면 그분들이 큰 힘을 얻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선교사님들을 섬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선교사로 헌신한 지 2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한국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신장암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삶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더니 마음이 그렇게 평안할 수 없더라고요.”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위기가 또 찾아왔다. 신장암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또 다시 암 진단을 받았다. 이번에는 전립선암이었다.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좌절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하나님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이번에도 깨끗하게 치유해주셨다. 그런데 고난이 또 다시 그를 찾아왔다.“현지 정부로부터 비즈니스 사역이 노동법위반이라는 소송과 땅 값이 올라갈 것을 예상하고 농장을 빼앗기 위해 ‘ 토지계약무효’ 소송을 걸었더라고요. 그 나라의 법도 모르고 언어도 유창하지 않으니 정말 막막하더라고요.”하나님은 그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때마다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셨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런데 시련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선교사가 된 지 6년째 되던 해 선교지에서 추방을 당했다. 끝도 없이 위기와 시련이 이어졌지만 그는 절대로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후배 선교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지난해 장로를 은퇴하고, Acts29 비전빌리지에서 선교 훈련생을 교육하고 있다.“6년 동안 선교사로 훈련받았던 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제 평생 가장 값진 시간이었거든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김소망(가명) 장로는 한 번도 선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만큼 선교가 주는 기쁨을 맛볼수록 달콤했다. 그는 1991년 동아시아 B국으로 파송 받았다. 선교사 중에서도 선교에 푹 빠진 인물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다. ‘ 선교사 기도모임’ 과 ‘ 동아시아B국을 사랑하는 기도모임’ 이 그의 선교열정을 불태웠다.그는 2009년 다시 동아시아B국 땅을 밟았다.당시 나이 55세였다. 동아시아B국에 말씀 회복운동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큐티와 일대일제자양육을 보급했다. 그러던 중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미전도종족과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이 나라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유치원 때가 아니면 복음을 전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거든요. 산골 아이들에게 언어와 복음을 함께 가르칠 수 있는 방법도 연구했고요.”

 

외국인 선교사가 산골을 찾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오랜 연구 끝에 환경이 열악한 산골학교를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정부의 승인도 받았다. 그는 미전도종족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낮에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성탄절에 대해 설명하고, 저녁에는 주민들을 초대했어요. 그때 아이들이 성탄절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외쳤어요.주민들도 덩달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외쳤어요. 그때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었다. 그 기쁨이 김 장로가 선교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이다.

 

장로선교사들의 선교열전

 

장로선교사들은 온누리교회 창립 초창기부터 장로가 먼저 선교에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왔다. 故 조성록 장로는 온누리교회 1호 장로선교사다. 1994년 64세에 일본 선교사로 파송됐다. 쳐다보기도 싫어했던 일본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었다. 가정교회를 시작으로 야치요 온누리교회를 개척했다. 일본 온누리비전교회의 초석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혈액암 투병을 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故 박승철(박모세) 장로는 온누리교회 첫 순교자다. 1993년 동아시아B국으로 파송 받았다.학원 선교 및 제과제빵 사업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다 2000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하나님품에 안겼다. 양자처럼 기르던 탈북 어린이가위험에 처하자 피신시켜주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故 김내헌 장로는 두란노 바이블칼리지와 BEE Korea 대표를 역임할 정도로 말씀사역에 열정이 있었다. 64세에는 싱가폴로 건너가 생명의말씀교회를 온 마음으로 섬겼다.동아시아B국 농장사역에 힘쓴 장로선교사들도 있다. 김광선, 최선수, 함선호 장로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농장사역 외에도 교회 개척,탈북자사역을 섬겼다. 교육선교에도 앞장섰다.강철호 장로는 남아시아I국 대학교수, 원우현 장로는 동아시아A국 국제대학 선교미디어 부총장으로 섬기고 있고, 이병현 장로는 동아시아B국 초등학교를 섬겼다. 박석봉, 김상인 장로는 일대일 제자양육과 큐티 선교에 헌신했고, 이환진, 박일구, 정영열 장로는 건축과 기술로 선교지를 더 멋진 세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박용국 장로는 남아시아I국에서 근로자 사역을, 치과의사 박영국 장로는 동아시아B국에서 의료사역을 담당했다.

 

선교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1호 장로선교사 조성록 장로부터 지난해 4월 아프리카C국으로 파송된 정영열 장로까지 그들의 선교열정은 언제나 청춘이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