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목 목사의 신앙에세이 3
광야에서
광야, 그곳은 힘든 곳이다. 마실 물도 없고, 쉴 그늘도 없는 고통스러운 곳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도, 의지할 곳도 없는 외로운 곳이다. 걷고 또 걸어도 똑같은 풍경을 만나는 단조로운 곳이다. 누구도 오래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 곳이다. 이런 광야가 성경의 주된 배경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성경인물들은 광야에 머물렀다. 모세는 40년, 다윗은 13년, 세례 요한은 대부분의 생을 광야에서 보냈다. 예수님도 금식하며 광야에 머무셨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그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드리는 기도마다 응답을 받았다. 관계의 문이 열렸고, 평생의 동역자들을 만났다. 학업성취도 높았다. 고3 시절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즐겁고, 풍성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모든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 관계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았다. 늘 외롭고 우울했다. 나의 자아는 발로 차인 음료 캔처럼 찌그러졌다. 뜻밖에 찾아온 내 인생의 광야였다.
그 광야는 나에게 강력한 흔적을 남겼다. 내 영혼에 큰 흉터가 생긴 것 같았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그때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광야를 벗어나는데 약 10년이 걸린 것 같다. 오랜 시간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 뻑뻑하게 느껴지는 무릎처럼, 수년 동안 말을 안 하다가 입을 뗀 것처럼 회복이 더뎠다. 낯설게 느껴졌다. 한동안 내 코끝에서 광야의 냄새가 느껴질 정도였다.
지독했던 광야 시절을 보내고,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나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광야의 유익이랄까. 광야에서 마주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광야는 메이크업 클렌저 같았다. 화려한 색조화장으로 가리고 있던 나의 내면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너무 오랜 시간 가면을 쓰고 있어 나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참된 나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 발견한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발견한 나는 기대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사랑스럽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나를 아끼시는 하나님이 계셨다.
살다보면 광야의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냄새가 난다. 어떤 이들은 지금 한창 광야를 지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광야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애정을 넘어 신뢰가 간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없는 견고함이 있기 때문이다.
광야의 핵심은 홀로섬(solitude)이다. 눈물이 날만큼 가슴시린 고독함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주목하게 한다.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다윗은 광야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
많은 청년들이 시대적, 경제적, 사회적인 광야를 걷고 있다. 나는 그들이 광야에서 손쉬운 것으로 스스로를 채우지 않기를 권면한다. 술, 게임, 마약, 성적 쾌락 등으로 덮어버리지 않기를 권면한다. 하나님을 찾기를 권면한다. 그렇게 한다면 광야는 또 다른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나는 천국에 이르기까지 만날 또 다른 광야들을 기대하고 있다. 이 길 끝에서 각자의 흔적들을 나누며 담소할 날을 소망한다.
/조준목 목사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