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way’ 정탐여행
영육회(2006년 장립된 장로들의 모임) 비전트립 후기
2006년 장립된 장로들의 모임 ‘영육회’ 소속 일곱 커플이 지난 1월 29일부터 2월 2일까지 동아시아B국으로 비전트립을 다녀왔다. 동아시아 B국은 영육회 소속 장로 중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A장로의 사역지이다.
각자 사역으로 인한 분주함을 내려놓고 숨 한번 쉬자는 목소리가 있었고, 마침 A장로가 동기 장로들을 초청해서 이번 비전트립이 이뤄졌다. 주님께서 분주함 속에서 제자들과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쉼을 위해 배를 탔던 것처럼 우리 일행도 동아시아 B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동아시아 B국의 K도시에 도착했다. 제복을 입은 공안들의 모습이 이질적이었지만 사람들과 마을의 모습은 마치 20여 년 전 한국의 지방도시 같았다. K장로의 환대와 이곳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이번 비전트립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첫날은 해발 5천미터가 넘는 곳을 가야 했다. 그 높은 곳에 고성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우리는 산소캔을 사서 사용법을 배웠다. 추운 산속 날씨를 대비해서 옷과 목도리, 마스크까지 완전무장을 했다. 케이블카가 시작되는 3천 미터 지점에서조차 숨 쉬는 게 힘들었다. 경치는 아름다운 절경이었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곳이었다.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파왔다. 몸이 휘청거리고 드러눕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아 산을 내려와야만 했다. 그 순간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K장로의 수고를 알게 되었다. 두통과 구토 등의 고통을 참아가면서 고산지대 사역을 다닌다는 친구의 애환과 어려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각자 사역으로 인한 분주함을 내려놓고 숨 한번 쉬자는 목소리가 있었고, 마침 A장로가 동기 장로들을 초청해서 이번 비전트립이 이뤄졌다. 주님께서 분주함 속에서 제자들과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쉼을 위해 배를 탔던 것처럼 우리 일행도 동아시아 B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동아시아 B국의 K도시에 도착했다. 제복을 입은 공안들의 모습이 이질적이었지만 사람들과 마을의 모습은 마치 20여 년 전 한국의 지방도시 같았다. K장로의 환대와 이곳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이번 비전트립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첫날은 해발 5천미터가 넘는 곳을 가야 했다. 그 높은 곳에 고성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우리는 산소캔을 사서 사용법을 배웠다. 추운 산속 날씨를 대비해서 옷과 목도리, 마스크까지 완전무장을 했다. 케이블카가 시작되는 3천 미터 지점에서조차 숨 쉬는 게 힘들었다. 경치는 아름다운 절경이었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곳이었다.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파왔다. 몸이 휘청거리고 드러눕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아 산을 내려와야만 했다. 그 순간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K장로의 수고를 알게 되었다. 두통과 구토 등의 고통을 참아가면서 고산지대 사역을 다닌다는 친구의 애환과 어려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역과 삶 그리고 도전
K장로가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 땅에서의 사역과 삶이 큰 도전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우리와 만나기로 했던 현지인 형제를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공안들의 모임이 있어서 우리와 만날 수 없다는 형제의 소식을 들으면서 이곳이 진짜 이방(異邦)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호랑이가 건너다녔을 것 같은 가파른 협곡, 절벽과 고산에 실처럼 그어진 보기만 해도 아찔해 보이는 길들을 보면서 위대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험난한 곳을 다니면서 길을 만들고 왕래했을 인류애와 그런 인간의 노력조차 티끌처럼 만들어버리는 위대한 자연환경이 눈앞에서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낭떠러지 길을 곡예 하듯이 달려 도착한 곳은 ‘Half Way(중도, 절반)’라는 이름을 가진 산장이었다. 꼬불꼬불 산허리를 돌 때마다 나오는 Half Way 이정표를 보면서 은퇴 이후 남은 신앙여정을 함께 걸어야 할 우리들의 모습이 비쳐졌다. 이 여행이 우리 인생의 Half Way 예행연습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비전트립은 춥고 험난했다. 때로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그 경험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친구의 고단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힘들고 고된 선교여정은 하나님이 주신 Half way 비전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여행 삼아 동기 장로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체험했다. 그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또 다른 ‘Half way’ 정탐여행을 떠나고 싶다.
호랑이가 건너다녔을 것 같은 가파른 협곡, 절벽과 고산에 실처럼 그어진 보기만 해도 아찔해 보이는 길들을 보면서 위대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험난한 곳을 다니면서 길을 만들고 왕래했을 인류애와 그런 인간의 노력조차 티끌처럼 만들어버리는 위대한 자연환경이 눈앞에서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낭떠러지 길을 곡예 하듯이 달려 도착한 곳은 ‘Half Way(중도, 절반)’라는 이름을 가진 산장이었다. 꼬불꼬불 산허리를 돌 때마다 나오는 Half Way 이정표를 보면서 은퇴 이후 남은 신앙여정을 함께 걸어야 할 우리들의 모습이 비쳐졌다. 이 여행이 우리 인생의 Half Way 예행연습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비전트립은 춥고 험난했다. 때로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그 경험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친구의 고단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힘들고 고된 선교여정은 하나님이 주신 Half way 비전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여행 삼아 동기 장로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체험했다. 그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또 다른 ‘Half way’ 정탐여행을 떠나고 싶다.
/ 서성렬 장로(동작공동체)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