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진화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5
특별기고
첫 번째 남자 아담의 역사성에 대한 도전들
세상은 ‘진화’라는 용어를 ‘좋은 변화, 멋진 발전’의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또한 사람의 심리와 사회의 변화까지도 진화론으로 그럴듯하게 해석한다. 모든 긍정적인 변화 뿐 아니라 인간의 악함까지도 진화로 설명하는 진화론은 세상 과학의 기준을 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수용하는 것이 세상에서 기독교가 인정받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진화론을 수용하면 성경의 역사성을 무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창세기의 역사가 사실이 아니라면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인간은 어떻게 출현했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창조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상징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성경에 기록된 역사의 시작을 부정하는 것이며, 결국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없는 고대 기록이나 기껏해야 여러 종교서적 중 하나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진화되었는가?
유신진화론이 수용하는 진화론은 가능하지 않은 두 가지 사건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첫 번째는 생명체의 설계도가 물질의 우연한 결합으로 생길 수 있다는 믿음이다. 최근에는 자기 조립(self-assembly)에 의해 물질들이 패턴을 만드는 나노과학이 발전하면서 진화가 이러한 방식으로 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조립은 화학반응에 불과한 것이며,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명체는 단순히 물질의 조합이 아니라 그러한 물질들이 기능할 수 있도록 엄청난 정보시스템이 함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은 물질이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불가능한 일이 이뤄졌다고 믿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명체의 설계도가 돌연변이에 의해 다른 생명체의 설계도로 진화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다른 설계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진화론을 믿는 것보다 초월적인 창조에 의해 생명체들이 만들어졌다고 믿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사람의 진화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평균 키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 300년 동안 인간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평균 키가 성장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이것을 진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라는 용어를 들을 때 분별해서 들어야 한다. 단순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진화를 뜻하는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진화되었다는 주장을 들으면 진정한 의미의 진화를 주장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거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에서는 첫 번째 사람을 ‘아담’이라고 가르치는데 우리 자녀들은 학교에서 인류의 조상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배운다. 멸종한 원숭이 뼈에 불과한 화석이 인류의 조상으로 둔갑한 것은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화론만이 인류의 시작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사람이 고대 영장류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약 4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약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 약 10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약 10만 년 전),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약 4만 년 전)로 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적절한 뼈를 진화론적 상상력으로 이어 붙인 것일 뿐 실제 화석들은 그런 순서를 보여주지 않는다. 2013년 조지아 드마니시에서 발굴된 5개의 두개골은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하빌리스 등으로 함께 존재했으며, 2015년 중국에서는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가 1만4천 년 전에도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은 사람답게 살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진화론적 연대이기는 하지만 70만~100만 년 전 이미 불을 사용했고, 50만 년 전 장애아를 돌본 증거가 있으며, 8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요리 공간과 잠자는 공간을 나누어 살았다. 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조개껍질에 기하학적 무늬를 남겼으며, 30만 년 전 독일 석탄층에서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8자루의 창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13만 년 전에 이미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으로 문명을 차츰 이뤘다는 것도 진화론적 상상력이다. 성경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처음부터 농사를 지었고, 가인의 후예들은 상당한 과학기술을 발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문명은 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지역적 기술과 문명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지금도 어떤 곳은 빌딩 숲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나무를 피워 음식을 하고 있듯이 지역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문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도 미개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 초기 유럽인의 유전체 8~11%가 네안데르탈인의 DNA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현대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함께 살았던 것이다.
생명체들을 보면 원숭이면 원숭이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중간 단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당연히 그런 화석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진화론에 맞춰 성경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고장 난 시계로 시간을 알려고 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은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지게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타락한 이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놀라운 역사가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두 번째는 생명체의 설계도가 돌연변이에 의해 다른 생명체의 설계도로 진화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다른 설계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진화론을 믿는 것보다 초월적인 창조에 의해 생명체들이 만들어졌다고 믿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사람의 진화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평균 키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 300년 동안 인간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평균 키가 성장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이것을 진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라는 용어를 들을 때 분별해서 들어야 한다. 단순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진화를 뜻하는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진화되었다는 주장을 들으면 진정한 의미의 진화를 주장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거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에서는 첫 번째 사람을 ‘아담’이라고 가르치는데 우리 자녀들은 학교에서 인류의 조상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배운다. 멸종한 원숭이 뼈에 불과한 화석이 인류의 조상으로 둔갑한 것은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화론만이 인류의 시작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사람이 고대 영장류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약 4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약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 약 10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약 10만 년 전),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약 4만 년 전)로 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적절한 뼈를 진화론적 상상력으로 이어 붙인 것일 뿐 실제 화석들은 그런 순서를 보여주지 않는다. 2013년 조지아 드마니시에서 발굴된 5개의 두개골은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하빌리스 등으로 함께 존재했으며, 2015년 중국에서는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가 1만4천 년 전에도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은 사람답게 살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진화론적 연대이기는 하지만 70만~100만 년 전 이미 불을 사용했고, 50만 년 전 장애아를 돌본 증거가 있으며, 8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요리 공간과 잠자는 공간을 나누어 살았다. 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조개껍질에 기하학적 무늬를 남겼으며, 30만 년 전 독일 석탄층에서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8자루의 창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13만 년 전에 이미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으로 문명을 차츰 이뤘다는 것도 진화론적 상상력이다. 성경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처음부터 농사를 지었고, 가인의 후예들은 상당한 과학기술을 발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문명은 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지역적 기술과 문명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지금도 어떤 곳은 빌딩 숲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나무를 피워 음식을 하고 있듯이 지역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문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도 미개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 초기 유럽인의 유전체 8~11%가 네안데르탈인의 DNA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현대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함께 살았던 것이다.
생명체들을 보면 원숭이면 원숭이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중간 단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당연히 그런 화석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진화론에 맞춰 성경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고장 난 시계로 시간을 알려고 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은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지게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타락한 이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놀라운 역사가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아담은 실제 역사적 인물이었나?
성경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처음 창조한 세계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왔고, 그 첫 번째 남자와 여자는 아담과 하와라고 이름까지 언급되어 있다(창 1:26~27, 2:19, 3: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인지에 대한 질문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 단 한 명의 남자와 단 한 명의 여자만이 존재했던 세계 자체가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왔다면 형제자매 사이에 결혼이 이뤄졌다는 것인데 이를 매우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근친결혼이 아니다. 아담 가족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가족들이 없는 세상에서는 근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하나님께서 근친 간 성적 관계를 금지하신 것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이나 가나안 땅의 음란한 풍속을 따르지 말 것을 명령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이지 한 가족밖에 없던 아담 시대에 적용되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레 18:3~18).
아담은 단지 많은 사람들의 대표일 뿐 첫 번째 남자는 아니라고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때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죽이려 들 것입니다(창 4:14)”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가인이 동생을 죽였기 때문에 후에 만날 자신의 동생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가인의 살인사건 이후 아담 가족은 하나님을 떠난 가인 가족과 아담의 계보를 잇는 셋의 가족으로 나뉘게 된다. 따라서 세상은 가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로 이뤄질 것이고, 훗날 가인이 길에서 낯선 사람을 만난다면 분명 자신이 죽인 아벨 이후 태어난 셋의 후손일 것이다. 따라서 가인은 자신이 동생을 죽인 것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진 셋의 후손들을 만날 것을 두려워했을 수 있다.
아담이 첫 번째 남자인지 아니면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담이 첫 번째 남자가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은 첫 남자 아담의 초월적 창조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킬 수 있다. 아담이 당 시대 많은 남자들의 대표라면 하나님께서 다른 많은 남자들을 한꺼번에 초월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인가? 아담이 많은 남자들 중에 한 명이라면 아담의 범죄가 어떻게 전 인류의 죽음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는가? 범죄하지 않는 다른 남자들이 왜 범죄자 아담 때문에 같이 죽어야 하는가?
성경의 기록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집단으로 있었다기보다는 한 쌍의 부부로부터 시작했다고 해석해야 일관성이 있다. 첫 번째 여자의 이름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이다(창 3:20). 바울은 인류의 모든 족속이 한 혈통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행 17:26). 또한 아담의 범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1~22)”는 말씀처럼 한 사람 아담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대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왔다는 것은 성경적이면서 동시에 과학적이다. 피부색이나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의 후손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1987년 하와이대학의 칸 교수 등은 미국, 아프리카, 유럽, 중동, 아시아, 뉴기니와 호주의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의 147명 여성들의 미토콘드리아를 연구한 결과 이들이 모두 한 여성의 후손일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Nature>지에 발표하였다. 이후 아리조나대학의 햄머 교수는 남성의 Y염색체를 조사하여 모든 인류의 남성들도 한 남성의 후손일 것이라는 결과를 1995년 <Nature>지에 발표하였다.
어떤 과학적 연구결과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아담과 하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처음 창조된 한 쌍의 부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고, 과학도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모든 사람들의 부모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한 쌍의 부부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첫 번째 남자 아담의 초월적 창조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아담은 단지 많은 사람들의 대표일 뿐 첫 번째 남자는 아니라고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때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죽이려 들 것입니다(창 4:14)”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가인이 동생을 죽였기 때문에 후에 만날 자신의 동생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가인의 살인사건 이후 아담 가족은 하나님을 떠난 가인 가족과 아담의 계보를 잇는 셋의 가족으로 나뉘게 된다. 따라서 세상은 가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로 이뤄질 것이고, 훗날 가인이 길에서 낯선 사람을 만난다면 분명 자신이 죽인 아벨 이후 태어난 셋의 후손일 것이다. 따라서 가인은 자신이 동생을 죽인 것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진 셋의 후손들을 만날 것을 두려워했을 수 있다.
아담이 첫 번째 남자인지 아니면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담이 첫 번째 남자가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은 첫 남자 아담의 초월적 창조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킬 수 있다. 아담이 당 시대 많은 남자들의 대표라면 하나님께서 다른 많은 남자들을 한꺼번에 초월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인가? 아담이 많은 남자들 중에 한 명이라면 아담의 범죄가 어떻게 전 인류의 죽음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는가? 범죄하지 않는 다른 남자들이 왜 범죄자 아담 때문에 같이 죽어야 하는가?
성경의 기록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집단으로 있었다기보다는 한 쌍의 부부로부터 시작했다고 해석해야 일관성이 있다. 첫 번째 여자의 이름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이다(창 3:20). 바울은 인류의 모든 족속이 한 혈통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행 17:26). 또한 아담의 범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1~22)”는 말씀처럼 한 사람 아담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대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왔다는 것은 성경적이면서 동시에 과학적이다. 피부색이나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의 후손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1987년 하와이대학의 칸 교수 등은 미국, 아프리카, 유럽, 중동, 아시아, 뉴기니와 호주의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의 147명 여성들의 미토콘드리아를 연구한 결과 이들이 모두 한 여성의 후손일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Nature>지에 발표하였다. 이후 아리조나대학의 햄머 교수는 남성의 Y염색체를 조사하여 모든 인류의 남성들도 한 남성의 후손일 것이라는 결과를 1995년 <Nature>지에 발표하였다.
어떤 과학적 연구결과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아담과 하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처음 창조된 한 쌍의 부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고, 과학도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모든 사람들의 부모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한 쌍의 부부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첫 번째 남자 아담의 초월적 창조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어떻게 한 쌍의 부부로부터
다양한 인종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다양한 인종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첫 번째 남자 아담이 흑인이었는지, 백인이었는지, 황색인종이었는지를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아담의 키는 몇 cm일까, 아담은 음악을 좋아했을까? 미술을 좋아했을까?” 하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피부색이나 인종은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성 중에 하나일 뿐 유전적으로 구분되는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부부가 흑인과 백인 자녀들을 출생하기도 한다. 실제 영국의 한 부부는 흑인과 백인 쌍둥이를 낳기도 했다. 우리들은 피부색에 대한 선입관으로 다른 인종은 서로 매우 다른 사람처럼 느끼지만 유전적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나와 다른 한국 사람과 아프리카 사람의 유전자를 서로 비교하면 나와 다른 한국 사람보다 나와 아프리카 사람이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진화론자들은 다양한 인종(피부색)이 태양 빛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태양 빛이 강한 아프리카 지역 등지에서는 태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가 많이 만들어진 결과 흑인이 등장하였고, 이후 태양 빛이 약한 곳에서는 검은 피부가 햇빛을 차단해 비타민D 합성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다시 흰색 피부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태양 빛에 탄 피부가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주장은 정말 황당하다. 또한 검은 피부색이 태양빛을 막아 비타민D 합성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 2014년에 이미 밝혀졌다.
하나님께서 생명체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그 종류 내에서 다양해지도록 창조하신 것처럼 사람도 다양해지도록 창조하셨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의 출발점이 된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다윈이 관찰한 것은 진화가 아니라 생명체의 다양성이었다. 지금도 누가 봐도 생명체의 특성들은 종류대로 구분되어 있다. 종류에 대한 유전적 구분을 정확하게 하는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유전자 설계도의 결과인 개체들을 관찰만 해도 종류에 따른 구분과 그 종류 내에서의 다양성이 잘 관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체가 종류 내에서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일까?
종류 내에서 생명체들이 다양해질 수 있는 것과 사람이 다양해지는 것은 같은 원리이다.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 유전적 조합을 통해 다양해진다. 사람은 23쌍의 염색체를 갖고 있고, 23쌍의 염색체 중에서 23개는 아버지로부터 23개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 아버지의 23쌍의 염색체에서 23개가 선택되는 가능성은 223(=8,388,608)이고, 어머니도 동일한 경우의 수를 갖게 되므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염색체가 조합되는 모든 경우의 수는 70조3천6백8십7억이 넘는다.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23쌍의 염색체는 자체적으로 재조정(cross over)되어 유전정보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 쌍의 부모로부터 거의 무한대의 염색체 조합의 수가 나올 수 있다. 이 세상 사람이 이처럼 많은데 어떻게 한 부부로부터 모든 사람이 나올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또한 무한대에 가까운 유전자 조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특별한 계획대로 유전정보를 설계하시는데 아무문제가 없다.
둘째, 돌연변이 때문에 다양해진다. 돌연변이에 의한 변화는 유전되기 때문에 돌연변이의 영향은 자손들을 통해 계속 될 수 있다. 돌연변이로 인해 유전병이 생기기도 하지만 멜라닌 색소 감소로 인해 금발처럼 더 좋아 보이는 모습도 생길 수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 눈에 좋아 보이는 큰 키, 금발 등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빨리 결혼하고 자손을 더 많이 낳는 경향이 있어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키 큰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을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부르는데 전혀 잘못된 용어다. 왜냐하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사람이지 결코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려견들도 돌연변이 때문에 나온 것이 많다. 이러한 강아지들은 작고 예쁘기 때문에 상품 가치가 높아 많은 사람들이 구매한다. 그러나 돌연변이가 누적되기 때문에 그만큼 약하고 아픈 강아지들이 많아지고 있다.
세 번째 원리는 조금 어려운 과학 용어인데 후생유전학적 변화 때문에 다양해진다. 후생유전학적 변화라는 것은 유전자 설계도는 변화되지 않았지만 환경(먹는 것 포함)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생 닭을 가축화해서 키운 결과 색깔 등이 달라졌지만 유전자의 변화는 없었다. 또한 다윈이 관찰하였던 먹는 음식물에 따라 핀치새의 부리가 달라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후생유전학적 변화도 진화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결국 진정한 의미의 진화는 없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즉, 생명체의 다양성은 유전정보 설계도의 변화가 없는 유전적 조합 또는 후생유전학적 변화와 일부 설계도의 손상을 가져오는 돌연변이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진화로 설명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다양한 인종(피부색)이 태양 빛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태양 빛이 강한 아프리카 지역 등지에서는 태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가 많이 만들어진 결과 흑인이 등장하였고, 이후 태양 빛이 약한 곳에서는 검은 피부가 햇빛을 차단해 비타민D 합성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다시 흰색 피부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태양 빛에 탄 피부가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주장은 정말 황당하다. 또한 검은 피부색이 태양빛을 막아 비타민D 합성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 2014년에 이미 밝혀졌다.
하나님께서 생명체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그 종류 내에서 다양해지도록 창조하신 것처럼 사람도 다양해지도록 창조하셨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의 출발점이 된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다윈이 관찰한 것은 진화가 아니라 생명체의 다양성이었다. 지금도 누가 봐도 생명체의 특성들은 종류대로 구분되어 있다. 종류에 대한 유전적 구분을 정확하게 하는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유전자 설계도의 결과인 개체들을 관찰만 해도 종류에 따른 구분과 그 종류 내에서의 다양성이 잘 관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체가 종류 내에서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일까?
종류 내에서 생명체들이 다양해질 수 있는 것과 사람이 다양해지는 것은 같은 원리이다.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 유전적 조합을 통해 다양해진다. 사람은 23쌍의 염색체를 갖고 있고, 23쌍의 염색체 중에서 23개는 아버지로부터 23개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 아버지의 23쌍의 염색체에서 23개가 선택되는 가능성은 223(=8,388,608)이고, 어머니도 동일한 경우의 수를 갖게 되므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염색체가 조합되는 모든 경우의 수는 70조3천6백8십7억이 넘는다.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23쌍의 염색체는 자체적으로 재조정(cross over)되어 유전정보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 쌍의 부모로부터 거의 무한대의 염색체 조합의 수가 나올 수 있다. 이 세상 사람이 이처럼 많은데 어떻게 한 부부로부터 모든 사람이 나올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또한 무한대에 가까운 유전자 조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특별한 계획대로 유전정보를 설계하시는데 아무문제가 없다.
둘째, 돌연변이 때문에 다양해진다. 돌연변이에 의한 변화는 유전되기 때문에 돌연변이의 영향은 자손들을 통해 계속 될 수 있다. 돌연변이로 인해 유전병이 생기기도 하지만 멜라닌 색소 감소로 인해 금발처럼 더 좋아 보이는 모습도 생길 수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 눈에 좋아 보이는 큰 키, 금발 등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빨리 결혼하고 자손을 더 많이 낳는 경향이 있어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키 큰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을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부르는데 전혀 잘못된 용어다. 왜냐하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사람이지 결코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려견들도 돌연변이 때문에 나온 것이 많다. 이러한 강아지들은 작고 예쁘기 때문에 상품 가치가 높아 많은 사람들이 구매한다. 그러나 돌연변이가 누적되기 때문에 그만큼 약하고 아픈 강아지들이 많아지고 있다.
세 번째 원리는 조금 어려운 과학 용어인데 후생유전학적 변화 때문에 다양해진다. 후생유전학적 변화라는 것은 유전자 설계도는 변화되지 않았지만 환경(먹는 것 포함)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생 닭을 가축화해서 키운 결과 색깔 등이 달라졌지만 유전자의 변화는 없었다. 또한 다윈이 관찰하였던 먹는 음식물에 따라 핀치새의 부리가 달라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후생유전학적 변화도 진화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결국 진정한 의미의 진화는 없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즉, 생명체의 다양성은 유전정보 설계도의 변화가 없는 유전적 조합 또는 후생유전학적 변화와 일부 설계도의 손상을 가져오는 돌연변이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진화로 설명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만이 역사의 열쇠이다
모든 인류가 한 쌍의 부부로부터 나왔다면 어떻게 한 언어에서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다른 언어에서 존재할 수 있나? 생명과학과 성경은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언어학은 한 언어로부터 모든 언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성경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뿐이다. 생명과학 연구결과는 한 쌍의 부부를 지지하고, 언어학적으로는 한 언어로부터 다양한 언어가 나올 수 없는 과학적인 난제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초월적 역사로 통쾌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바벨탑 사건은 지역별로 피부색이 다른 것도 설명이 된다. 바벨탑 사건 이전에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을 때는 훨씬 다양한 피부색과 골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흩어진 이후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부색이 같은 사람들끼리 결혼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고, 따라서 피부색은 다수의 피부색이 더욱 우위를 점하게 되고, 지금처럼 지역마다 특정 피부색이 대다수가 된 것이다.
성경은 인류의 처음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과학적 모순을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초월적으로 창조된 아담이 타락하여 죽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실제 사건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것이 실제이기 때문에 아담의 모든 후손을 단번에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 사역이 실제가 될 수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도 미래에 일어날 실제 역사인 것이다. 오직 성경만이 진정한 인류의 시작과 끝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성경을 믿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이다.
/ 이은일 장로
바벨탑 사건은 지역별로 피부색이 다른 것도 설명이 된다. 바벨탑 사건 이전에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을 때는 훨씬 다양한 피부색과 골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흩어진 이후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부색이 같은 사람들끼리 결혼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고, 따라서 피부색은 다수의 피부색이 더욱 우위를 점하게 되고, 지금처럼 지역마다 특정 피부색이 대다수가 된 것이다.
성경은 인류의 처음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과학적 모순을 해결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초월적으로 창조된 아담이 타락하여 죽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실제 사건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것이 실제이기 때문에 아담의 모든 후손을 단번에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 사역이 실제가 될 수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도 미래에 일어날 실제 역사인 것이다. 오직 성경만이 진정한 인류의 시작과 끝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성경을 믿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이다.
/ 이은일 장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도,
미래에 일어날 실제 역사이다.
오직 성경만이 진정한 인류의
시작과 끝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