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부부싸움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어느 군부대 사단장이 부대 특강을 요청하며 들려준 이야기이다. 얼마 전 아내와 사소한 말다툼을 했는데 아내가 그러더란다.
“여기가 군대야? 내가 당신 쫄병이야? 당신이 군대에서나 사단장이지, 집에서도 사단장인줄 알아? 당신 제대한 다음에 두고 봐!”
그렇게 말하곤 방문을 꽝 닫고 나가버리더란다. 도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이 비단 자신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특강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부부의 삶에는 늘 갈등과 다툼이 있다. 부부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갈등을 억누르고 사는 부부, 갈등을 회피하며 사는 부부, 갈등을 극복하며 사는 부부이다. 결국 모든 부부에게 갈등은 있다는 의미이다. 부부는 갈등을 극복하면서 성숙해지고 행복해진다. 연애할 때는 사랑하는 감정에 푹 빠져서 단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상의 지뢰밭을 걸어가게 되어 있다. 그 지뢰밭에는 양말, 치약, 수건, 신문 등 숱한 작은 지뢰들이 깔려있다. 그 지뢰가 터지면 감정이 상하고,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하며, 불평이 나오기 시작한다. 연애할 땐 관계와 대화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던 것도 점점 수용영역이 좁아진다. 나와 다르게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이 불편해지고, 심지어는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치약 짜는 방법의 차이 때문에 부부가 많이 다투기도 했다. 끝부분부터 짜는 사람들은 중간을 푹 눌러서 짜는 배우자에게 “왜 치약을 그렇게 짜느냐?”며 힐난한다. 치약을 중간부터 눌러 짜는 사람은 “뭐가 어때서 그래?”라며 짜증을 내거나 심하게는 치약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양말 때문에 나를 힘들게 만드는 아내 앞에서 “쓸데없이 왜 이런 걸 가지고 힘들게 만들어?”하며 양말을 걷어 찬 적도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왜 나를 차는 건데?”라고 따졌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학교 선생이었던 아내가 나에게 “이렇게 해요”, “저렇게 해요”라고 하면 나는 “내가 당신 학생이야? 가서 애들이나 가르쳐”라고 쏘아붙였다. 계속되는 아내의 잔소리에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면 아내는 따라 들어와 “내 말 틀린 것 있으면 말해 봐요!”라며 나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때 나는 “당신 말 듣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라며 입을 다물었다. 하루는 아내가 “당신 엄마하고 나하고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건 질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골치 아파. 그냥 다 같이 죽고 말자”라고 했고, 그 이후 한참 동안 우리 부부 사이에는 엄동설한보다 혹독한 냉기가 돌았다. 계속되는 부부 싸움에 나는 ‘아내 잘못 만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다행히 주님을 만나고, 하용조 목사님의 권유로 가정사역을 시작하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양말을 걷어찼을 때 왜 아내가 ‘나를 차냐’고 했는지, 왜 선생님처럼 나를 가르치려고 했는지, 왜 누구 먼저 구할 거냐고 물었는지, 그냥 다 같이 죽자는 나의 말에 왜 분노하고 좌절했는지 알게 되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문제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중요하다. 부부생활의 행복은 얼마나 열렬히 사랑했는가 보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 사소한 일이거나 무거운 주제이거나 다툼의 끝에는 늘 마음이 상하기 마련이다. 마음이 상하면 마음을 닫게 되고 상한 감정들이 억압된 채 무의식으로 들어간다. 무의식으로 들어간 상한 마음들은 마치 암세포처럼 변이를 일으키기도 하고, 자라서 자아를 병들게 하고, 관계를 파괴시킨다.
부부싸움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롭게 싸워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부부 치료사인 수잔 존슨은 부부갈등에 대해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그(녀)와 친밀하고 싶은 욕구(애착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정서적으로 단절되는 것이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부부싸움을 통해 자신의 강한 욕구를 표현하고 상대방의 욕구를 알 수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부부싸움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싸우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까.
부부싸움 잘 하는 방법
첫째, 부부갈등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배우자를 잘못 만난 것이 아니다. 갈등이 왜 일어났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모를 뿐이다. 단순히 양말과 치약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질문 안에 ‘내가 소중한 사람인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애착욕구가 숨어있다. 말이 품고 있는 욕구를 잘 파악해야 한다. 질문하는 사람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욕구를 부드럽고 정중하게 전해야 한다. 그것을 ‘I Message’라고 한다. 정서적인 애착이 이루어지면 소통은 자연히 회복된다.
둘째, 싸울 때 소리를 지르거나, 언어폭력 혹은 육체적 폭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인격적 모독도 금물이다. 특히 상대방 가족, 생활습관을 들추지 않기를 바란다.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다가오면 상대방은 피하게 되어 있다. 소리 지르지 말고 부드럽게 이야기해야 한다. 한 사람이 피하면 상대방은 더 큰소리를 치고 다가오게 되어 있다. 피하지 말고 들어줘야 한다. 공감해 줘야 한다. 들어만 줘도 절반은 해결된다. 다가오는 사람을 몰두형, 피하는 사람을 회피형이라고 하는데 대체적으로 아내가 몰두형이고, 남편이 회피형인 경우가 많다.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공감이다. 마음이 상하면 관계가 깨어지고, 관계가 깨어지면 정서적 단절이 온다. 그 후유증은 오래 간다.
셋째, 옳고 그름으로 따지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하는 말은 물론 옳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도 옳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소통 방식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무엇이든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마 7:12)는 예수님의 말씀에 답이 있다. 대접받은 대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이 성경적인 관계 방식이다. 또한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접근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온유한 대답은 진노를 가라앉히지만 과격한 말은 분노를 일으킨다”(잠 15:1)고 했다. 대화에서는 내용보다 말투와 표정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비언어적인 요소가 대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다고 한다. 말투와 표정을 바꿔야 한다.
넷째, 먼저 사과하면 진다는 생각을 버리길 바란다. 부부싸움에는 한 사람만의 승자란 없다. 두 사람 다 이기던가, 두 사람 다 지는 게임이다. 성숙한 사람, 은혜를 경험한 사람 혹은 먼저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화해의 손을 내밀면 된다. 나는 아버지학교에서 남편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이 죄인이었을 때 화해의 손을 내미신 분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가정의 머리인 남편이 먼저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아내와 자녀가 회복되고, 남편은 가정의 권위 있는 제사장으로 부활할 것이다.
다섯째, 말문이 막히거나 생각이 채 정리가 되지 않았을 때 혹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고 타임아웃(Time-out)을 선언하라. 이 시간은 일종의 정회와 같은 시간으로 매우 중요하다. 부부 간에 타임아웃을 위한 신호를 정해놓는 것도 좋다. 갑자기 웃던가, 손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신호를 보내면 타임아웃의 시간을 갖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싸움을 중단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한때 감정이 상한 사람이 웃으면 일단 타임아웃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따라 웃고 싸움을 정지하는 규칙을 만들어 적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대화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 타임아웃 이후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기도한 이후 마친다.
여섯째, 분을 품어도 해를 넘기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자기 전에 부부가 꼭 손을 잡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두 사람이 기도하는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있다(마 18:18~20). 부부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은 문제해결도 중요하지만 두 사람의 상한 감정을 어루만지고 관계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화해의 지름길이며,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동기부여 또는 접촉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도 갈등은 계속 일어나고, 싸움은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정서적, 영적으로 성숙해지면서 부부가 하나 되어가는 것이다. 갈등 없는 부부가 순기능적인 부부가 아니라 갈등을 다룰 줄 아는 부부가 순기능적인 부부이다. 갈등 있는 부부가 역기능적 부부가 아니라 갈등을 다룰 줄 모르는 부부, 갈등을 숨기고 사는 부부가 역기능적인 부부이다.
부부의 사랑은 연합이다. 부부싸움의 진실은 영적인 연합, 정서적 연합, 육체적 연합을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일어나는 삶의 일부이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사랑이 훈련이듯 싸움도 훈련이 필요하다.
“집은 지혜로 지어지고 통찰력으로 튼튼해진다. 지식 때문에 방마다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들이 가득 찬다. 지혜로운 사람은 강하고 지식 있는 사람은 더 강해진다”(잠 24:3~5).
/김성묵 장로(두란노 아버지학교운동본부 이사장)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