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권사칼럼
/한현숙 권사 (이촌공동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를 떠나서는아무것도 할수 없었음이니라”(요15:5).식물을 보면 열매의 이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를 보면서하나님의 자녀임을 알 수 있을까. 과연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지되돌아봤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그런데 어려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간 기억이 없다. 내가 7살 때 살림도 거의 없이 혜화동에서 답십리로 이사를 갔다. 그때부터 나의 본격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서 친구도 없고 외로웠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 쫓아가 봤더니 교회였다.
교회바닥이 마루라 신발주머니가 필요했다. 집에 돌아와 옷감을 찾아 여러 개의 신발주머니를 만들었다. 신발주머니에 헌금동전을 한 개씩 넣어 벽에 걸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신발주머니가 여러 개였던이유는 일회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어린 아이의 서툰 바느질이었기 때문에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매듭을 제대로짓지 못해 신발을 넣을 때마다 신발주머니가 풀어졌다. 그래도 나는 교회 가는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여름성경학교 때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예배를 드렸다. 여름성경학교가 끝날 때는상장들과 푸짐한 상품을 받을 수 있어서행복했다. 그때 성경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남편을 소개시켜주었다. 남편의 가정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교회 다니는 것을 동의해주고 본인도 차츰 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남편이 변화되는 시간은 짧은 행복이면서도 긴 고난이었다.
둘째 아들이 장애가 있었다. 남편은 아들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했다. 남편 스스로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나를 이끄셨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했다. 화요성령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말씀을 주셨다. 나는 정말 힘들 때마다기도했다. 그랬더니 우리 가정에 쓰나미같았던 힘든 상황이 지나갔다. 그 시간은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아들은 잘 성장했다. 기도한 대로 당당한 사회인이 되었다. 둘째 아들의 장애가 고난인 것 같았는데 축복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부를 섬기고 있다. 사랑부 교사로 함께섬기던 자매가 큰며느리가 되었다. 우리가정은 사랑부에 속한 아름다운 가족이다. 내게 사랑부는 섬긴다기보다 은혜 받는 공동체다. 각 사람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모종일 때 나의 이름을 불러주신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맺고 매일 기적같은 삶으로 행복과 기쁨을 나누기를 소망한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