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유신진화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3

<특별기고>
 
유신진화론의 교묘한 말과 철학은 모두 헛된 속임수
  
진화론이 하나님의 창조를 대신할 수 없다고 믿는 기독교 진영이 과학 분야에서 진화론에 대응하는 주된 방법은 창조과학이었다. 창조과학은 진화론의 거짓된 증거들을 밝히고,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지층과 화석이 도리어 전 지구적인 대홍수 심판의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진화론에 대응하는 효과적이고, 유용한 방법이라고 인정받았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진화론에 과학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창조과학만은 아니며, 도리어 진화론을 거부하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거부하는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 취급을 하고, 진정한 과학인 진화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성경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오류를 범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닌데 성경에 기록된 창조사건과 대홍수 심판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성경과 과학을 분리시키고, 성경과 과학을 연계한 창조과학을 비판하며,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맞으므로 성경 해석을 바꿔야 한다는 단계별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 창조과학은 성경과 과학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창조와 대홍수 심판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진화론에 대응하고 있다.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유신진화론도 사실 과학과 성경을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자신들은 진화론 과학을 우선으로 하고, 그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성경과 과학을 분리시킴으로써 성경에 기록된 창조가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슬쩍 부정하고 있다.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가 진정한 시작인지 진화가 진정한 시작인지는 아무도 완전하게 알 수 없다. 모든 물질세계를 시작하게 한 창조도 진화도 실험할 수도 관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관찰되는 물질세계가 창조되었는지 진화되었는지 분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놀라운 질서를 가진 우주 만물이 결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될 수 없다는 것은 과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질서가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설계되어진 것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훨씬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창조과학과 유신진화론은 모두 성경과 과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창조과학은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믿으면서 과학적 증거를 통해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고, 유신진화론은 진화론 과학이 사실이라는 믿음으로 초월적 창조에 대한 성경 기록을 거부하는 것이다.
 
반쪽 사실로 전체를 감추는 교묘한 주장
 
성경기록에 연관된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과학 지식을 통해 성경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와 문화의 이해 없이도 성경말씀에 대한 믿음이 충분히 가능한 것처럼 과학적 해석이 없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와 대홍수 심판 사건을 성경 기록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창조과학적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기록에 과학적인 해석을 붙이는 창조과학에 대한 유신진화론자들의 비판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의 이러한 주장은 반쪽 사실만을 드러내 교묘하게 상황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자녀에게 ‘거짓 유전자 검사결과’가 편지로 왔다고 가정하자. 이 편지에는 당신의 부모와 당신은 유전적으로 부모자녀관계가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편지를 받은 자녀가 자신을 키워준 부모가 친부모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가짜 편지를 보낸 악한 사람이 ‘이 자녀는 자신의 부모를 의심해서 유전자 검사를 한 불효자녀’라고 공격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까? 거짓 유전자 검사결과가 편지로 전달되었다는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 단지 자녀가 자신의 부모를 의심해서 유전자 검사를 하였다고만 이야기 한다면 그 자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창조과학도 이와 유사하다. 성경말씀을 믿는데 창조과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창조는 거짓이고,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을 교육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시대 진화론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을 배제하고 성경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종교는 종교이고, 과학은 과학이니까 진화론에 대하여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 될까? 아니면 그냥 말씀대로 믿으라고 하면 될까? 진화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잘 알지 못해도 믿음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마치 거짓 유전자 검사결과를 받아도 그 결과를 믿지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진화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창조과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짓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전자 검사를 다시 하는 자녀를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을 과학적으로 접근한다고 창조과학을 비난하는 것은 반쪽 사실로 전체 상황을 호도하는 교묘한 전략이다.
진화론이 성경말씀의 진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받아들이자고 하는 것은 가짜 유전자 검사결과를 믿고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과 같다. 교회를 떠난 무신론자들을 가짜 유전가 검사결과를 믿고 분노하여 부모를 떠난 사람들로 비유한다면, 유신진화론자들은 가짜 유전자 검사결과를 믿으면서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사람들과 같다.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인데 친부모인 것은 거부하고, 양부모로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뭐라고 이야기할까? “제발 가짜 검사결과에 속지 말고, 부모의 말을 믿어라. 아니면 다시 유전자 검사 결과를 해서라도 친부모인지를 확인하라”고 말하지 않을까?
창조과학은 믿을 수 있는 유전자 검사 결과처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친부모라는 것이 유전자 검사 결과에 의존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창조과학은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 진리 자체는 아니다. 그렇지만 진화론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아직까지 필요한 도구이며, 어떤 과학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더 좋은 도구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창조과학이라는 도구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적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성이 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전투를 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유신진화론의 철학과 속임수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진화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유신진화론적 성경해석이 정통적인 성경해석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표현을 직설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논리의 허술함을 감추기 위해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한다. ‘간격의 하나님’, ‘자연주의 철학과 자연주의 방법론’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이 논리적이고 지성적인처럼 꾸미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초월적인 것이며,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 유신진화론이나 무신론 진영에서는 이러한 주장은 ‘간격의 하나님’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간격의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하나님으로 채워버리는 것이다. 과학지식의 간격을 열심히 과학지식으로 채우려고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대체하는 잘못된 과학적 태도이다. 따라서 우주와 만물을 하나님이 초월적으로 창조했다는 주장은 과학적 연구 없이 기원을 설명하려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월적 창조보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창조를 설명하려고 하는 유신진화론(진화창조론)이 훨씬 지성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은 물질세계 안에서 이뤄지는 질서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을 뿐, 물질세계 자체를 창조한 초월적 과정을 연구할 수는 없다. 그럴 능력도 도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격의 하나님’이라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 자체가 거론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버리는 것이다. 즉, 하나님 없이 기원을 설명해야 과학이며, 하나님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이 있는가?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이건 우연한 빅뱅에 의한 시작이건 그 시작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나?
유신진화론자들은 빅뱅이론이 현재의 우주 확장을 잘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이론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대신할 수 있는 과학이론으로 믿는다. 그러나 우주의 확장이 빅뱅이론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빅뱅이론 외에도 다양한 이론이 있으며, 초월적 창조의 결과에 의해서도 우주는 확장될 수 있다. 빅뱅이론이 우주 확장을 잘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처음 시작을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은 아니다. 빅뱅이론 자체가 새로운 발견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있다. 초기 빅뱅이론이 인플레이션 빅뱅이론으로 바뀌었고, 인플레이션 빅뱅이론도 근본적인 시작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빅뱅이론은 우주의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초기 물질이 빅뱅 이전에 존재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초기 물질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단지 그런 초기 물질이 있어야만 빅뱅이론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또한 그 초기 물질이 무슨 힘으로 폭발할 수 있었는지, 순간적으로 매우 높은 온도에 도달하게 한 에너지는 어디서 왔는지, 광속의 몇 천배 이상으로 공간이 어떻게 팽창할 수 있는지, 무엇보다 우연한 빅뱅으로 어떻게 이런 질서정연한 우주와 거대 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 빅뱅이론이 맞는다면 물질과 ‘물질을 없애는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존재해야 하는데, 우주에 반물질이 있다는 증거도 찾을 수 없다. 빅뱅이론도 초월적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시작은 믿음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간격의 하나님’이라고 비웃는 것은 과학 자체를 들여다봐도 얼마나 오만한 주장인지 잘 알 수 있다. 물질세계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오직 빅뱅이론 하나에 매달리고 있을 뿐이며, 물질세계 자체의 질서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른 것의 간격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과학의 발전으로 빅뱅이론과 맞지 않는 현상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면서 우주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미천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생명과학도 발전할수록 DNA 조절기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과학의 현실인 것이다.
한때 빅뱅이론을 주장하던 많은 과학자들이 빅뱅이론을 떠나 ‘다중우주이론’으로 가고 있다. 빅뱅이론 자체의 한계도 있지만, 한 번의 빅뱅으로 우연히 이런 질서정연한 우주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의 확장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게 된다는 ‘가속팽창이론’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우주에 대해 모르고 있는지를 더 알 수 있다. 가속팽창이론은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지만 수상 이유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상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해주었기 때문에 상을 준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 의하면 관찰할 수 있는 별, 블랙홀 등 모든 것들을 합쳐도 우주를 확장할 수 있는 힘은 5%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머지 95%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암흑물질(dark matter)과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암흑에너지(dark energy)로 설명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확장되니까 모르는 것이 95% 생긴 것이다. 물론 가속팽창이론도 이론 중에 하나일 뿐이며 거대한 우주는 놀라운 신비를 품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 과학적인 방법으로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고, 간격의 하나님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실제와는 거리가 먼 주장에 불과하다. 우주과학 뿐 아니라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과학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 2001년 인간 유전자 전체를 해독했다는 게놈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했을 때 과학자들은 인간 유전자에 대하여 다 알게 된 것처럼 자신만만하였다. 연구 결과 인간의 유전자는 3만개 정도이며, 3%정도만 유전자 기능을 하고 있고, 나머지 50% 이상(95% 정도)이 쓰레기 DNA라고 발표하였다. 과학자들은 진화과정 가운데 기능이 사라진 유전자들이 쌓여서 쓰레기 DNA가 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인간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계속 발전하면서 쓰레기 DNA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기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또한 유전정보를 조절하는 질서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여 DNA 일부가 아닌 DNA 전체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쓰레기 DNA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유전정보 조절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됐다. 2013년 필립 볼(Phillip Ball) 박사는 ‘DNA: 모르는 것에 대한 축제(Celebrate Unknowns)’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DNA를 통한 유전정보 조절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이런 놀라운 질서는 진화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기술하였다.         
  
자연주의 철학 뺀 진화론의 허구
 
유신진화론자들이 잘 사용하는 어려운 용어 중에 하나가 ‘자연주의 철학’, ‘자연주의 방법론’ 등이다. 자연주의 방법론이란 물질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의미하고, 자연주의 철학이란 물질세계가 전부이고 하나님은 없다는 무신론 철학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자연주의 방법론은 ‘일반적인 과학적 방법론’으로, 자연주의 철학은 ‘무신론 철학’으로 바꿔서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다음 유신진화론자들이 주장을 살펴보자.
“기독교인들이 과학인 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은 지적 자살이다. 과학은 자연주의 방법론(과학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주의 방법론(과학방법론)을 사용하는 진화론은 과학이고 초월적 창조론은 자연주의 방법론(과학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다. 따라서 과학이 아닌 초월적 창조론을 창조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지성적인 것이다.”
쉽게 말해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초월적 창조를 주장하는 것은 비지성적인 것이다”라는 의미다. 문장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으로 규명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과학 전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논리의 비약이다. 초월적 창조를 믿는 것이야말로 성경과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관찰한 논리적인 결과인데 이것을 비지성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거짓이다.
또한 유신진화론자들은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의 자연주의적 방법론은 수용하되, 자연주의적 철학은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유신진화론은 진화론 전체를 수용하지만 진화론이 주장하는 무신론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론 자체가 모든 것이 하나님 없이 물질로부터 왔다는 자연주의 철학(무신론 철학)에 기반을 둔 것인데,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은 받아들이지만 무신론 철학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진화론 앞에 하나님만 갖다 놓으면 진화론과 창조주 하나님이 조화될 수 있는가? 성경말씀 어디서 그런 근거를 찾을 수 있나?
또한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 과학이기 때문에 수용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진화론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도 찾을 수 없고, 과학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유신진화론을 그리스도인들이 수용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유신진화론이 초월적 창조론을 공격하는 논리나,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논리들은 모두 반쪽 사실이거나,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교묘한 거짓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진리는 성경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에 분명히 알려져 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빅뱅이론이나 진화론보다 초월적 창조론이 훨씬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결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생명체의 유전정보 설계도를 쓰레기 DNA가 가득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질서 있게 창조하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진화론자들이나 유신진화론자들은 초월적 창조를 ‘간격의 하나님’이라고 비웃고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갖는 것이 과학을 하는 근본적인 태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이은일 장로
 

“진화론자들이나 유신진화론자들은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갖는 것이
과학을 하는 근본적인 태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