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칼럼-죽으면 죽으리라!(김명종 장로)
장로칼럼
죽으면 죽으리라!
나는 경상북도 경주의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경주시내 법화종단인 포교당 불교학생회에 등록해서 매주 주일마다 스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배웠다. 수요일 저녁에도 불교의 교리를 배웠다. 내가 다니던 포교당은 아내의 아버지가 주지스님으로 계신 곳이었다. 내 아내는 스님의 딸이었고 절에서 생활했다. 어머니께서는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 놓으시고 공들여 빌곤 했다. 경주를 떠나 대구에서 생활하게 되면서부터 불교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경상북도 도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35세 이전에 승진해서 시장이나 군수로 발령받는 것이 나의 일한 꿈이었다. 그런데 승진 때마다 발령을 받지 못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공무원 교육원에서 행정학 교수로 발령받아 교육생들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공직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 나에게 결코 유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우상의 소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공직에서 조기퇴직하게 하셨다.
서울 용산 미8군 수송부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우리 가정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창세기 말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친척 본토 아버지 집을 떠나 네가 내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하신 말씀이 우리 가정의 말씀이 되었다.
불교에서는 평안과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참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비로소 참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가정은 지금 미얀마에 선교가 있는 큰딸의 인도로 구원을 받게 됐다. 어느 주일 아침 큰딸이 서빙고 온누리교회를 가자고 했다. 그날 우리 가족 모두 서빙고 온누리교회 2부 예배를 드렸다. 찬양대가 찬양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나님께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빛 한줄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성령의 은혜였다. 요한일서 5장 말씀처럼 빛이신 예수님이 나를 모든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후 나는 주말에는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말씀훈련을 3년 동안 열심히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나에게 거룩한 갈증을 허락하셨다. 영혼구원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서 내게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다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행 20:24).
하나님은 나에게 소명을 주셨다. 하나님은 주 예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부족하고 미약한 나를 69세에 부르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이기에 강하고 담대하게 순종의 길로 나아간다. 나는 4월 1일 미얀마 따웅지 지역 일만사역자로 파송된다. 따웅지는 인구 10만 명이 살고 있는 미얀마 제2의 도시이다. 4개의 대학에서 4,000명의 학생들이 복음의 불모지인 이곳을 품고 기도하고 있다. 이곳은 불교의 초강성 지역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기숙학교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양육 받은 현지인들을 리더로 세우면서 복음 전하는데 힘쓸 것이다. 지금은 물질이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확신한다. 69세란 나이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붙잡고 나아간다. 할렐루야!
/ 김명종 장로(서빙고공동체)
나는 경상북도 도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35세 이전에 승진해서 시장이나 군수로 발령받는 것이 나의 일한 꿈이었다. 그런데 승진 때마다 발령을 받지 못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공무원 교육원에서 행정학 교수로 발령받아 교육생들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공직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 나에게 결코 유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우상의 소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공직에서 조기퇴직하게 하셨다.
서울 용산 미8군 수송부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우리 가정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창세기 말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친척 본토 아버지 집을 떠나 네가 내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하신 말씀이 우리 가정의 말씀이 되었다.
불교에서는 평안과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참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비로소 참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가정은 지금 미얀마에 선교가 있는 큰딸의 인도로 구원을 받게 됐다. 어느 주일 아침 큰딸이 서빙고 온누리교회를 가자고 했다. 그날 우리 가족 모두 서빙고 온누리교회 2부 예배를 드렸다. 찬양대가 찬양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나님께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빛 한줄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성령의 은혜였다. 요한일서 5장 말씀처럼 빛이신 예수님이 나를 모든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후 나는 주말에는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말씀훈련을 3년 동안 열심히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나에게 거룩한 갈증을 허락하셨다. 영혼구원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서 내게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다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행 20:24).
하나님은 나에게 소명을 주셨다. 하나님은 주 예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부족하고 미약한 나를 69세에 부르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이기에 강하고 담대하게 순종의 길로 나아간다. 나는 4월 1일 미얀마 따웅지 지역 일만사역자로 파송된다. 따웅지는 인구 10만 명이 살고 있는 미얀마 제2의 도시이다. 4개의 대학에서 4,000명의 학생들이 복음의 불모지인 이곳을 품고 기도하고 있다. 이곳은 불교의 초강성 지역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기숙학교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양육 받은 현지인들을 리더로 세우면서 복음 전하는데 힘쓸 것이다. 지금은 물질이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확신한다. 69세란 나이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붙잡고 나아간다. 할렐루야!
/ 김명종 장로(서빙고공동체)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