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독일 통일에서 배우는 교회의 역할(베르너크레첼 목사)
독일 통일에서 배우는 교회의 역할
그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독일이 통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된 이후 통일을 공식적으로 축하하기 위한 날짜가 결정되었다. 1990년 10월 3일 브란덴부르크 문과의회 건물을 배경으로 베를린의 중심에서 열린 축하의식에는 동독과 서독의 정치가들이 함께 단상위에 올랐다. 28년 동안 감옥 같은 생활을 했던 동독 사람들에게 환희가 가득했다. 베를린의 많은 교회에서도 감사예배를 드렸다. 서독 수상 콜과 동독의 수상 마지에르는 모두 기독교 신자였다.
통일 이후 독일 교회의 역할은 분명했다. 독일 교회는 쓸쓸한 동독 사람들의 정신적, 예술적, 영적 삶을 돌보는데 필요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를 위한 장소는 그리스도인의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와 교류가 없는 가정에서도 존재했다. 당시 목사관은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했고, 그곳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안겔라 메르켈처럼 잠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교회는 늘 약자들과 함께했다. 동독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명예직을 수여하거나 영적 공급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도록 도왔다. 독일의 모든 교회들은 나눔의 미덕을 강조하며 통일 전에도 그랬듯이 동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서독의 부를 나눠주는 삶을 실천하도록 독려했다.
교회의 또 다른 임무는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보존하고, 자연보호를 위해 사람들이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독일 교회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교회의 모든 분야에서 난민들을 위한 수많은 지원프로그램과 환영문화를 만들었다. 난민들의 정착과 교육, 주거 환경, 일자리, 언어교육, 심리상담 등을 통해 그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도전은 지금도 독일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형성된 서독과 동독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 원인은 동독과 서독의 교회에도 불균형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교회의 설득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서독 사람들은 동독 사람들이 공산주의 아래에서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압제적인 상황에서 동독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는지, 신앙의 열매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가 서독의 교회에도 유익할 수 있었다. 많은 서독 사람들이 통일 전과 후에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된 독일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물어보지 않았다. 많은 영역에서 서독의 표준과 규칙을 동독에게 전달했을 뿐이었다.
내가 한국 교회에게 요구하는 것은 약한 자가 더 많은 말을 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3월부터 한국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가 베를린 화해의 채플에서 열린다. 나는 이 기도회가 서울과 베를린 사이에 형성된 좋은 유대감이라고 생각한다.
/ 베르너 크레첼 목사
통일 이후 독일 교회의 역할은 분명했다. 독일 교회는 쓸쓸한 동독 사람들의 정신적, 예술적, 영적 삶을 돌보는데 필요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를 위한 장소는 그리스도인의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와 교류가 없는 가정에서도 존재했다. 당시 목사관은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했고, 그곳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안겔라 메르켈처럼 잠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교회는 늘 약자들과 함께했다. 동독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명예직을 수여하거나 영적 공급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도록 도왔다. 독일의 모든 교회들은 나눔의 미덕을 강조하며 통일 전에도 그랬듯이 동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서독의 부를 나눠주는 삶을 실천하도록 독려했다.
교회의 또 다른 임무는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보존하고, 자연보호를 위해 사람들이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독일 교회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교회의 모든 분야에서 난민들을 위한 수많은 지원프로그램과 환영문화를 만들었다. 난민들의 정착과 교육, 주거 환경, 일자리, 언어교육, 심리상담 등을 통해 그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도전은 지금도 독일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형성된 서독과 동독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 원인은 동독과 서독의 교회에도 불균형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교회의 설득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서독 사람들은 동독 사람들이 공산주의 아래에서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압제적인 상황에서 동독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는지, 신앙의 열매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가 서독의 교회에도 유익할 수 있었다. 많은 서독 사람들이 통일 전과 후에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된 독일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물어보지 않았다. 많은 영역에서 서독의 표준과 규칙을 동독에게 전달했을 뿐이었다.
내가 한국 교회에게 요구하는 것은 약한 자가 더 많은 말을 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3월부터 한국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가 베를린 화해의 채플에서 열린다. 나는 이 기도회가 서울과 베를린 사이에 형성된 좋은 유대감이라고 생각한다.
/ 베르너 크레첼 목사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