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곽상학 목사의 말과 말씀 6-조카에게 없는 로또

곽상학 목사의 말과 말씀 6
조카에게 없는 로또
 
중국의 황제(皇帝)는 폐하(陛下)로 불리었다. 암살위험과 황실의 위엄 때문에 높이 쌓아 올려 만든 웅장한 대궐의 섬돌(陛: 섬돌 폐) 아래에 황제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은 전하(殿下)이다. 그 역시 경복궁 근정전 전각(殿閣) 아래에서나 간신히 우러러 볼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당시 대통령은 누각(樓閣)에서 여흥을 자주 즐겼는지 각하(閣下)라는 호칭을 선호했다. 장군(將軍) 아래 있는 졸병들은 대장의 깃발(麾: 깃발 휘)이 꽂혀 있는 본영 안에서 충성을 다해야하기에 장군의 휘하(麾下)에 있어야 하고, 자녀는 부모의 무릎(膝: 무릎 슬) 아래에서 생명이 시작되었고 부모의 슬하(膝下)에서 사랑으로 양육되었다. 그래서 무엇(누군가)의 아래에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율곡집(栗谷集)에는 벗 우계 성혼에게 쓴 편지글도 있다. “호원족하(浩原足下), 전 일에 보내준 글을 받았는데…” 호원이란 율곡의 절친했던 벗 우계 성혼의 자(字)이다. 자는 상대방을 호칭하는 또 다른 이름인데 율곡은 우계를 호원이라 부르고 우계는 율곡을 숙헌(叔獻)이라 불렀다. 족하(足下)는 동년배 사이에서 상대편을 높여 부를 때 이름 뒤에 붙이는 존칭어다.
중국 춘추시대 진문공(晉文公)이 간신에 휘둘리자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면산(緜山)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나중에 진문공이 그를 산에서 나오게 하려고 불을 질렀는데 버드나무를 끌어안고 타죽은 개자추를 발견한다. “슬프다. 족하야(悲乎足下).” 그 버드나무로 나막신을 만들어 신고 탄식한 진문공은 개자추가 생각날 때마다 나막신을 굽어보며 자신의 인물됨이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부끄러워했다고 전해지는데 후에 이 ‘족하(足下)’란 말이 경칭(敬稱)으로 쓰이다가 오늘날에는 형제자매의 자녀를 일컫는 ‘조카’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동년배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품위 있는 말로 자녀나 다름없는 가까운 혈육의 존칭(尊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이 단어의 의미가 ‘발아래’ 라는 뜻이니 서로 얼마나 가까운 사이겠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자녀나 진배없는 조카가 한 명 있었다. 형님 하란(Haran)이 남기고 간 외동아들 롯(Lot)이다. 롯은 삼촌인 아브람(Abram), 할아버지 데라(Terah)와 함께 가나안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행을 떠났다. 
 혹시 성경에 로또(lotto) 복권이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창세기 12장 4절을 발음 되는대로 크게 읽어보자.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났습니다. 롯도[로또] 아브람과 함께 갔습니다.” 과연 아브람과 함께 간 이 조카가 로또 복권이었을까?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ans)에서부터 삼촌과 함께 가나안 이주에 성공한 롯은 나중에 가축이 너무 많아져서 삼촌과 함께 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말 로또인생인 듯 보였다. 롯은 삼촌과 헤어져 초장이 넉넉하고 비옥한 사해 연안 도시 소돔 근처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곧 그돌라오멜 연합군과 사해 연맹국들 사이에 발생한 전쟁 와중에 포로가 되었고, 삼촌 아브람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롯의 인생 하이라이트는 타락할 대로 타락한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에서였다. 그 도시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유황불 심판 속에서 믿음이 없고 우유부단한 아내를 잃고 극적으로 구원받는 등 롯은 희비(喜悲)의 쌍곡선을 그리는 롤러코스터 인생이었다. 롯의 생애는 한마디로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선택의 결과가 무엇이고, 죄악 된 세상이 한 개인과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영적인 반면교사(反面敎師)였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기쁨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정확한 거울이며, 신기루(蜃氣樓)같은 로또 행복을 좇으며 사는 인생의 최후가 비탄(悲嘆)임을 미리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다. 조카 롯은 아브람에게 더 이상 로또가 아니었다. 75세에 부름 받은 아브람은 사실 99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수태고지에 비웃음으로 일관한 아브라함은 이삭을 품에 안은 100세가 되서야 하나님을 향해 진정한 믿음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이삭은 ‘웃음’이라는 뜻) 이삭은 99세까지 아브람(Abram, 높은 아버지)으로 살던 인생을 아브라함(Abraham, 열국의 아비)이라는 인생으로 시작케 한 믿음의 분기점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조카가 족하(足下)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십분 동의할 것이다. 조카 롯을 통해 아브라함은 누군가의 ‘발아래(足下)’에 납작 엎드릴 때 진짜 인생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알았다. ‘인생 한 방’이니, ‘대박 인생’이니 하는 허탄한 로또신화에 뜻을 두지 않고 전능하신 분의 ‘발아래(足下)’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의 인생뿐이랴. 모든 만물은 마땅히 그 발아래에 엎드려야 한다. 그 분은 우리의 머리가 되시니 우리의 입술엔 어찌 자족(自足)하는 감사가 넘치지 않을 수 있으랴. 
/ 곽상학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