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세잔의 차
세 잔의 차
모텐슨이라는 사람은 글자를 모르는 산골 아이들에게 글을 알려주는 일을 했다. 눈먼 장님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일이었다. 그는 학교를 짓는 일을 했다. 이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세 잔의 차>이다. 이 책 내용 중에 학교를 짓는 과정에서 장벽을 만난 모텐슨이 마을 추장에게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이 우리와 처음으로 차 한 잔을 함께 마시면 이방인이고, 차 두 잔을 함께 마시면 친구가 되고, 차 세 잔을 함께 마시면 가족이 되지.”
모텐슨이 혼자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것보다 그 일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였다. 모텐슨은 그 이야기를 듣고 눈을 떴다. 그 이후 산골 마을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해 줄 학교 짓기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세 잔의 차를 통한 아름다운 동역이 일어난 것이다.
나에게도 세 잔의 차와 같은 현장이 있다. 서울역 동자동 쪽방촌이다. 쪽방촌은 작은 방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는 의미인데, 주거 형태가 마을의 이름으로 붙여졌다. 이 마을에는 1,200세대가 모여 산다. 나는 매주 그곳에 가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분들에게 이방인이고, 낯선 손님일 뿐이다. 내가 무엇인가 궁금해서 그분들께 물어보면, “어디서 온 분인데, 그런 걸 물어보시냐?”고 핀잔을 준다. 핀잔을 들으면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힘든 인생을 살아온 분들에게 내가 더 힘든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주 전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한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이런 날도 오시냐?”고 물으셨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가 행복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만났을 때 나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거라며 포장된 비누를 주셨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은 전보다 친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그분과 차 한 잔을 마셨다.
지난주에는 기타를 치면서 쪽방촌 주민들에게 찬양을 불러줬다.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좀 와 보세요.”
나를 부르는 남자에게 기타를 들고 갔다. 남자에게 가까이 갔더니 진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대낮부터 술을 마신 것이다. 이 동네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남자는 나를 옆에 앉히더니 신청곡이 있다고 했다. 신청곡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갈보리 산 위에’를 부를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자리에서 기타를 치면서 그 노래를 불러줬다. 그분이 노래를 다 듣더니 신청곡이 하나가 더 있다고 했다. 그분은 ‘어서 돌아오오’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찬양을 어떻게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을 계기로 그분의 인생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뉴욕의 유명 음식점 쉐프였는데 큰 고난을 당하면서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찬양은 자신이 기도원에 갔을 때 하염없이 울면서 부르고 또 불렀던 찬양이라고 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고난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고난은 꺾는 것이다. 마음을 꺾고, 의지를 꺾고, 그래서 삶을 꺾는 것이 고난이다.”
그 분은 계속 나와 이야기하고자 했다. 내가 시간이 돼서 가야 된다고 해도 계속 내 손을 붙들고 이 이야기만 듣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그 분과 차 한 잔을 마셨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와 차 한 잔 마셔보는 것이 어떨까.
/ 한화수 목사(동작공동체)
“당신이 우리와 처음으로 차 한 잔을 함께 마시면 이방인이고, 차 두 잔을 함께 마시면 친구가 되고, 차 세 잔을 함께 마시면 가족이 되지.”
모텐슨이 혼자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것보다 그 일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였다. 모텐슨은 그 이야기를 듣고 눈을 떴다. 그 이후 산골 마을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해 줄 학교 짓기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세 잔의 차를 통한 아름다운 동역이 일어난 것이다.
나에게도 세 잔의 차와 같은 현장이 있다. 서울역 동자동 쪽방촌이다. 쪽방촌은 작은 방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는 의미인데, 주거 형태가 마을의 이름으로 붙여졌다. 이 마을에는 1,200세대가 모여 산다. 나는 매주 그곳에 가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분들에게 이방인이고, 낯선 손님일 뿐이다. 내가 무엇인가 궁금해서 그분들께 물어보면, “어디서 온 분인데, 그런 걸 물어보시냐?”고 핀잔을 준다. 핀잔을 들으면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힘든 인생을 살아온 분들에게 내가 더 힘든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주 전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한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이런 날도 오시냐?”고 물으셨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가 행복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만났을 때 나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거라며 포장된 비누를 주셨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은 전보다 친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그분과 차 한 잔을 마셨다.
지난주에는 기타를 치면서 쪽방촌 주민들에게 찬양을 불러줬다.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좀 와 보세요.”
나를 부르는 남자에게 기타를 들고 갔다. 남자에게 가까이 갔더니 진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대낮부터 술을 마신 것이다. 이 동네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남자는 나를 옆에 앉히더니 신청곡이 있다고 했다. 신청곡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갈보리 산 위에’를 부를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자리에서 기타를 치면서 그 노래를 불러줬다. 그분이 노래를 다 듣더니 신청곡이 하나가 더 있다고 했다. 그분은 ‘어서 돌아오오’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찬양을 어떻게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을 계기로 그분의 인생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뉴욕의 유명 음식점 쉐프였는데 큰 고난을 당하면서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찬양은 자신이 기도원에 갔을 때 하염없이 울면서 부르고 또 불렀던 찬양이라고 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고난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고난은 꺾는 것이다. 마음을 꺾고, 의지를 꺾고, 그래서 삶을 꺾는 것이 고난이다.”
그 분은 계속 나와 이야기하고자 했다. 내가 시간이 돼서 가야 된다고 해도 계속 내 손을 붙들고 이 이야기만 듣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그 분과 차 한 잔을 마셨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와 차 한 잔 마셔보는 것이 어떨까.
/ 한화수 목사(동작공동체)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