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전문가 기고_성경과 법 

승소(勝訴)하든 패소(敗訴)하든 결국 하나님의 몫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신 1:17).  
한 의뢰인이 있었다. 남편이 남겨둔 건물 두 채가 있었는데 상속등기를 하지 않은 채 10년이 흘렀다.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자녀들에게 연락했다. 단독 상속등기 처리를 하려고 하니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보내라고 하였고, 자식들이 보내온 서류로 어머니 본인 단독 상속등기를 마쳤다. 그로부터 얼마 후 큰딸이 어머니를 경찰에 고소했다. 어머니가 자식들과 공평하게 상속등기를 하겠다고 속이고는 아버지 유산을 독식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딸은 상속등기 효력을 부인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어머니는 단독상속의 뜻을 자식들에게 분명히 말했다고 했지만 딸의 말은 전혀 달랐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법정이 떠나가라 싸우는 모녀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실로 대단했다. 결국 내가 변론을 맡은 어머니가 승소했지만,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실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들이, 진실이 뭔지 잘 모르는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진실이 뭔지 절대 모르는 판사에게 결론을 받아내는 격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왜냐하면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설렁탕 한 그릇과 할아버지
 
추운 겨울이 가까워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한 15년 전쯤 일이다.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한 노인의 항소심 변호를 위해 구치소에 갔다. 그 노인의 죄명은 사람들이 있는 건조물(식당)에서의 ‘방화미수’였다. 
할아버지는 개천 다리 밑에 사는 노숙자였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없이 폐지나 고물을 주워 팔아 근근이 배고픔을 면하고 있었다. 다리 밑으로 부는 찬바람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추운 어느 날. 식당에 들어가서 설렁탕이라도 먹으면 꽁꽁 언 몸이 녹을까 싶어 주머니 속을 뒤졌고, 설렁탕 한 그릇 겨우 주문할 꼬깃꼬깃한 돈이 있었다. 조심스레 식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노숙자인 그를 알아본 식당 주인이 지저분한 그의 모습과 냄새에 다른 손님들의 식사가 방해된다며 그를 막았다. 할아버지는 돈을 보여주며 설렁탕만 빨리 먹고 가겠다고 했지만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노인은 왕년에는 직장도 다니고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인간대접도 안 해주는 세상이 싫었다. 가난과 추위, 멸시가 모두 싫었다. 그는 다리 밑 리어카에서 휘발유를 꺼내 몸에 들이붓고, 식당에 들어서면서 라이터를 켜서 몸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라이터는 불꽃만 튕길 뿐 불이 붙지 않았다. 순간 식당 주인이 노인을 덮쳐 결국 무위로 돌아갔지만, 노인은 구속되고 말았고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나는 노인의 삶이 너무나 불쌍해 어떻게든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다. 항소심 재판에서 방화미수가 아니라 방화의 예비단계에서의 범죄의 실패이므로 이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는 변론이 다행히 효과를 보았다. 노인은 무죄 석방되었다. 변호인은 판결 선고 때는 법정에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노인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무죄판결이 선고된 그날, 노인이 다시 추운 다리 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차라리 추운 겨울 동안 추위와 끼니 걱정 없이 구치소에서 살도록 두는 것이 그를 위한 좋은 변호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할아버지에게 허락하신 것은 따뜻한 밥과 잠자리가 아니라 자유와 자존이었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7).  
 
변론보다 중요한 동행
 
작년 겨울 초반 고교 동창 절친과 대학 동창 절친이 각기 다른 사건으로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동시에 등장한 절친은 둘 다 엄중한 형이 예상되는 사회적 유명 형사사건의 피의자(경찰이나 검사 등의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의 의심을 받아 수사를 받고 있는 자)가 되어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매일같이 사무실로 찾아오는 두 친구의 처진 어깨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의 마음으로 힘든 수사 과정과 피 말리는 재판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다. 대형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친구는 다행히 결과가 좋아 혐의를 벗고 올무에서 풀려났다. 믿음이 있던 그 친구는 그 일을 계기로 하나님 앞에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한 친구는 엄정한 시국사건에 얽매인 탓에 결국 억울한 결과를 받고 말았다. 그는 작년 추운 겨울을 포함해 상당한 시간을 구치소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 험한 상황을 지나면서 그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시 43:1). 
최선을 다하는 변론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가주는 동행이다. 모든 당사자는 중병에 걸린 환자와 비슷하다. 보호자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수사기관의 칼이 향하고 있음을 알면 누구나 안절부절 못한다. 엄혹한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동안이나 징역을 사는 동안 세상 그 누구도 의지가 되지 않는다. 그때 같은 시간, 같은 마음으로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고난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된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과 함께 계시고 앞으로 영원히 동행하실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내신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된 사람, 침해될 우려가 있는 사람, 하나님이 보시기에 대변자가 필요한 사람… 하나님은 부족한 내게 감히 이들을 대신해 말하고 행동하여 주라고 하신다. 두려워하는 모세와 함께 간 아론처럼 싸움에 이겨야 할 사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지혜가 필요한 사람, 나아가야 할 사람, 기다려야 할 사람, 일어서야 할 사람, 안타깝지만 쓰러져야 할 사람이다. 그 사람을 보내시면서 그와 함께 내가 해야 할 역할도 주신다.   
때로는 의뢰인이 진실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을 때도 있다. 또 때로는 의뢰인도 진실이 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보내주신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알고 있는 진실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대변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진실과 진리는 결국 하나님의 몫이다. 
소송에서 이기거나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기든지 지든지 모든 결과가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막으시거나 열어주시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그 재판 결과가 어떻게 사용되는가이다. 그 진리를 알고 있다면 승소의 문과 패소의 문 어느 곳으로 나가든지 진정한 동행을 하기 위해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겸손하게 그 문을 열 뿐이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며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2).
법률 사무는 매우 냉혹한 분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많다. 법적 쟁송이 신앙과 조화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세상과 신앙의 이분법 그 반대편에는 일과 신앙의 조화가 있다. 주님은 그런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세상 가운데서 일어난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모든 사건 속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요소가 항상 깃들여있다는 점을 안다. 그래서 특별한 시간, 특별한 상황에서 나에게 특별하게 부여할 역할을 기대하는 삶은 즐겁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 양웅 집사(이수공동체, 변호사) 

 
*발문
진리를 알고 있다면 승소의 문과 패소의 문 
어느 곳으로 나가든지 진정한 동행을 위해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