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 놓치면 1년 기다려야 한다!”
전문가 기고
똑같은 일상을 다르게 보는 힘 ‘감사’
“우와, 이 장면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해요!”
한 교육 세미나에서 참가자가 창밖 풍경을 보면서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다. 그가 봤던 풍경은 스위스의 융프라우나 캐나다 로키산맥처럼 멋진 경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우리나라 가을 경치였다. 그가 이토록 감탄했던 이유는 이 시기를 놓치면 내년 이맘때가 되어서야 다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 순간 ‘감사란 이런 거구나’를 깨달았 다. 우리가 시야를 넓게 전환해서, 무심코 지나쳐 온 장면들을 1년에 단 한 번밖에 누릴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개인과 가정, 교회공동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한 교육 세미나에서 참가자가 창밖 풍경을 보면서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다. 그가 봤던 풍경은 스위스의 융프라우나 캐나다 로키산맥처럼 멋진 경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우리나라 가을 경치였다. 그가 이토록 감탄했던 이유는 이 시기를 놓치면 내년 이맘때가 되어서야 다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 순간 ‘감사란 이런 거구나’를 깨달았 다. 우리가 시야를 넓게 전환해서, 무심코 지나쳐 온 장면들을 1년에 단 한 번밖에 누릴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개인과 가정, 교회공동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고구마(음식)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눈앞에 맛있는 군고구마가 놓여 있다. 추운 겨울에 딱 맞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다. 이 군고구마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 무엇일까?
1.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다.
2.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3. 음식을 제공해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먹는다.
2.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3. 음식을 제공해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먹는다.
이밖에도 고구마를 맛있게 먹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방법은 어떨까? 며칠 아니 몇 끼를 굶은 상태에서 먹는 것이다. 배고픈 상태에서 맛보는 음식의 맛은 종류를 불문하고 먹는 사람의 장기(長期)기억에 남을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크림빵을 참 좋아하신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이었던 1960년대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그때 맛보았던 크림빵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양한 종류의 빵이 많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그때 드셨던 크림빵을 찾으신다. 그런걸 보면 사람이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 음식을 먹느냐가 그 맛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에서 똑같은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배고픔’이란 육적인 상태를 우리의 영적 상태에 빗대어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음식을 잘 먹었다는 영적 배부름을 경험할 사람은 “영적 주림과 목마름을 경험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경험하는 것을 감사(gratitude)의 상태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필립 왓킨스 박사는 “감사는 좋은 일이 일어난 것과 이것이 외부의 대상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감사란 나에게 일상에서 주어지는 선물과 같은 좋은 일이 외부의 대상에게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인식), 마음으로 느끼고(인정),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표현)이다.”
감사를 잊어버린 상태는 우리의 일상에 매 순간 좋은 것을 주시는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시선을 놓치고 있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정말로 좋은 일인지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진정한 영적 무감각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감사를 회복하게 되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의 의미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영적 갈급한 상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크림빵을 참 좋아하신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이었던 1960년대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그때 맛보았던 크림빵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양한 종류의 빵이 많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그때 드셨던 크림빵을 찾으신다. 그런걸 보면 사람이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 음식을 먹느냐가 그 맛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에서 똑같은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배고픔’이란 육적인 상태를 우리의 영적 상태에 빗대어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음식을 잘 먹었다는 영적 배부름을 경험할 사람은 “영적 주림과 목마름을 경험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경험하는 것을 감사(gratitude)의 상태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필립 왓킨스 박사는 “감사는 좋은 일이 일어난 것과 이것이 외부의 대상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감사란 나에게 일상에서 주어지는 선물과 같은 좋은 일이 외부의 대상에게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인식), 마음으로 느끼고(인정),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표현)이다.”
감사를 잊어버린 상태는 우리의 일상에 매 순간 좋은 것을 주시는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시선을 놓치고 있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정말로 좋은 일인지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진정한 영적 무감각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감사를 회복하게 되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의 의미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영적 갈급한 상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7살 딸아이로부터 배운 ‘감사의 기적’
한 가족이 함께 감사 노트를 적기 시작했다. 아빠는 이제 막 한글을 쓰기 시작한 막내딸과 초등학교에 곧 입학하는 7살 딸, 아내에게 감사 노트를 나눠주었다. 각자의 감사 일기를 매일 기록하기로 했다. 만약 가족 모두가 이 미션에 성공하면 원하는 선물을 주고, 온 가족이 케이크도 함께 자르는 파티를 열기로 약속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날의 감사한 것들을 적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을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감사 노트를 적은 지 2주 후. 큰딸이 자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감사 일기를 적지 않고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 아빠가 보게 되었다.
“너, 감사 일기 안 쓰면 파티도 못 하고 선물도 못 받는 거 알지?”
약간의 협박조로 말한 아빠에게 딸아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파티 안 해도 괜찮아요.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딸이 그림을 그리고 있던 3장의 이면지에는 각각 아빠와 엄마, 동생이 그려져 있었고 그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감사의 제목이 옆에 함께 적혀 있었다. 그 감사의 범위는 하루 단위의 감사가 아니고 지금까지의 각각의 대상에게서 받은 생애를 아우르는 감사의 제목들이 적혀져 있었다.
“아빠 사랑해요. 그동안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그동안 씻겨 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맛있는 밥도 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맛있는 과일 사주셔서 감사해요. 아빠에게.”
“엄마 사랑해요. 그동안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맛있는 밥도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저를 씻겨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에게.”
“주은아. 언니는 너가 태어나서 정말 좋아. 주은아 사랑해. 앞으로 더 사이좋게 지내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날의 감사한 것들을 적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을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감사 노트를 적은 지 2주 후. 큰딸이 자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감사 일기를 적지 않고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 아빠가 보게 되었다.
“너, 감사 일기 안 쓰면 파티도 못 하고 선물도 못 받는 거 알지?”
약간의 협박조로 말한 아빠에게 딸아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파티 안 해도 괜찮아요.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딸이 그림을 그리고 있던 3장의 이면지에는 각각 아빠와 엄마, 동생이 그려져 있었고 그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감사의 제목이 옆에 함께 적혀 있었다. 그 감사의 범위는 하루 단위의 감사가 아니고 지금까지의 각각의 대상에게서 받은 생애를 아우르는 감사의 제목들이 적혀져 있었다.
“아빠 사랑해요. 그동안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그동안 씻겨 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맛있는 밥도 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맛있는 과일 사주셔서 감사해요. 아빠에게.”
“엄마 사랑해요. 그동안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맛있는 밥도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저를 씻겨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에게.”
“주은아. 언니는 너가 태어나서 정말 좋아. 주은아 사랑해. 앞으로 더 사이좋게 지내자.”
감사편지 3장을 쓴 딸은 그제야 감사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빠는 그날의 마지막 감사 내용에 “아빠가 마사지를 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고 한다. “아직 마사지 안 해줬는데…” 그러자 딸이 “이따 해줄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이 아빠는 2주 동안 감사 일기를 쓰면서 7세 딸아이로부터 두 가지 감사의 기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나는 하루라는 시간을 넘어선 일생(비록 7년이라는 짧은 일생이지만)에 대한 감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감사이다.
이 아빠는 2주 동안 감사 일기를 쓰면서 7세 딸아이로부터 두 가지 감사의 기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나는 하루라는 시간을 넘어선 일생(비록 7년이라는 짧은 일생이지만)에 대한 감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감사이다.
감사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표현하고
매일 똑같은 모습인 가족, 회사와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 그리고 나. 사실 그 모든 순간은 딱 한 번밖에 누릴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에 놓칠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인 감사의 눈으로 보게 되면 시야가 넓어져 일생에 대한 감사로 확대되고, 삶의 본질로 접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과 그에 따른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비밀이 감사에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여러분의 가정과 공동체는 어떠한가? 예수님은 오늘도 감사하는 개인과 가정, 공동체를 찾고 계신다. 열 명의 한센병 환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표현을 하기 위해 돌아온 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질문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지만 다양한 이유로 구원의 기쁨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 는 않은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의 작은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개입하시고,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서로 받은 좋은 것들을 함께 인식하고, 인정하고, 표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심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가정, 교회, 일터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소망하고 축복한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여러분의 가정과 공동체는 어떠한가? 예수님은 오늘도 감사하는 개인과 가정, 공동체를 찾고 계신다. 열 명의 한센병 환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표현을 하기 위해 돌아온 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질문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지만 다양한 이유로 구원의 기쁨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 는 않은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의 작은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개입하시고,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서로 받은 좋은 것들을 함께 인식하고, 인정하고, 표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심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가정, 교회, 일터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소망하고 축복한다.
<발문>
“감사란 나에게 일상에서 주어지는 선물 같은
좋은 일이 외부의 대상에게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좋은 일이 외부의 대상에게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