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야구(野球)를 통해 야구(野求)를 하다

신앙에세이
 
 
야구(野球)를 통해 야구(野求)를 하다
 
 
2018년 프로야구 SK의 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야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1982년 시작된 프로야구는 2018년 들어 관중 879만 명이 경기장을 찾을 정도로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 한국에는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1904년 최초로 야구를 도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야구를 봤을 때 야구의 매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 야구는 사람중심의 구기종목이다. 야구는 9명으로 편을 이룬 두 팀이 9회에 걸쳐 서로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며 거기서 얻은 득점으로 승패를 겨루는 구기종목이다.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공격 측에서 1루와 2루, 3루를 돌아 다시 홈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점수를 얻지 못한다. 공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이 중심이다.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이 있음을 일깨우셨던 예수님의 일갈처럼(막2:27) 기술과 물질 중심의 시대에 하나님의 고귀한 창조물을 야구를 통해서 살펴보게 된다. 홈에서 출발하여 홈으로 돌아오는 것 또한 어떠한가? 세상은 시작과 끝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현실을 구분한다. 생명의 탄생은 곧 죽음의 시작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야구 경기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이 땅에 나아왔지만 나그네임을 알고 본향을 찾는 기독교인의 모습(히11:13~14)과 흡사하다. 
둘째, 야구는 팀플레이다. 야구는 각자 역할이 분명하다. 선수간의 실력 차와 인기도면에서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모든 포지션에 선수 1명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역할 간의 경중을 가릴 수 없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듯(롬 8:28) 그 안에서의 협력이 곧 팀의 승리를 이끄는 것이다. 이것은 공격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안타를 칠 수도 있지만 팀의 득점 기회를 높이기 위해서 치는 ‘희생타’가 있다. 팀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개인기록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자신을 희생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아 자신의 삶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 결단과 야구의 희생타는 매우 비슷하다. 이것도 야구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셋째, 야구는 늘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 야구는 9명의 타자에게 동일하게 최소 3번씩의 타격 기회가 주어진다. 9회 말 2아웃 상황이더라도 언제든지 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해서, 상대방 팀과의 전력 차가 크다고 해서 경기가 중단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기회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처럼 타자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내가 어느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입니다”(고전 15:10).
기록에 따르면 야구(野球)의 한 경기에서 공이 움직이는 시간은 18분이고, 그 외 시간은 2시간 40분이라고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관중의 감탄을 자아내는 멋있는 플레이가 2시간 40분에서 탄생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나는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을 축복하고 싶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이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들판과 같은 현실에서 부르짖으며(野求)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를 축복한다.  
/ 이재원 목사(남양주 온누리교회)
 

작성자  권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