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잔소리
신앙에세이
잔소리
일전에 페이스북에서 본 글이 있다. 한 어린이가 쓴 ‘중독’이라는 동시다.
틈만 나면 게임한다고 중독이라 하지만/ 난 학교 갔다 와서 할 뿐/ 난 학원 갔다 와서 할 뿐/ 난 밥 먹고 난 후 할 뿐/ 난 똥 싸고 할 뿐/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고/ 밥도 안 먹고/ 똥도 안 싸고/ 틈도 없이 하는 게 중독이지/ 틈도 없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중독이지/
이 동시가 매우 코믹하기는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아이의 눈에 비친 엄마의 본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잔소리 중독에 빠져있다. ‘잔소리’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혹은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으로 기록되어 있다.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향하여 잔소리를 한다. 부모만 그런가? 학교에도, 회사에도, 심지어 교회에도 잔소리가 가득하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데 끊임없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한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데로 따라주거나 바뀌기를 원한다.
잔소리를 누가 많이 하는지를 살펴보니 상대방이 나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권한과 지위를 가질수록, 타인에 대한 믿음이 없을수록 잔소리를 많이 한다. 잔소리를 많이 한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내 안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잔소리는 상대방의 단점을 보고 지적하는 행위이다. 심리학자 융(Jung)은 이것을 ‘그림자(Shadow)’라고 말한다. 프로이트(Freud)는 이것을 ‘투사’라고 부른다. 내 안에 있는 어두움과 단점을 인정하기 싫어 상대방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어 지적하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잔소리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상대방의 모습 속에서 좋은 점과 장점을 자꾸 칭찬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 안에 그림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한두 번 화를 내고 소리친 적은 있지만 대부분 하나님 나라와 좋은 소식(복음)을 이야기하셨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셨다. 그냥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하나님도 인간을 향하여 잔소리하지 않으셨다. 말없이 인간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다. 잔소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 우리에게 진리를 전해주셨다.
이 시대는 말이 너무 많다. 매일 상대방을 지적하기 바쁘다. 모든 뉴스와 방송과 미디어를 보면 항상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한다.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훨씬 많다. 사람들은 잔소리를 듣고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배울 뿐이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도 주님의 사랑 때문에 변화되었다. 사도 바울도 유대교의 율법 잔소리에 감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
사람은 잔소리로 변화되지 않는다. 내 가정과 자녀들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내 직장과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내가 속한 교회를 변화시키기 원한다면 이제 잔소리를 접고 나 혼자 잘하면 된다. 어느 기독교 학술대회의 강연자가 했던 말이 인상에 남는다.
“우리 기독교인들만 잘하면 됩니다.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말하지 맙시다. 우리가 말 안 하는 것이 세상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다른 사람을 더 이상 가르치려 하거나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고 기도할 뿐이다. 혹여나 우리가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함으로써 불쾌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 오은규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잔소리를 누가 많이 하는지를 살펴보니 상대방이 나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권한과 지위를 가질수록, 타인에 대한 믿음이 없을수록 잔소리를 많이 한다. 잔소리를 많이 한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내 안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잔소리는 상대방의 단점을 보고 지적하는 행위이다. 심리학자 융(Jung)은 이것을 ‘그림자(Shadow)’라고 말한다. 프로이트(Freud)는 이것을 ‘투사’라고 부른다. 내 안에 있는 어두움과 단점을 인정하기 싫어 상대방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어 지적하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잔소리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상대방의 모습 속에서 좋은 점과 장점을 자꾸 칭찬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 안에 그림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한두 번 화를 내고 소리친 적은 있지만 대부분 하나님 나라와 좋은 소식(복음)을 이야기하셨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셨다. 그냥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하나님도 인간을 향하여 잔소리하지 않으셨다. 말없이 인간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다. 잔소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 우리에게 진리를 전해주셨다.
이 시대는 말이 너무 많다. 매일 상대방을 지적하기 바쁘다. 모든 뉴스와 방송과 미디어를 보면 항상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한다.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훨씬 많다. 사람들은 잔소리를 듣고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배울 뿐이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도 주님의 사랑 때문에 변화되었다. 사도 바울도 유대교의 율법 잔소리에 감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
사람은 잔소리로 변화되지 않는다. 내 가정과 자녀들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내 직장과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내가 속한 교회를 변화시키기 원한다면 이제 잔소리를 접고 나 혼자 잘하면 된다. 어느 기독교 학술대회의 강연자가 했던 말이 인상에 남는다.
“우리 기독교인들만 잘하면 됩니다.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말하지 맙시다. 우리가 말 안 하는 것이 세상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다른 사람을 더 이상 가르치려 하거나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고 기도할 뿐이다. 혹여나 우리가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함으로써 불쾌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 오은규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