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떠나는 아이가 성공한 자녀, 잘 보내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
기고
“드라마 SKY 캐슬이 어디까지가 진짜인가요?”
12년이 넘도록 대치동 학원가에 있었지만, 요즘처럼 일개 드라마에 대해 이처럼 많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극 중의 두 장면으로 답하고 싶다. 하버드 학생 행세 중이던 딸의 자작극 실체를 깨닫고 노승혜가 이렇게 고백했다.
“내 꿈은 다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내 인생이 빈껍데기 같아요.”
또 강준상이 목 놓아 울부짖는 오열도 대치동에서 자주 듣는 곡성이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어머니가!”
강준상은 엄마의 교욕(敎慾)으로 의사가 되었지만 5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70대 어머니에게 통제당하고 있다. 내가 현장에서 만나왔던 주인공들은 주로 30대였고, 부모 아닌 술잔을 바라보며 가슴앓이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교육열의 기준과 자녀를 향한 목표 범위 중 하나는 ‘건강한 독립’에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떠나’가 이 말씀의 첫 동사다. 이는 절교가 아니다.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의미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과 자녀를 키우는 것의 중요한 차이가 무엇일까?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것은 함께 붙어 지내는 동안 계속된다. 그러나 자녀를 향한 보살핌은 독립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자녀를 속이며 여전히 심리적 탯줄을 꼭 쥐고 있는 노승혜들. 아이를 향한 과도한 보호와 통제 결과 성인이 되어도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강준상들. 더 비참한 부류는 계속 사랑해 달라며 부모의 바지 자락을 붙들고 있는 성인 아이들이다. 사랑하기에 놓아주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조금 더 준비되면 보내준다는 부모들 밑에서 준비된 자녀로 만들어지는 경우를 거의 못 보았다. 부모와 자녀를 묶고 있는 탯줄에서 서로가 탈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잘 떠나는 아이가 성공한 자녀이다. 잘 보내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이다.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 ‘떠남=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이 무엇일까? ‘SKY 캐슬’을 넘어 ‘SKY(천국) 복음’을 택한 세 가정의 이야기로 답변하고 싶다.
첫 번째 가정은 필자의 이모 이야기다. 이모의 세 자녀는 모두 30대다. 서울대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친 교수, 의사, 공학박사이다. 이모의 삶은 드라마 SKY 캐슬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이모는 순장으로 오랜 기간 순원들을 섬겼다. 소녀가장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무료로 학습을 돕기도 했다.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며 암 투병 중인 치매 시아버님을 당신 댁에서 수년 동안 모셨다. 이 모든 일은 자녀들이 고3일 때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지금은 30대들이 대학 가던 시절과 다른 세상”이라고 반발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재수 안하고 올해 대학 가는 한 학생의 이야기로 답변하겠다. 필자의 이전 순장님의 자녀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일예배나 여름, 겨울 수련회에 결석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학구열 높기로 유명한 강남 모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 할 정도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 학생은 SKY 대학 한 곳에서 입학 허락을 받았다.
마지막 주인공은 필자의 현재 순장님 가정의 이야기이다. 맞벌이 선생님인 순장님이 어느 날 순모임 중에 “우리 아들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물어요”라고 씁쓸해했다.
그 순장님은 학교 특별활동비를 챙겨오지 못하는 불우한 학생을 남모르게 돕는 분이셨다. 해마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 기간 중에는 새벽부터 봉사하시는 분이다. 농촌 교회를 돕는 사역도 수년 동안 섬기셨다. 이 모든 일은 순장님의 큰딸이 고3일 때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순장님의 딸은 SKY 모든 학교로부터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오해 없길 바란다. 특정 대학 입학이 성공의 척도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세속적 이득을 위한 신앙적 투자론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주장은 이렇다. SKY를 관음하며 자녀의 내면세계에 흙탕물질 안 하는 부모들도 많다는 것이다. 사명이 뚜렷한 부모를 보며 자녀의 목표도 뚜렷해지는 선순환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 또한 부모와 자녀가 건강하게 독립하는 지혜 중 하나이다. 사교육은 필요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면 그만이다.
/ 유하워드 성도(강남A공동체, 대치동 eMAX어학원장)

12년이 넘도록 대치동 학원가에 있었지만, 요즘처럼 일개 드라마에 대해 이처럼 많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극 중의 두 장면으로 답하고 싶다. 하버드 학생 행세 중이던 딸의 자작극 실체를 깨닫고 노승혜가 이렇게 고백했다.
“내 꿈은 다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내 인생이 빈껍데기 같아요.”
또 강준상이 목 놓아 울부짖는 오열도 대치동에서 자주 듣는 곡성이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어머니가!”
강준상은 엄마의 교욕(敎慾)으로 의사가 되었지만 5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70대 어머니에게 통제당하고 있다. 내가 현장에서 만나왔던 주인공들은 주로 30대였고, 부모 아닌 술잔을 바라보며 가슴앓이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교육열의 기준과 자녀를 향한 목표 범위 중 하나는 ‘건강한 독립’에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떠나’가 이 말씀의 첫 동사다. 이는 절교가 아니다.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의미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과 자녀를 키우는 것의 중요한 차이가 무엇일까?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것은 함께 붙어 지내는 동안 계속된다. 그러나 자녀를 향한 보살핌은 독립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자녀를 속이며 여전히 심리적 탯줄을 꼭 쥐고 있는 노승혜들. 아이를 향한 과도한 보호와 통제 결과 성인이 되어도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강준상들. 더 비참한 부류는 계속 사랑해 달라며 부모의 바지 자락을 붙들고 있는 성인 아이들이다. 사랑하기에 놓아주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조금 더 준비되면 보내준다는 부모들 밑에서 준비된 자녀로 만들어지는 경우를 거의 못 보았다. 부모와 자녀를 묶고 있는 탯줄에서 서로가 탈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잘 떠나는 아이가 성공한 자녀이다. 잘 보내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이다.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 ‘떠남=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이 무엇일까? ‘SKY 캐슬’을 넘어 ‘SKY(천국) 복음’을 택한 세 가정의 이야기로 답변하고 싶다.
첫 번째 가정은 필자의 이모 이야기다. 이모의 세 자녀는 모두 30대다. 서울대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친 교수, 의사, 공학박사이다. 이모의 삶은 드라마 SKY 캐슬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이모는 순장으로 오랜 기간 순원들을 섬겼다. 소녀가장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무료로 학습을 돕기도 했다.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며 암 투병 중인 치매 시아버님을 당신 댁에서 수년 동안 모셨다. 이 모든 일은 자녀들이 고3일 때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지금은 30대들이 대학 가던 시절과 다른 세상”이라고 반발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재수 안하고 올해 대학 가는 한 학생의 이야기로 답변하겠다. 필자의 이전 순장님의 자녀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일예배나 여름, 겨울 수련회에 결석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학구열 높기로 유명한 강남 모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 할 정도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 학생은 SKY 대학 한 곳에서 입학 허락을 받았다.
마지막 주인공은 필자의 현재 순장님 가정의 이야기이다. 맞벌이 선생님인 순장님이 어느 날 순모임 중에 “우리 아들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물어요”라고 씁쓸해했다.
그 순장님은 학교 특별활동비를 챙겨오지 못하는 불우한 학생을 남모르게 돕는 분이셨다. 해마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 기간 중에는 새벽부터 봉사하시는 분이다. 농촌 교회를 돕는 사역도 수년 동안 섬기셨다. 이 모든 일은 순장님의 큰딸이 고3일 때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순장님의 딸은 SKY 모든 학교로부터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오해 없길 바란다. 특정 대학 입학이 성공의 척도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세속적 이득을 위한 신앙적 투자론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주장은 이렇다. SKY를 관음하며 자녀의 내면세계에 흙탕물질 안 하는 부모들도 많다는 것이다. 사명이 뚜렷한 부모를 보며 자녀의 목표도 뚜렷해지는 선순환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 또한 부모와 자녀가 건강하게 독립하는 지혜 중 하나이다. 사교육은 필요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면 그만이다.
/ 유하워드 성도(강남A공동체, 대치동 eMAX어학원장)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