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지금처럼 살다가 죽기 전에 예수 믿으면 되잖아요!”
답: “그러면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얻는 참된 행복을 놓치게 되실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다들 치열하게 사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인생의 가장 좋은 것이자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행복”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 이후 최고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인간의 존재 목적은 행복”이라고 했다. 비록 행복을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하여 어떤 사람은 돈에, 어떤 사람은 명예에, 어떤 사람은 건강에 매달리지만,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다.
누구나 추구하는 행복에 관해서 수많은 학자가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한결같이 꼽는 행복의 요소가 하나 있으니 바로 ‘관계’다. 관계가 순탄하여 원활할 때 사람은 행복감을 느낀다.
즉,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불행한 일은 모두 관계의 어려움에 기인한다. 단적인 예로, 사기를 당하여 사람을 더는 믿지 못하는 우울증에 빠지고, 급기야 범죄를 저지를 생각까지 한다. 여러 범죄와 부정적인 감정이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져서 생겨난다. 사람과의 관계는 ‘필요악’과 같다. 인간관계가 꼭 필요하지만 우리는 언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전혀 상처 주지 않고 관계를 맺으시는 분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변덕을 부리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시는 분이며,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민 23:19, 히 6:18).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삼상 16:7).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주님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사 40:8, 벧전 1:24~25). 세상에는 지나가는 사랑 천지여도,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렘 31:3).
만일 ‘지금처럼 살다가 죽기 전에 예수 믿으면’ 이처럼 신실하시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참된 행복을 놓치게 된다. 굳이 인간의 삶은 예상대로 되지 않기에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른다는 한계를 언급하거나,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겠다는 생각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려는 마음이 아니라는 지적을 차치하더라도, 예수님을 미리 믿으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을 놓친다는 게 몹시 안타깝다.
기독교인은 죽어서 가는 ‘천국 소망’만 붙들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이 황량한 세상 속에서도 ‘천국과도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다. 우리는 사람과 깊이 대화하면서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100%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한계를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과 대화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는다. 그러면 우리 안에 천국과도 같은 거룩한 평화가 임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감이 우리 안에 몰려온다.
부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요 14:27),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과도 같은 삶을 영위하면 좋겠다.
만일 OO님이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은 OO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OO야, 잘 왔다. 오랫동안 널 기다렸다. 넌 존귀한 존재이며, 특별히 내가 사랑하는 자란다.’ 내게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셨고 그 이후에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시작되었다. OO님도 그러한 행복을 누리길 소망한다.
/ 이강현 목사(양지 온누리교회)
누구나 추구하는 행복에 관해서 수많은 학자가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한결같이 꼽는 행복의 요소가 하나 있으니 바로 ‘관계’다. 관계가 순탄하여 원활할 때 사람은 행복감을 느낀다.
즉,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불행한 일은 모두 관계의 어려움에 기인한다. 단적인 예로, 사기를 당하여 사람을 더는 믿지 못하는 우울증에 빠지고, 급기야 범죄를 저지를 생각까지 한다. 여러 범죄와 부정적인 감정이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져서 생겨난다. 사람과의 관계는 ‘필요악’과 같다. 인간관계가 꼭 필요하지만 우리는 언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전혀 상처 주지 않고 관계를 맺으시는 분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변덕을 부리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시는 분이며,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민 23:19, 히 6:18).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삼상 16:7).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주님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사 40:8, 벧전 1:24~25). 세상에는 지나가는 사랑 천지여도,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렘 31:3).
만일 ‘지금처럼 살다가 죽기 전에 예수 믿으면’ 이처럼 신실하시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참된 행복을 놓치게 된다. 굳이 인간의 삶은 예상대로 되지 않기에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른다는 한계를 언급하거나,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겠다는 생각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려는 마음이 아니라는 지적을 차치하더라도, 예수님을 미리 믿으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을 놓친다는 게 몹시 안타깝다.
기독교인은 죽어서 가는 ‘천국 소망’만 붙들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이 황량한 세상 속에서도 ‘천국과도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다. 우리는 사람과 깊이 대화하면서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100%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한계를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과 대화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는다. 그러면 우리 안에 천국과도 같은 거룩한 평화가 임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감이 우리 안에 몰려온다.
부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요 14:27),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과도 같은 삶을 영위하면 좋겠다.
만일 OO님이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은 OO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OO야, 잘 왔다. 오랫동안 널 기다렸다. 넌 존귀한 존재이며, 특별히 내가 사랑하는 자란다.’ 내게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셨고 그 이후에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시작되었다. OO님도 그러한 행복을 누리길 소망한다.
/ 이강현 목사(양지 온누리교회)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