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시칠리아로 떠난 건축여행

기고
 
상처마저도 아름다움과 향기로 
 
<BC440-430년에 세워진 콘코르디아 신전. 시칠리아에 있는 여러  그리스 신전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

 
지난달 은사님과 함께 건축여행을 다녀왔다. 은사님은 한국에서 존경받는 원로 건축가(84세)시다. 만년에 로마네스크 건축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하고 계신다. 이번 여행은 이탈리아 중부와 시칠리아를 포함한 남부 지역 건축물들을 방문하는 것이 목표였다. 전체 일정 9박11일 중에서 3일을 시칠리아에 머물렀는데 그때 보고 느낀 것들을 나누고 싶다. 
시칠리아는 영화 ‘대부3’를 통해서 처음 접했다. 2대 대부(알 파치노)의 만년의 모습과 함께 배경이 되는 마을의 여유로운 정경, 대부가 자녀들의 삶을 바꿔주기 위해 사업가, 지역의 덕망 있는 인사로 변신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딸을 잃고 절망하는 현장인 ‘팔레르모의 극장(마시모 극장: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등이 인상 깊은 도시이다. 시칠리아는 북측 해안이 북위 38도로 위도 상으로는 한국의 중부지방에 해당하나 2월 날씨가 우리나라 봄 날씨와 비슷하다. 
시칠리아는 기후가 좋고 땅이 비옥하다. 그래서인지 주변 강대국의 출현에 주인이 바뀌는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시칠리아의 건축양식을 보면 그곳을 통치한 다양한 나라들의 문화들이 혼재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건축양식의 복합체이다. 건축물의 골격은 로마네스크인데 비잔틴 양식이 섞여있다. 노르만시대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는데, 동로마제국의 영향권에 들면서 비잔틴 양식이 첨가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집권세력의 기호에 따라 내부가 변경되고, 그 사이사이에 증축 되는 등 건축물이 아주 풍성하게 변화되었다. 
해상민족인 페니키아인들의 지배를 시작으로 BC 3세기까지는 그리스, BC 214년에는 로마가 시칠리아를 점령했다. 로마가 그리스의 신화체계와 조각, 건축법, 학문들을 계승하면서 여전히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또 9세기에는 사라센 침공으로 아랍문화가 이식돼 11세기까지 이어졌다. 다음에는 노르만이, 그 다음에는 스페인, 사보아, 오스트리아, 영국, 다시 스페인 등 수많은 나라들의 지배를 받았다. 1870년 가리발디 장군이 이탈리아를 통일한 것은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1,200년 후의 일이다. 시칠리아는 나라로서는 노르만 통치시기를 제외하면 나라로서 존재한 일이 없는 곳이다. 그들을 지배하던 문화들이 고스란히 남아 시칠리아 특유의 양식을 만들어냈다. 
여행 중에 방문한 아그리젠토와 시라쿠사에는 그리스의 신전유적들이 온전하게 남아있었다. 특히 아그리젠토의 그리스 신전은 최전성기인 BC 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신전이 위치한 곳이 해안에서 떨어져 있으면서도 해안의 선형을 따라 솟아오른 지역에 배치되어 있어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시칠리아의 역사는 그리스인들이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에는 인구 20만이 넘는 대도시가 3개 있었는데 본토 아테네를 제외하고 다른 두 도시(아그리젠토와 시라쿠사)가 시칠리아에 있었다는 것은 당시 시칠리아가 어떤 가치가 있는 지역이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본토인 그리스보다 그리스 건축물들을 더욱 풍성하고 온전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칠리아이다.  
시칠리아의 건축물들을 통해서 그리스문화로부터 로마, 사라센, 노르만, 스페인 등의 종교와 문화가 혼재된 건축문화의 풍요로움을 볼 수 있었다. 유럽 주류에 있는 나라들의 건축물들은 대체적으로 로마네스크면 로마네스크, 고딕이면 고딕, 르네상스면 르네상스 양식 등 일관성 있는 건축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시칠리아의 경우는 피지배의 아픈 기억들을 그들의 언어와 사고체계로 녹여내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그 시대의 표현이고 화석이다. 
우리의 현재는 직면해온 상황에 대한 반응의 결과이다. 우리의 사고체계 가운데 그 모든 반응의 흔적들이 영향을 주고 나이테로 존재한다. 그 흔적들이 우리의 현재를 표현한다. 그 흔적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우리의 순종으로 새겨질 때 상처마저도 아름다움과 향기로 드러남을 기억하게 한다. 시칠리아는 해상교통 요충지이며,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상처가 많았다. 시칠리아는 그 상처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그들이 만들어낸 건축문화는 우리에게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박흥균 장로(양천공동체, 호서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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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