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인생의 참된 의미
신앙에세이
인생의 참된 의미
나는 외교관이신 아버지 때문에 여덟 살 이후로 중동과 미국에서 생활했다. 부모님은 불신자셨고 나도 교회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인생을 무의미하게 살았다. 내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게 된 때는 대학시절이었다. 대학시절 나는 삶의 의미가 무엇이며,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에 기독교 잡지를 접하게 됐다. 기독교 잡지에 나와 있는 한 기도문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기도문에는 인생을 가치 있고 보람차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담겨있었고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배우기 원했고 학교 안에 있는 선교단체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주일에는 교회에 가지 않았지만 주중에 선교단체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에 참석했다. 그 곳에서의 예배와 교제를 통해서 나는 점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했을 때 한국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이 생겼다. 하지만 인생의 미래를 조금 더 준비하고 싶은 생각에 입대 일시를 연기하고 신앙의 멘토와 상담하던 중 그분이 추천한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을 다닐 만큼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래서 더욱 힘을 다해 학업에 열중했다. 신학 공부와 교제를 통해서 나는 점점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하게 됐다. 특히 선교단체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의 신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에는 가식과 거짓이 없었다. 그들의 삶은 크리스천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고민하던 인생의 문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영혼의 기쁨을 느끼며, 처음으로 영혼의 눈물을 흘렸다.
1994년에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신학대학원 시절 알고 지내던 동료를 통해서 서빙고 온누리교회 영어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에스더 하 선교사님이 온누리교회 영어예배 초등부를 섬기고 계셨는데 선교사님께서는 나에게 영어예배 초등부를 섬겨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군 입대 전까지 파트교역자로 영어예배 초등부를 열심히 섬겼다.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후에 다시 서빙고 온누리교회 초등부 영어예배를 섬기게 됐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하며 보스톤 온누리교회 영어예배와 얼바인 온누리교회 영어예배를 섬겼다. 그리고 2017년 3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역방향을 영어권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바꾸셨다. 지금 나는 강동 온누리교회 성인공동체 중에 ‘말씀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처음에는 서툰 한국말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영어로 설교문을 작성한 다음 인터넷 번역기를 통해서 한글로 번역하고 추가적으로 교정 작업도 했다. 설교를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비되었고 번역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도님들께서 나의 연약함을 이해해주시고 감싸주셨다. 성도님들의 사랑과 격려 덕분에 지금은 한국말이 꽤 능숙해졌다.
온누리교회 교역자로 섬기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이 비록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인생이 된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 송재호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주일에는 교회에 가지 않았지만 주중에 선교단체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에 참석했다. 그 곳에서의 예배와 교제를 통해서 나는 점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했을 때 한국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이 생겼다. 하지만 인생의 미래를 조금 더 준비하고 싶은 생각에 입대 일시를 연기하고 신앙의 멘토와 상담하던 중 그분이 추천한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을 다닐 만큼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래서 더욱 힘을 다해 학업에 열중했다. 신학 공부와 교제를 통해서 나는 점점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하게 됐다. 특히 선교단체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의 신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에는 가식과 거짓이 없었다. 그들의 삶은 크리스천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고민하던 인생의 문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영혼의 기쁨을 느끼며, 처음으로 영혼의 눈물을 흘렸다.
1994년에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신학대학원 시절 알고 지내던 동료를 통해서 서빙고 온누리교회 영어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에스더 하 선교사님이 온누리교회 영어예배 초등부를 섬기고 계셨는데 선교사님께서는 나에게 영어예배 초등부를 섬겨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군 입대 전까지 파트교역자로 영어예배 초등부를 열심히 섬겼다.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후에 다시 서빙고 온누리교회 초등부 영어예배를 섬기게 됐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하며 보스톤 온누리교회 영어예배와 얼바인 온누리교회 영어예배를 섬겼다. 그리고 2017년 3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역방향을 영어권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바꾸셨다. 지금 나는 강동 온누리교회 성인공동체 중에 ‘말씀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처음에는 서툰 한국말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영어로 설교문을 작성한 다음 인터넷 번역기를 통해서 한글로 번역하고 추가적으로 교정 작업도 했다. 설교를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비되었고 번역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도님들께서 나의 연약함을 이해해주시고 감싸주셨다. 성도님들의 사랑과 격려 덕분에 지금은 한국말이 꽤 능숙해졌다.
온누리교회 교역자로 섬기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이 비록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인생이 된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 송재호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