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그 사람과 얼마나 친밀하세요?”

전문가 기고

친밀함 의미 알고, 구체화하고, 관계점검 해보기 
 

 
“순식구와 서로 친밀하십니까?” 혹은 “하나님과 친밀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어떤 대답이 떠오를까? 우리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 ‘친밀함’이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그러나 막상 친밀함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면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친밀함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주는 모호함 때문일 수 있다. 
최근 한 형제님의 공동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형제님의 공동체 팀장이 팀원들과 무척 친밀하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팀원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친숙한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친밀함이라는 단어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친밀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알고, 구체화함으로 서로의 관계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할 것이다. 평소 익숙하지만 잘 정의하기 어려운 관계에 있는 가족, 순, 공동체 구성원들을 생각하면서 친밀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잠 18:24).친밀한 대상과의 관계로 얻게 되는 안정감과 평안은 가족관계와 견줄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모든 대상과 친밀해질 수는 없지만 현재의 친밀한 대상과의 관계를 떠올려보고 그렇지 않은 대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다면 일상이 조금 더 희망차지 않을까? 매튜 켈리는 저서 <친밀함>에서 추상적인 관계를 1단계부터 7단계까지 구체화하였다. 
 
매튜 켈리의 ‘친밀함 7단계’
 
1단계는 ‘진부함’이다. 진부함은 일상에서 자주 목격된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마주친 동료와 “주말 잘 보냈어요?”라고 인사한다. 또 길을 가다 옛 지인을 만나면 아주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질 때 하는 말이 “언제 밥 한번 먹자”이다. 필자는 “요즘 매우 바쁘시죠?”라는 인사를 자주 듣고, 자주 묻는다. 교과서에 나온 예문도 아닌데 우리는 왜 너무나도 친숙하며 진부한 이 인사말을 자주 사용하는 걸까? 진부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사람은 적응된 상태를 좋아한다. 서로의 관계가 어느 정도 적응되면 쉽게 그 상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은 첫 학기 어떤 친구와 어떻게 친한 그룹이 될지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적응이란 주위 환경과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데, 이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쉽게 밟는 관계의 첫 단계가 진부함이다. 
2단계는 ‘사실’이다. 진부함의 단계보다는 조금 더 높다. 어느 정도 서로 관심이 있고, 호기심이 있으면 주말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이야기한다. 사실의 단계가 진부함의 다음 단계인 이유는 마음을 조금 더 열어야 하고, 큰 어려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학교에서 오는 길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는 딸의 말에 왜 만났냐고 말하는 엄마가 없는 것처럼, 사실 그 자체만으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기 어렵다. 따라서 사실은 사실 그 자체이기에 공격받을 일이 없어서 안전한 관계의 단계이다. 
3단계는 ‘의견’ 단계이다. 이 단계는 친밀함의 첫 번째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단계이다. 그 이유는 의견을 물은 사람의 반응에 따라 더 높은 친밀함의 상태로 올라갈 수도, 진부함이나 사실 단계로 내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소 게임을 즐기고, TV에 푹 빠져있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의 상황을 떠올려보자. 방과 후 학원에 들렀다 집에 온 아들에게 엄마가 묻는다. “요즘 학원은 어때?” 이 진부한 물음에 아들이 퉁명스럽게 뱉은 대답은 “엄마, 나 학원 다니기 싫어. 힘들어. 안 다니면 안 돼?”이다. 
이 상황에 엄마의 표정을 상상해 보라. 화가 난 표정으로 “너 정신이 있어? 다른 애들은 국어, 영어, 수학 모두 다니는데 고작 수학 학원 다니면서 그것도 힘들다고 그만 다니겠다고? 집에서 온종일 게임만 하게?” 이렇게 반응했다고 치자. 아들은 이후 학원 혹은 학원과 관련된 엄마의 질문에 어떻게 반응할까? “그냥 그래” 혹은 “오늘 학원 다녀왔어” 정도의 진부함이나 사실만을 말하는 단계에 머물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의견까지도 주고받을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 다음 단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더욱 친밀해지려면
 
4단계는 ‘꿈과 희망’의 단계이다. 꿈과 희망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단계이다. 공동체에 어떤 바람이 있는지, 혹은 삶에 어떤 꿈이 있는지 등에 아는 단계이다. 그냥 듣기에도 의견보다는 높은 친밀함이 요구되는 단계로 생각되지 않는가? 상대방의 꿈과 희망을 알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대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유익을 얻게 된다. 필자의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축구선수가 꿈이다. 아들에게 축구는 인생의 큰 관심사이다. 그런 아들이 안타깝게도 편식을 한다. 아빠 입장에서 3단계인 의견을 식사할 때마다 주는데, 어느 날 아들의 표정을 보니 경청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들아, 아빠는 네가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불편한 것도 이겨내야 되지 않겠니? 먹는 것에서부터 싫어도 해야 할 것이 있는 거야”라고 말했더니 아들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아빠의 의견을 끝까지 잘 듣는 것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과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친밀하지 않으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친밀한 사이에는 어떤 것을 원하는지 크게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이 또한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말하지 않는다. 
5단계는 ‘느낌’이다. 느낌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친밀한 단계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빠가 역사에 대한 교훈이 잘 녹아있는 좋은 영화를 가족들과 함께 보고 싶어서 온 가족을 이끌고 극장에 갔다. 영화를 즐겁게 보고 나온 아빠는 딸에게 “영화 어땠어?”라고 물었다. 이때 딸의 반응이 “영화가 너무 재미없었어. 무슨 다큐멘터리도 아니고…”였다. 이때 아빠가 “응, 그랬구나”가 아니라 “뭐? 재미없어? 너 아까부터 팝콘 먹고 계속 졸더니 그러니까 재미없지. 내용은 기억하니?”라고 말한다면 이 아빠는 딸에게 의견(3단계)이나 사실(2단계)에 머무는 모습이 된다. 느낌의 단계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6단계는 ‘실패, 두려움, 상처’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을 벗으면 내면에 많은 상처와 두려움, 실패에 대한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공동체에서 꺼내기 힘든 현재 혹은 과거의 상황을 기도제목과 함께 용기 있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6단계의 높은 단계로 순식구들을 신뢰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나누는 것이다. 그런 높은 단계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면 자칫 잘못하면 친밀함을 떨어뜨리는 낮은 단계로 내려갈 수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현 상황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진정 높은 수준의 친밀한 단계이며 함께 길을 걷는 동역자, 친구의 관계일 것이다. 
7단계는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전인격적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바라보는 단계이다. 6단계를 포괄한 단계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이 단계에서 보고 계신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고 그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깨닫게 하셨을 때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고백이 선생님에서 메시아로 변화된 것처럼 말이다.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의 관계는 더 높은 친밀함으로 향할 것이다.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도 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가져야 한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공동체로 모이게 하시고, 각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공동체를 통해 알게 하신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공동체 안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도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한 단계 더 높은 친밀한 모습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다면 공동체의 기쁨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눈높이가 필요하다. 
/ 한건수 교수(수원 온누리교회, 국민대 겸임교수, 감사연구소 G.Lab 대표) 


 
<발문>
더 높은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눈높이가 필요하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