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칼럼 - 나의 존재 이유
권사칼럼
나의 존재 이유
고1 때 CCC에서 사영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했다. 10단계 성서교재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알아가기 시작했다. 부활절 아침 “Who moved the stone”이라는 설교 말씀을 들으며 눈물 콧물 흘리며 부활의 주님을 감격적으로 만났다.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무덤에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그 주님이 연약하고 초라한 죄인인 나에게 찾아 오셨다. 나의 죄를 사해 주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셨다. 그 약속의 말씀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아바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 나는 사영리를 가지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했다. 버스를 타도 “이 영혼입니까?”라고 주님께 물어가며 복음을 제시했다. 줄줄이 교회에 따라 나왔다. 그때는 그랬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롬 1:17).
친구 되신 주님과 교제하며 나아가는 기쁨이 충만했고, 참 자유함이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 안에 두려움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걸어오던 예수님만 보고 걷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물에 빠진 것처럼 내 안에 두려움이 가득 찼다. 세상을 보고 나를 보면서 작아지기 시작했다. 성공의 잣대, 학벌의 잣대, 물질의 잣대, 자녀 교육의 잣대 등 여러 세상의 잣대들이 나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큐티를 하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으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내 안에 경건의 능력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믿음의 담력이 없어졌고, 무력한 성도가 된 것이다. 옛날을 생각하며 ‘그 땐 그랬지’라며 회상하기만 했다. 다시 벧엘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벚꽃이 아름다움으로 유혹하는 사순절 기간에 책을 읽었다. <복음과 십자가: 하나님의 때가 차매>라는 황재명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그 옛날 그 사랑이 그리워 거실에서 부흥회를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복음은 실제 삶 속에서 생명을 창출해 내는 살아있는 말씀의 운동력이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답게 변화시키는 행동의 본이다. 바로 이 복음의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계속 선포하며 이루어가야 할 책무가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됐다.
1년 365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은 이천년 전 베들레헴 들판에서 선포된 복음이다. 갈보리 산상에서 두 강도가 못 박혔던 십자가는 내가 매어 달려야 하는 십자가였음을 회개했다. 이 시대에 일어나는 죄악상들이 다 내 탓임을 회개하며 다시 한 번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 갈 담력을 얻기를 기도했다. 휘장가운데로 찢어 놓으신 새로운 길로 담대히 걸어가기를 기도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며, 사람 낚는 어부로 쓰임 받는 자 되기를 기도했다. 나의 존재 이유를 주님께 물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바로 그때 따르릉 벨소리가 울리며 온누리신문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권사칼럼 부탁한다고.
‘아바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 나는 사영리를 가지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했다. 버스를 타도 “이 영혼입니까?”라고 주님께 물어가며 복음을 제시했다. 줄줄이 교회에 따라 나왔다. 그때는 그랬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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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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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은 이천년 전 베들레헴 들판에서 선포된 복음이다. 갈보리 산상에서 두 강도가 못 박혔던 십자가는 내가 매어 달려야 하는 십자가였음을 회개했다. 이 시대에 일어나는 죄악상들이 다 내 탓임을 회개하며 다시 한 번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 갈 담력을 얻기를 기도했다. 휘장가운데로 찢어 놓으신 새로운 길로 담대히 걸어가기를 기도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며, 사람 낚는 어부로 쓰임 받는 자 되기를 기도했다. 나의 존재 이유를 주님께 물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바로 그때 따르릉 벨소리가 울리며 온누리신문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권사칼럼 부탁한다고.
/ 민병춘 권사(강남A공동체)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