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전도를 왜 해야 하나요? 너무 부담스러워요!"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질문: 전도를 왜 해야 하나요? 너무 부담스러워요!
답: 사람이 죽고 사는 상황에서는 부담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적극 동참해서 진정한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지상명령인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유언이다. 성도라면 꼭 해야 하는 일,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시대가 변해도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귀한 일이다.
포스트모던시대 불신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다고 이야기 한다. 둘째, 교회에 몇 번 가봤거나 가까운 지인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기독교에 대하여 피상적인 지식이 있다. 셋째, 현대를 살아감에 의하여 심각한 정서적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불신자의 세 번째 특징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현대인들 안에 심각한 정서적 소외감이 있다는 것은 도리어 마태복음 5장에 적힌 복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가난한 상황과 연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그 어느 것으로도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없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전도는 불신자들의 특성을 파악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제거해야 한다. 소외감을 느끼는 그들의 필요에 따라 감성을 터치하고, 복음의 접촉점으로 삼아야 한다. 전도대상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그들에게 평안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접근 방법을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혜롭게 전해야 한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마 10:1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할 때 주신 지침이다. 이것은 2000년 전 원칙이지만 지금도 지켜야 할 특별한 원칙이다.
전도를 위해서는 담대함도 필요하지만 신중함이 더욱 필요하다.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예수님처럼 전도대상자들의 연령 혹은 직업을 확인하며 문화적 코드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전도대상자들의 필요와 접촉점을 분석한다.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지?’, ‘왜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지?’, ‘교회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는지?’ 등의 질문을 가져야 한다.
셋째, 전도대상자를 위한 중보기도로 시작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물을 길러 온 우물가의 여인에게 생수의 대화로 복음을 설명하신다. 한 여인의 영혼을 위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누신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 그 동네를 방문하신다.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며 “오늘 너의 집에 내가 가겠다”고 하셨다. 그때 삭개오는 자신이 토색한 것이 있다면 네 배나 갚겠다는 감동의 응답을 하게 된다.
시간과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 관계를 형성하고, 영혼을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 중풍병자의 침상을 들고 온 친구들은 한 영혼을 위해 여러 명이 함께 고민했다. 예수님께 중풍병자를 데리고 가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그렇지만 친구를 사랑하기에 지붕이 보였고, 그 지붕을 뚫는 열정을 보이게 된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실 뿐 아니라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친구들의 믿음을 귀하게 생각하신 것이다.
전도는 교회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가 아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살리는 순간순간의 일이다. 전도를 하는데 전도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생명과 연관된 일이라면 부담을 넘어서야 한다. 오래 전 물에 빠진 사람을 인공호흡으로 살린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는 부담이 존재하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상황에서는 부담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구조되어 살아난 분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믿음이며,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의무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할 때 성도로써 진정한 기쁨이 있을 것이다.
/ 여성민 목사(전도사역본부장)
지상명령인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유언이다. 성도라면 꼭 해야 하는 일,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시대가 변해도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귀한 일이다.
포스트모던시대 불신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다고 이야기 한다. 둘째, 교회에 몇 번 가봤거나 가까운 지인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기독교에 대하여 피상적인 지식이 있다. 셋째, 현대를 살아감에 의하여 심각한 정서적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불신자의 세 번째 특징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현대인들 안에 심각한 정서적 소외감이 있다는 것은 도리어 마태복음 5장에 적힌 복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가난한 상황과 연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그 어느 것으로도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없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전도는 불신자들의 특성을 파악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제거해야 한다. 소외감을 느끼는 그들의 필요에 따라 감성을 터치하고, 복음의 접촉점으로 삼아야 한다. 전도대상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그들에게 평안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접근 방법을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혜롭게 전해야 한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마 10:1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할 때 주신 지침이다. 이것은 2000년 전 원칙이지만 지금도 지켜야 할 특별한 원칙이다.
전도를 위해서는 담대함도 필요하지만 신중함이 더욱 필요하다.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예수님처럼 전도대상자들의 연령 혹은 직업을 확인하며 문화적 코드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전도대상자들의 필요와 접촉점을 분석한다.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지?’, ‘왜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지?’, ‘교회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는지?’ 등의 질문을 가져야 한다.
셋째, 전도대상자를 위한 중보기도로 시작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물을 길러 온 우물가의 여인에게 생수의 대화로 복음을 설명하신다. 한 여인의 영혼을 위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누신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 그 동네를 방문하신다.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며 “오늘 너의 집에 내가 가겠다”고 하셨다. 그때 삭개오는 자신이 토색한 것이 있다면 네 배나 갚겠다는 감동의 응답을 하게 된다.
시간과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 관계를 형성하고, 영혼을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 중풍병자의 침상을 들고 온 친구들은 한 영혼을 위해 여러 명이 함께 고민했다. 예수님께 중풍병자를 데리고 가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그렇지만 친구를 사랑하기에 지붕이 보였고, 그 지붕을 뚫는 열정을 보이게 된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실 뿐 아니라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친구들의 믿음을 귀하게 생각하신 것이다.
전도는 교회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가 아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살리는 순간순간의 일이다. 전도를 하는데 전도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생명과 연관된 일이라면 부담을 넘어서야 한다. 오래 전 물에 빠진 사람을 인공호흡으로 살린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는 부담이 존재하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상황에서는 부담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구조되어 살아난 분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믿음이며,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의무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할 때 성도로써 진정한 기쁨이 있을 것이다.
/ 여성민 목사(전도사역본부장)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