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크리스천은 왜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하나요?"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크리스천은 왜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하나요?”
“우리는 죄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는 영적 무지 상태일 때 죄를 범하게 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하며, 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터넷 기사나 방송을 통해 교회 임직자임을 나타냈던 사람들의 말이 허위로 드러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교회 임직자라면 성경적인 훈련을 많이 받았을 텐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 특히 불신자들 앞에서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이는 영적 무지 때문이다. 죄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기에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 크리스천들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죄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이 되시고, 그것도 모자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할 만큼 죄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또한 성경은 구약의 역사를 통해 그 누구도 인류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한다.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으로도, 수없이 드린 제사로도 죄의 해결이 불가능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다.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은 복음 전도의 중심이 된다. 죄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전도가 불가능하다. “교회 오라”고 말만 하고 죄를 깨우쳐 주지 않는 전도는 성경이 말하는 전도가 아니다. 참된 전도는 처음부터 회개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말씀이 그것을 대변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죄의 특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죄는 마음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행위를 넘어서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그렇다.
“여러분이 믿음 가운데 있는지 여러분 자신을 살피고 계속해서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심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고후 13:5).
죄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사랑 의 크기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에 범죄 하는 것이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범죄예방의 지름길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하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본성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죄는 교활하다. 유혹을 받았지만 죄는 짓지 않았다고 말하게 한다. 유혹을 받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활하고 끈질긴 죄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마음만 먹어도 이미 죄에 넘어가게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원하지 않는데도 죄를 짓게 한다. 따라서 그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오른쪽 눈을 빼더라도 실족하지 말라”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지만 일부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데 바로 영생이다.
그렇다면 죄에 대해 실제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죄를 보다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악한 일을 행하지 않아도 내가 여전히 악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죄를 멀리해야 한다. 의지적으로 죄를 미워해야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죄를 멀리 해야 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악을 미워하라. 그분이 성도들의 영혼을 보호하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시 97:10).
산상수훈 팔복에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보는 복을 받는다고 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신다. 무릇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죄를 억제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말했다. ‘이것이 스룹바벨에게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다. 네 힘으로는 안 되고 네 능력으로도 안 되고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슥 4:6).
성령을 쫓아 행하면 된다.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된다. 그것이 성령 충만이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쉬지 않고,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성령을 쫓아 행하며 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이 시대 크리스천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이 되시고, 그것도 모자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할 만큼 죄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또한 성경은 구약의 역사를 통해 그 누구도 인류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한다.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으로도, 수없이 드린 제사로도 죄의 해결이 불가능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다.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은 복음 전도의 중심이 된다. 죄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전도가 불가능하다. “교회 오라”고 말만 하고 죄를 깨우쳐 주지 않는 전도는 성경이 말하는 전도가 아니다. 참된 전도는 처음부터 회개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말씀이 그것을 대변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죄의 특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죄는 마음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행위를 넘어서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그렇다.
“여러분이 믿음 가운데 있는지 여러분 자신을 살피고 계속해서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심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고후 13:5).
죄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사랑 의 크기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에 범죄 하는 것이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범죄예방의 지름길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하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본성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죄는 교활하다. 유혹을 받았지만 죄는 짓지 않았다고 말하게 한다. 유혹을 받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활하고 끈질긴 죄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마음만 먹어도 이미 죄에 넘어가게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원하지 않는데도 죄를 짓게 한다. 따라서 그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오른쪽 눈을 빼더라도 실족하지 말라”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지만 일부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데 바로 영생이다.
그렇다면 죄에 대해 실제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죄를 보다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악한 일을 행하지 않아도 내가 여전히 악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죄를 멀리해야 한다. 의지적으로 죄를 미워해야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죄를 멀리 해야 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악을 미워하라. 그분이 성도들의 영혼을 보호하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시 97:10).
산상수훈 팔복에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보는 복을 받는다고 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신다. 무릇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죄를 억제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말했다. ‘이것이 스룹바벨에게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다. 네 힘으로는 안 되고 네 능력으로도 안 되고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슥 4:6).
성령을 쫓아 행하면 된다.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된다. 그것이 성령 충만이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쉬지 않고,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성령을 쫓아 행하며 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이 시대 크리스천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 손신국 목사(평택 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