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목사 <그리스도를 본받아>
책 읽어주는 목사
고난 중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 저 / 브니엘 / 10,000원
토마스 아 켐피스 저 / 브니엘 / 10,000원
내게는 이 책이 단순한 책이 아니다. 내 삶의 이전(before)과 이후(after)의 획을 그어준 도구이기 때문이다. 내 삶 고난의 시기에 이 책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씹어 내 안에 넣으면서 결국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바로 내 생각의 뿌리를 만들었다.
문자란 독특한 힘을 가졌다. 생각 속에 들어오고, 마음 밭을 개간하며, 정신세계를 이끌어준다. 사실 전달방법만 본다면 문자, 오디오, 비디오 중에서 영향력과 효과는 눈과 귀를 모두 끌어당기는 비디오가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그러나 문자는 오래도록 더 깊은 생각으로 이끌어준다.
누구나 사노라면 파도를 만난다. 고난이다.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모두 모범생으로 성장하던 내게 다가온 파도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희망이나 예상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비윤리와 타협할 수는 없었고 결국 젊은 시절의 이런저런 꿈들이 꺾였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내게?”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아주 긴 시간 침묵하셨다. 외관상의 실패의 연장선에서 마치 도피자의 행로처럼 나는 단신으로 뒤늦게 유학의 길을 선택했다. 떠나기 전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의 부목사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 부목사님이 바로 몇 년 전까지 세브란스병원 원목이셨던 유기성 목사님이다. 80년대 초 우리 사회가 요즘처럼 온통 들썩거리던 때 심판을 예언하는 책도 아니고, 사회정의에 대한 책도 아니고, 영성생활에 관한 책이었다.
연고도 없고 한국 사람도 별로 없는 미국 지방의 대학을 다니며 매일 이 책을 한 페이지씩 읽었다. 간혹 짧은 잠언 같은 말씀에서는 읽는 속도가 일주일에 한 페이지였던 것 같다. 영적 생활이란 무엇인지, 예수님은 누구신지, 왜 그를 따라야 하는지, 왜 겸손해야 하는지, 내 분노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아주 천천히 차근차근 돌아보며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영혼의 이유식이다. 세상에 속해 세상의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훈련된 내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한 책이다. 조금씩 오물거리며 생각의 방향을 만들고, 조금씩 이빨로 깨어 물기도 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한 책이다.
파도란 이해의 대상이 아님을, 그리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까지 근 1년이 걸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예수 믿으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서 축복받고 누리며 산다는 정도만 알았을 뿐이다.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이유도, 십자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도, 십자가 이면의 영적 풍성함도, 하나님의 놀라운 영원한 계획도 모두 알지 못했다. 영적인 눈이 뜨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신앙이란 세상을 역류하는 일이다. 분명한 소망이 없으면, 세상을 초월한 분명한 비전이 없으면 역류는 고역이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생명은 역류할 때 더 분명한 생명의 증거를 남긴다.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을 향한 분노는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묵상하면서 어느덧 분노는 사라지고 용서가 아주 조금씩 자라게 되었다. 사실 말씀 적용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용서였다. 정의를 위해서 남에게 해를 입히는 부정함은 배척되고 제거되어야겠지만 그 시행은 하나님의 몫이다. 정의를 부르짖음이 교만인 이유는 그 정의의 수행이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닮는다는 말은 하나님처럼 심판자의 자리에 뛰어올라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임을 배웠고 그 진리를 받아들였다. 비록 마음 속 깊은 곳에까지 완전한 적용에는 미달이었더라도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성령세례를 받았다. 책이 성령세례로 인도한 셈이다.
이 책은 복음의 가장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을 잘 풀어서 이유식이 필요한 영적 유아들에게 공급해주는 책이다. 교회생활에 익숙함이 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친밀함이 신앙이다. 사역 현장에서의 열심은 자칫 하나님을 제친 자기중심적 열심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태도가 중요하다. 부르심은 끊임없이 재확인되어야 한다. 직분을 받아 스스로 뭔가 된 것 같이 생각될 때마다 자기중심적 생각을 내려놓고 누가 주인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각인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일은 이 땅에서 바보같이 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의 목소리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만 민감해야 한다. 생각의 초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겸손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등이다.
나는 이 책을 특별히 고난 중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추천한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 부르심에 따라 사는 길이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임을 확신하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있다. 내 손에 물질이 없어도, 건강이 나빠져 가더라도, 나를 에워싼 상황이 더 내려가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주님만이 내 모든 것임을 고백하고, 주님 때문에 즐거워한다. 마치 하박국 3장 17~19절 말씀처럼.
/ 최승구 목사(가정사역공동체)
문자란 독특한 힘을 가졌다. 생각 속에 들어오고, 마음 밭을 개간하며, 정신세계를 이끌어준다. 사실 전달방법만 본다면 문자, 오디오, 비디오 중에서 영향력과 효과는 눈과 귀를 모두 끌어당기는 비디오가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그러나 문자는 오래도록 더 깊은 생각으로 이끌어준다.
누구나 사노라면 파도를 만난다. 고난이다.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모두 모범생으로 성장하던 내게 다가온 파도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희망이나 예상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비윤리와 타협할 수는 없었고 결국 젊은 시절의 이런저런 꿈들이 꺾였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내게?”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아주 긴 시간 침묵하셨다. 외관상의 실패의 연장선에서 마치 도피자의 행로처럼 나는 단신으로 뒤늦게 유학의 길을 선택했다. 떠나기 전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의 부목사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 부목사님이 바로 몇 년 전까지 세브란스병원 원목이셨던 유기성 목사님이다. 80년대 초 우리 사회가 요즘처럼 온통 들썩거리던 때 심판을 예언하는 책도 아니고, 사회정의에 대한 책도 아니고, 영성생활에 관한 책이었다.
연고도 없고 한국 사람도 별로 없는 미국 지방의 대학을 다니며 매일 이 책을 한 페이지씩 읽었다. 간혹 짧은 잠언 같은 말씀에서는 읽는 속도가 일주일에 한 페이지였던 것 같다. 영적 생활이란 무엇인지, 예수님은 누구신지, 왜 그를 따라야 하는지, 왜 겸손해야 하는지, 내 분노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아주 천천히 차근차근 돌아보며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영혼의 이유식이다. 세상에 속해 세상의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훈련된 내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한 책이다. 조금씩 오물거리며 생각의 방향을 만들고, 조금씩 이빨로 깨어 물기도 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한 책이다.
파도란 이해의 대상이 아님을, 그리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까지 근 1년이 걸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예수 믿으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서 축복받고 누리며 산다는 정도만 알았을 뿐이다.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이유도, 십자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도, 십자가 이면의 영적 풍성함도, 하나님의 놀라운 영원한 계획도 모두 알지 못했다. 영적인 눈이 뜨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신앙이란 세상을 역류하는 일이다. 분명한 소망이 없으면, 세상을 초월한 분명한 비전이 없으면 역류는 고역이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생명은 역류할 때 더 분명한 생명의 증거를 남긴다.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을 향한 분노는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묵상하면서 어느덧 분노는 사라지고 용서가 아주 조금씩 자라게 되었다. 사실 말씀 적용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용서였다. 정의를 위해서 남에게 해를 입히는 부정함은 배척되고 제거되어야겠지만 그 시행은 하나님의 몫이다. 정의를 부르짖음이 교만인 이유는 그 정의의 수행이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닮는다는 말은 하나님처럼 심판자의 자리에 뛰어올라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임을 배웠고 그 진리를 받아들였다. 비록 마음 속 깊은 곳에까지 완전한 적용에는 미달이었더라도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성령세례를 받았다. 책이 성령세례로 인도한 셈이다.
이 책은 복음의 가장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을 잘 풀어서 이유식이 필요한 영적 유아들에게 공급해주는 책이다. 교회생활에 익숙함이 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친밀함이 신앙이다. 사역 현장에서의 열심은 자칫 하나님을 제친 자기중심적 열심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태도가 중요하다. 부르심은 끊임없이 재확인되어야 한다. 직분을 받아 스스로 뭔가 된 것 같이 생각될 때마다 자기중심적 생각을 내려놓고 누가 주인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각인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일은 이 땅에서 바보같이 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의 목소리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만 민감해야 한다. 생각의 초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겸손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등이다.
나는 이 책을 특별히 고난 중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추천한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 부르심에 따라 사는 길이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임을 확신하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있다. 내 손에 물질이 없어도, 건강이 나빠져 가더라도, 나를 에워싼 상황이 더 내려가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주님만이 내 모든 것임을 고백하고, 주님 때문에 즐거워한다. 마치 하박국 3장 17~19절 말씀처럼.
/ 최승구 목사(가정사역공동체)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