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목사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적 교회>
책 읽어주는 목사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적 교회
<1세기 교회 예배이야기>
로버트 뱅크스 저 / IVP / 6,000원
로버트 뱅크스 저 / IVP / 6,000원
이 책은 한 번도 그리스도인이 되어 본적 없는 ‘푸블리우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신식민지에 해당하는 마케도니아 빌립보 출신이다. 오래된 친구 글레멘드와 유오디아와 함께 로마에 머물고 있다.
유대인 아굴라와 브리스가 가정 만찬에 초대 받아 가는데 그들은 유대인의 이미지와 다르게 도덕적 제약과 종교적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 보인다.
손님대접 잘하기로 소문난 부부의 다정한 환영을 한 몸에 받는다. 처음 만찬에 참석한 푸블리우스의 자리를 가장 좋은 자리로 정해놓은 것을 놀랍게 여긴다. 푸블리우스 뿐만 아니라 아직 모임에 오지 않은 해방 노예인 가이오를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는 모습은 로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만찬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식사 이후 ‘직접 빵과 잔을 먹고 남은 것을 그들의 신에게 드리며 받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만찬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신에게 바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신이 한 일을 이야기 하고, 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상기시킨다. “몸이 살려면 빵이 필요하듯, 참 생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기억하고 먹고 마신다. “육체로는 함께 있지 않지만 그 분이 분명히 함께 하신다”며 기도한다. 일련의 과정은 전혀 종교적이거나 의식적이지 않다.
만찬을 마치고 어른들과 어린이들, 그리고 종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눈다. 누군가는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를 부르고, 또 다른 이들은 대화하듯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관계는 매우 수평적이다. 서로 관점이 틀려서 갈등이 생길 때도 무례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대화를 경험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하면서 일치가 있고, 흐트러짐 속에서 질서가 있다.
푸블리우스는 그날 모임 마치고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본다. 예상과 다르게 매우 즐거웠고, 사람들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혹여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광신에 빠져 있지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틀림없이 말할 수 없는 실제적인 무언가가 그 모임 가운데 있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아닌 푸블리우스가 초대를 받은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세상과 구별된 모임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경험한 것이고,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예배를 드린 것이었다. 이것이 1세기 초대교회의 모습이고,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이 책의 목적은 세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째, 현재 그리스도인들을 위함이다. 우리가 초대교회라 칭하는 1세기 교회공동체가 어떤 모습인지를 살펴보고, 이 시대 교회공동체와 어떤 면에서 다른지 생각해 보고, 교정할 수 있는 관점을 준다. 둘째, 교회를 포기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함이다. 이전의 공동체에서 깊은 환대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에 염증을 느껴버린 이들에게 다시 공동체를 소망하는 관점을 준다. 셋째, 한 번도 그리스도인이 되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함이다. 교회공동체가 의식적, 신비적, 광신적이 아니라 대체로 일상적임을 알려줄 수 있다. 따뜻하고 포근하며 늘 함께 하고 싶은 가족공동체임을 소개해 줌으로 새롭게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푸블리우스의 이야기로 각색되어 읽기 쉽고, 7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많은 역사적 자료와 문헌들을 참고해서 만든 책이라 생각해 볼 내용이 많아 유익하다. 이 책을 통해서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꿈꾸는 온누리교회의 소그룹 공동체마다 다시금 성령의 바람이 불기를 소망한다.
유대인 아굴라와 브리스가 가정 만찬에 초대 받아 가는데 그들은 유대인의 이미지와 다르게 도덕적 제약과 종교적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 보인다.
손님대접 잘하기로 소문난 부부의 다정한 환영을 한 몸에 받는다. 처음 만찬에 참석한 푸블리우스의 자리를 가장 좋은 자리로 정해놓은 것을 놀랍게 여긴다. 푸블리우스 뿐만 아니라 아직 모임에 오지 않은 해방 노예인 가이오를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는 모습은 로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만찬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식사 이후 ‘직접 빵과 잔을 먹고 남은 것을 그들의 신에게 드리며 받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만찬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신에게 바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신이 한 일을 이야기 하고, 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상기시킨다. “몸이 살려면 빵이 필요하듯, 참 생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기억하고 먹고 마신다. “육체로는 함께 있지 않지만 그 분이 분명히 함께 하신다”며 기도한다. 일련의 과정은 전혀 종교적이거나 의식적이지 않다.
만찬을 마치고 어른들과 어린이들, 그리고 종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눈다. 누군가는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를 부르고, 또 다른 이들은 대화하듯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관계는 매우 수평적이다. 서로 관점이 틀려서 갈등이 생길 때도 무례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대화를 경험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하면서 일치가 있고, 흐트러짐 속에서 질서가 있다.
푸블리우스는 그날 모임 마치고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본다. 예상과 다르게 매우 즐거웠고, 사람들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혹여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광신에 빠져 있지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틀림없이 말할 수 없는 실제적인 무언가가 그 모임 가운데 있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아닌 푸블리우스가 초대를 받은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세상과 구별된 모임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경험한 것이고,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예배를 드린 것이었다. 이것이 1세기 초대교회의 모습이고,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이 책의 목적은 세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째, 현재 그리스도인들을 위함이다. 우리가 초대교회라 칭하는 1세기 교회공동체가 어떤 모습인지를 살펴보고, 이 시대 교회공동체와 어떤 면에서 다른지 생각해 보고, 교정할 수 있는 관점을 준다. 둘째, 교회를 포기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함이다. 이전의 공동체에서 깊은 환대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에 염증을 느껴버린 이들에게 다시 공동체를 소망하는 관점을 준다. 셋째, 한 번도 그리스도인이 되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함이다. 교회공동체가 의식적, 신비적, 광신적이 아니라 대체로 일상적임을 알려줄 수 있다. 따뜻하고 포근하며 늘 함께 하고 싶은 가족공동체임을 소개해 줌으로 새롭게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푸블리우스의 이야기로 각색되어 읽기 쉽고, 7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많은 역사적 자료와 문헌들을 참고해서 만든 책이라 생각해 볼 내용이 많아 유익하다. 이 책을 통해서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꿈꾸는 온누리교회의 소그룹 공동체마다 다시금 성령의 바람이 불기를 소망한다.
/ 문장원 목사(인천 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