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옆집에 사는 교인 때문에 교회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옆집에 사는 교인 때문에 교회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병원은 완전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어딘가 아프기 때문에 가는 곳이지요. 병원에 가보면 아픈 사람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완전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어딘가 불완전한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성경에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고요. 예수님도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회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의인(기준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본이 되고 귀감이 되시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할 교회의 구성원이나 리더들 때문에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은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 전도 현장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전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렇게 묻는 이들의 말을 일단 긍정적으로 받으며 예수님도 그런 사람들을 보고 분개했다고 하면서 전도를 시작할 수도 있다.
“네 그러시군요. 속상하시지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불편하네요. 그런데 그런 사기꾼(위선자)같은 사람들은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도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사기꾼)을 보고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려고 하는구나’라고 분개하셨습니다”(마 21:12~13).
이처럼 그렇게 묻는 이들의 말에 동조한 이후 교회 안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이야기 해준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이런 사기꾼(위선자)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는 세 부류의 사림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거짓 교인(위선자)입니다. 자기 사업이나 유익을 위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나옵니다. 두 번째는 교인은 교인이지만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교인이지요. 어린 아이들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더라도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다닐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요 그들은 자신을 먼저 사랑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위선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 닫듯 그들도 점차 신앙 연륜이 쌓이면 과거의 실수를 깨닫게 되고, 자신보다 이웃을 생각하며, 선한 일도 많이 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등 성숙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숙한 것 같아도 사람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아무리 오래 다녀도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가장 좋다는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몇 번이나 믿음이 없음을 지적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믿음이 없다고 지적을 받았고 심지어 사탄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교회에 있는 목사님이나 장로님들, 천주교의 신부님들이나 교황님도 예수님의 실제 제자보다 믿음이나 행실이 뛰어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본받을 기준(본)이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그 사람도 교회의 기준이나 목표가 아닙니다. 실제 우리의 본이 되시고 기준이 되시는 분은 예수님 외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이 몇 년 동안 보물을 찾으러 다니다가 어느 동굴에서 어렵게 보물을 찾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보니 보물 옆에 동물의 배설물 등 오물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오물 때문에 보물을 포기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보물 찾으러 다닌 사람의 목적은 오물이 아니라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옆에 오물이 있어도 보물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둘째,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평소 싫어하는 음식이 앞에 놓였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음식을 먹지 않고 그냥 나오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싫어하는 음식은 피하고 내가 좋아하는 나머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됩니다. 음식점에 간 목적은 싫어하는 음식이 아니라 내 육체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합시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대기실에 환자들이 가득 있다고 ‘이 병원에는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이 있지?’ 하고 그냥 나오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순서를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고 나옵니다, 병원에 간 목적이 환자들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나를 치료해주는 의사를 만나 치료 받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내 목적은 오물이 아니라 보물이요, 내가 싫어하는 음식이 아니라 육체의 건강을 지켜주는 음식이며, 주변에 있는 환자들이 아니라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교회에 가는 목적은 선생님이 만났다는 완전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있어서 보물 같으시고, 나에게 영혼의 양식을 주시며, 살아가면서 지치고 상처받은 나를 회복시켜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 장경문 장로(양천공동체)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