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함께 걸어온 길, 함께 가야 할 길
신앙에세이
함께 걸어온 길, 함께 가야 할 길
고등학교 친구 중에서 달리기를 정말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로 뛸 정도로 달리기를 정말 잘했다. 100미터를 12초대로 주파할 정도였다. 그 친구가 어느 날 귀가하던 중에 타고 있던 자전거가 돌멩이에 걸리는 바람에 개천으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오른발 새끼발가락 하나가 잘려나갔다. 그 친구는 사고 이후로 100미터를 제대로 달리지 못하게 되었다. 걸을 때조차 가끔 절뚝거리곤 했다. 그 친구를 보면서 우리 몸에서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10월 11일 서빙고 온누리교회 경찬홀에서 일본어예배부가 아주 특별한 예배를 드렸다. 일본어예배부가 창립된 지 30주년이 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예배였다. 이날 기념예배에는 이재훈 담임목사님을 비롯해서 일본어예배 초대 장로님, 당회서기 장로님 등 교회 리더십들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일본어예배 모든 지체와 이곳을 거쳐 간 믿음의 선배들을 모두 초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지난 30년 동안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어쩌면 일본어예배부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아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심부 그것도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용산에서 30년 동안 매주 예배를 드려왔기 때문이다. 일본어예배부가 예배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방증이다. 한일 양국의 껄끄러운 관계와 감정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품고 30년 동안 기도하며 끊임없이 달려올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30년 전 일본어예배부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나는 청년이었다. 4년 정도 일본어예배 청년부에서 섬기다가 외국으로 나갔고, 지구 한 바퀴 돌고나서 25년 만에 일본어예배부에 복귀했다. 일본어예배부 창립 3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그때 함께 다녔던 청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초기 일본어예배부에는 일본 선교 비전을 가진 청년들이 많았다. 그때 모인 청년들이 모두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을 품고 기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었다. ‘벧엘 청년부’라는 이름으로 모였었다.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담당 교역자도 없어서 청년부 기도모임과 예배를 드릴 때 설교는 신학생들에게 부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일본어예배부에 모이던 청년들이 눈에 띄는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배공동체에서 새끼발가락 같은 미미한 존재였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예배드렸다. 함께 일본어예배부를 섬기고, 함께 모여 일본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그 시절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기억난다. 그들 중에서 일부는 일본 비전교회를 섬기는 목회자가 되었고, 또 어떤 이는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 구원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선교사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앞으로의 사역방향이 불투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적인 신뢰를 요구하시는 것 같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해왔던 익숙한 방식을 포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섭리로 이해된다. 지금까지 달려온 관성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교만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 같다. 꿈을 향한 일본어예배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함께 걸어갈 때 하나님이 꿈꾸시는 일본 선교가 일본어예배부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 30년 함께 걸어왔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는 함께 걸어갈 것이다. 일본어예배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 김삼인 전도사(일본어예배부)
지난 10월 11일 서빙고 온누리교회 경찬홀에서 일본어예배부가 아주 특별한 예배를 드렸다. 일본어예배부가 창립된 지 30주년이 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예배였다. 이날 기념예배에는 이재훈 담임목사님을 비롯해서 일본어예배 초대 장로님, 당회서기 장로님 등 교회 리더십들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일본어예배 모든 지체와 이곳을 거쳐 간 믿음의 선배들을 모두 초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지난 30년 동안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어쩌면 일본어예배부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아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심부 그것도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용산에서 30년 동안 매주 예배를 드려왔기 때문이다. 일본어예배부가 예배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방증이다. 한일 양국의 껄끄러운 관계와 감정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품고 30년 동안 기도하며 끊임없이 달려올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30년 전 일본어예배부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나는 청년이었다. 4년 정도 일본어예배 청년부에서 섬기다가 외국으로 나갔고, 지구 한 바퀴 돌고나서 25년 만에 일본어예배부에 복귀했다. 일본어예배부 창립 3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그때 함께 다녔던 청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초기 일본어예배부에는 일본 선교 비전을 가진 청년들이 많았다. 그때 모인 청년들이 모두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을 품고 기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었다. ‘벧엘 청년부’라는 이름으로 모였었다.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담당 교역자도 없어서 청년부 기도모임과 예배를 드릴 때 설교는 신학생들에게 부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일본어예배부에 모이던 청년들이 눈에 띄는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배공동체에서 새끼발가락 같은 미미한 존재였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예배드렸다. 함께 일본어예배부를 섬기고, 함께 모여 일본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그 시절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기억난다. 그들 중에서 일부는 일본 비전교회를 섬기는 목회자가 되었고, 또 어떤 이는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 구원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선교사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앞으로의 사역방향이 불투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적인 신뢰를 요구하시는 것 같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해왔던 익숙한 방식을 포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섭리로 이해된다. 지금까지 달려온 관성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교만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 같다. 꿈을 향한 일본어예배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함께 걸어갈 때 하나님이 꿈꾸시는 일본 선교가 일본어예배부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 30년 함께 걸어왔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는 함께 걸어갈 것이다. 일본어예배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 김삼인 전도사(일본어예배부)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