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 지금 우리 학교는…

전문가 기고  
 
지금 우리 학교는…
공교육에서 하는 성교육 실태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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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지난 2월 시청 시간 Top Rank를 기록했다. 과학교사가 좀비 바이러스를 실험하다가 학생에게 감염되고 학교와 도시로 바이러스가 퍼져가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다. 
우리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학교와 선생님을 신뢰하고, 아이들에게 부모가 줄 수 없는 좋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새벽부터 흔들어 깨우고 소리쳐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학교에서 자녀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특히 수능 이외의 과목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의 자녀들은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처럼 어른들의 잘못된 신념과 행동이 만든 교육의 피해자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존귀한 그리스도의 자녀인 우리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진리와 멀어지고 인본주의와 유물론의 세계관을 따라가고 있다.
 
충격적인 청소년 성문화센터의 성교육
 
2017년, 우리 부부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그 충격적 사건으로 공교육 안에 반기독교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순원 가정에서 겪은 일이다. 
그 순원의 자녀(초등학교 저학년)가 수업시간에 남성혐오의 극단적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선생님의 교육을 받고 집에 와서 부모에게 수업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 선생님은 수업 중에 당시 열리고 있었던 퀴어축제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혐오와 차별의 표현을 가르쳤다. 그 선생님의 책상은 관련 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 선생님의 교육에 여러 학부모들이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그런데 그 교사는 학교 뒤에 숨고, 학교에서는 오히려 그 선생님을 감싸며 교육내용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항의한 학부모의 자녀들을 정죄했고, 결국 수십 명의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나는 성소수자의 인권은 소중하다고 가르치면서 힘없는 아이들의 인권은 무시하는 선생님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본인들의 주장과 신념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려는 태도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반에서 소외시키는 행동은 우리가 믿었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시 이 사건을 다루는 매스컴에서는 극단적 보수집단의 인권 교육 방해에 초점을 두고 보도했다. 우리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도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이 일이 있고 자녀들의 학교 교육 내용이 안전한지, 학교에서 필수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성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침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성교육을 받기 위해 ‘청소년 성문화센터’에 방문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이전 같으면 무심코 잘 다녀오라고 했겠지만,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나는 인터넷으로 청소년 성문화센터를 찾아보았다. 2001년부터 청소년 성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사설 기관이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시립센터를 위탁받아 교육하고 있어서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교육 내용이 내 생각과 차이가 있었다. 부모들이 말해주기 쑥스러운 자기 몸에 대한 이야기와 청소년기 성에 대하여 절제, 순결, 책임 있는 행동을 알려주는 성교육을 예상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청소년이라도 ‘성적자기결정권’에 따라 상호 간의 성적 동의가 이루어지면 성적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다양하게 성적지향에 따라 나누어진 사회적 성을 자녀들에게 ‘다름’으로 가르치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평등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혐오스러운 행동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섹슈얼리티 교육활동가’, ‘청소년 성인권 보장을 위한 상담가’들이 교육 및 상담을 하고, 북미와 유럽의 개방형 성교육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센터에서는 성적 체험 학습에서 최대한 은유적이고 절제된 표현으로 성관련 행동을 교육하지만 인형을 통한 실습, 피임기구를 직접 만져보고, 성감대를 찾아보는 실습을 하는 등 성장한 신체 대비 아직은 어린 자녀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만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진행될 법한 성교육 내용이 법 제정이 아직 되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소리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성교육 시간에는 자녀들이 교육에 집중하고 솔직한 자기 고민을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유로 학부모나 담임선생님이 일체 수업 참관을 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는 아이에게 이 센터 교육을 받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런 사실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다음 우리의 고민을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아이가 결석 처리되더라도 그 수업을 듣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당시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결석처리 대신 센터 밖 복도에서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와 함께 있어주셨다. 
 
자녀 세대가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하고, 
어떤 정치적 성향과 믿음을 갖게 될까?
 
상당수 공동체 자녀들이 이미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 성교육을 받았고, 그 내용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 교육의 목적은 동일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교에서 외부 성교육강사를 초빙해서 교육을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여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피임기구를 직접 만져보며 구체적인 사용법을 체험하고, 성교육이 방송으로 진행된 남학교에서는 강사가 “남자는 죄인이고 반성해야 한다”는 말을 해서 놀란 담임선생님이 교육 도중 방송을 꺼버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처음 우리 자녀들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너무 놀랍고 당황했는데 이미 많은 일들이 학교에서 진행 중인 것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담담해졌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학교 보건교사나 담임선생님, 교장, 교감선생님께 정중하게 성교육에 대한 학부모로서의 걱정을 말씀드렸을 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부모 입장에서 공감해 주셨다. 때로는 예정되어 있던 성교육 강사 초빙이나 센터 방문을 취소하고 다른 방법으로 성교육 계획을 바꾸거나 ‘성경적 성교육 강사’를 찾아서 성교육을 하기도 했다. 타 학교 선생님들에게까지 성교육 문제를 알려주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벌써 수 년 전 일이다. 지금은 또 다른 방법의 성교육들이 진행될 수 있겠지만, 개방형 성교육과 사회적 성을 자녀들에게 ‘정상’으로 교육하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우리는 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의 어린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런 교육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개방적 성교육의 피해는 서구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고, 이를 보완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계는 개방형 성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어린 자녀들이 성적자기감정으로 충실하게 행동했을 때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남겨줄 수 있고, 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의도적으로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만들어 내려는 몽상가들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책임질 수 없는 출산을 막기 위해 태아살인(낙태)이 일어날 수 있다. 잘못된 성교육을 배운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성희롱하는 등 교사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고, 학생들을 훈육할 수 없는 교권 실추가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예견되지만 성교육이 급진적으로 계속되는 이유는 정치적 사상 및 신념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진보교육감들이 교육의 수장이 되자마자 거의 모든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시도했다. 좋은 법령처럼 들리지만 평등법(차별금지법)처럼 그 안에 ‘성적지향’ 등의 동성애 코드가 심겨져 있고, 개방적 성 윤리관을 포함하고 있다. 마침 지난 몇 주 동안 교회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서 이 문제 조항삭제에 대한 서명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 정치권에서는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16세 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안들이 발의되었다. 앞으로 이런 교육을 받은 자녀 세대가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하고, 어떤 정치적 성향과 믿음을 갖게 될까?
교회에서 이러한 논의를 공론화하는 것을 정치적이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성도들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정치성향을 가진 성도들 사이에서 이런 논의가 교회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금기시해왔다.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우리 자녀들과 함께 겪어온 학교생활은 대학진학을 위해서 인내하고 참아내는 과정만이 아니다. 그곳은 우리 자녀들이 생활하고, 성장하고, 지식과 인격이 형성되어가는 장소다. 크리스천 부모들이 공부하는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신앙교육도 유예하고 있을 때, 학교에서의 공교육이 인본주의와 무신론으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의 경험과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 혹은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면 4월 19일과 26일 열리는 온누리세계관학교 세미나 ‘성혁명, 기초를 흔들다’에서 사실을 확인하기를 바란다. 많은 성도들이 이 세미나를 통해서 지금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와 정치 도구화되어 가는 어린 자녀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회복을 위해 교회적으로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 이상준 장로(강남D공동체)


<발문>
 
학교생활은 대학진학을 위해서 인내하고 참아내는 과정만이 아니다. 
자녀들이 생활하고 성장하고, 지식과 인격이 형성되어가는 장소다. 
지금 우리나라 공교육이 인본주의와 무신론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