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군형법상 추행죄 무죄판결의 영향에 대하여 

전문가 기고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요?
군형법상 추행죄 무죄판결의 영향에 대하여 
 
 
군형법 제92조의6은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21일 대법원에서 군대 내 항문성교 및 기타 추행죄를 형사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군형법 제92조의6의 해석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군인 간 영외에서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 항문성교, 구강성교를 한 때 항문성교 기타 추행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쉽게 말해 영외 사적 공간에서 합의 하에 한 성행위에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바로 그 이튿날에는 군형법 제92조의6의 군대 내 항문성교 및 기타 추행죄를 삭제할 것을 제안한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법의 존재 그 자체가 주는 상징적 기능이 크다. 어떤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은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무언의 인식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군형법 제92조의6에 관한 이번 대법원 판결과 개정안은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다.
이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군형법 제92조의6의 내용은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이므로 이를 삭제해 성소수자 군인을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군인의 인권을 지키려는 것이 발의 이유라고 한다. 합의하는 두 성인 간 사생활을 왜 법으로 처벌하는가? 단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눈 관계가 뭐가 문제인가?라는 주장이다.
요즘 세상에서 특히 개인의 사적인 성생활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 진리를 말하는 것은 불친절하고 편협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들이 선택한 사랑의 대상과 방법은 그것이 무엇이든 긍정해야 하고, 듣기 불편한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침묵시키거나 당황스럽게 느끼게 하는 구호들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진리는 양립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사랑과 진리는 절대로 분리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이 둘은 모두 진리와 사랑을 구현하신 동일한 근원 되신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도 없고, 하나만 선택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첨예한 사안에 대해 ‘진리’를 어떻게 ‘사랑’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
 
사랑의 정의가 무엇인가?
 
우선 ‘사랑’이란 용어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군형법 제92조의6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단지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사랑”이란 ‘성적 행위’를 의미한다. C.S. 루이스가 <네 가지 사랑>에서 말한 하나님의 자비(아가페)나 부모의 애정(스토르게), 진정한 우정(필레오)은 물론 아니며, 연인 간의 사랑(에로스)도 아니다. C.S. 루이스는 에로스에는 성적 활동 외에 다른 요소도 들어있다고 했다. 에로스 없는 성적 욕망은 그것 자체를 원하지만, 에로스는 그 연인을 원하는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미가 분명해지면 이 문제에 대한 설득력이 힘을 얻게 된다. 
탈 동성애자이자 무디신학교 교수 크리스토퍼 유안은 “성생활은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에 관한 문제이다. 성적 지향은 행동, 감정, 욕구, 열정과 같이 인간이 경험하는 어떤 것이지, 인간의 존재 그 자체를 규정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성적 지향은 대개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어떤 체험 같은 것이다. 단순히 동성에 끌린다거나 동성에 대한 욕구를 경험한다는 사실이 그러한 끌림이나 욕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군형법 제92조의6에서 처벌하는 행위, 즉 남성 간 성관계는 성적 이끌림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해 불건전한 성적 행위를 한 것을 의미한다. 이 행위는 보건적 유해성을 동반하기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신분의 사람들이 단지 좋아한다는 성적 지향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번 대법원의 판결과 군형법 개정안은 군인이 영외에서 다른 군인에 대해 은근한 압력을 통해 추행한 경우 군형법상 항문성교 기타 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없애는 효력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외압에 의해 실제 피해당한 하급 군인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가 사라진다.
더욱이 대법원 판결의 사실관계에서처럼 채팅 앱으로 만나 영외에서 군인 간 성행위를 하며 복수의 군인 파트너와 성관계를 하는 것은 사적 생활 공간이라 하더라도 불건전하고 부도덕한 행위로 인한 군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에 침해가 발생한다. 심지어 이 법은 민간인에 적용되는 법이 아니고, 계급 체계와 군율의 특수성을 존중해야 하는 분단국가의 군대 내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법이다. 
이뿐만 아니라 군형법상 항문성교 기타 추행죄는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60년 넘게 유지되어 온 판시가 있다. 이번 판결과 개정안은 이 판시를 파기하는 것으로 ‘채팅 앱을 통한 영외 항문성교’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곧 항문성교는 HIV 감염, 성병 감염, 항문 열창, 직장염을 야기한다는 의학적 사실을 교육하지도 못하게 될 수 있다. 
 
‘진리’를 ‘사랑’으로 전하는 좋은 방법 
 
보다 근원적으로 이 주제에 있어 다음과 같은 설명이 필요하다. 피조물이 번영하는 방법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 반영되어 있다. 성관계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방법으로 피조물인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성관계는 한 남성과 한 여성 간 혼인 관계 내에서만 이루어질 때 지상 명령의 완수와 인류의 번영에 가장 이롭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의 발달로 각종 성병이나 HIV를 극복할 수 있고, 낙태나 피임으로 임신의 위험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창조주보다 성관계의 목적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성관계의 목적이란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일평생 지속하는 언약적 관계인 혼인 제도 내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상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혼인 관계에 있든 아니든, 내가 원하는 상대와 즐기는 일종의 레크리에이션 활동과 같다. 이러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란 ‘성적자기결정권’에서 나온다.
인간의 존엄성을 ‘성적자기결정권’에서 찾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다고 하는 복음을 소개해 주는 것도 진리를 사랑으로 전하는 좋은 방법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거룩한 자손을 이어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혼인 관계 밖에서의 성관계는 동성이 아니라 이성 간 관계라 할지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일관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보조 생식 기술로 정자/난자 기증이나 대리모를 통해 동성 커플도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동성 혼인 관계에서의 성관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접할 수도 있다. 그때는 반드시 친부모 중 한쪽 부모를 반드시 상실하는 보조 생식 기술로 태어난 자녀가 겪는 숱한 문제에 대한 실례(케이티 파우스트 저 <아이들은 정말 괜찮을까> 참조)를 들려줘야 한다.
‘그저 모든 사랑은 똑같고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의 추상적인 관념에 대해 이 글에서 설명한 내용과 같이 구체적인 현실에 근거해 실제 인간의 번영에 무엇이 유익한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할 때 ‘진리’가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 또한 ‘사랑’으로 진리를 설명하는 좋은 방법이다.
/ 이상현 집사(강남E공동체, 숭실대 법대 교수)
 
 
<발문>
“‘그저 모든 사랑은 똑같고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관념에 대해
구체적인 현실에 근거해 실제 인간의 번영에 
무엇이 유익한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할 때 
‘진리’가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 또한 사랑으로 진리를 설명하는 좋은 방법이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