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진정한 해방의 열쇠 ‘예수 그리스도’

 

‘해방’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본 인간 그리고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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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현대인의 지친 삶을 깊이 통찰하며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냈다. 드라마 등장인물들은 살면서 무엇인가에 묶이거나 갇혀 살아가는 인간의 상태를 비추고,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과연 무엇에서 해방해야 하는지, 인간에게 해방이 있기는 한지 질문을 던졌다. ‘행복 찾아가기’ 혹은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삶에서 묶인 무엇인가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방이란 단어가 익숙하다. 하나님이 죄에 묶인 인간을 안타깝게 여겨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로부터 해방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글에서 ‘해방’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기독교 상담 관점으로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삼 남매와 구씨가 
추구하는 존재 가치 
 
이 드라마는 경기도에 사는 삼 남매 가정이 주인공이다. 삼 남매 아버지(천호진 분)와 어머니(이경성 분)는 자신의 삶에 순응해서 행복이나 해방과 무관하게 산다. 최선을 다해 먹고 일하며 묵묵히 매일을 살아간다. 마치 삶의 목적이 생존인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무감하며 화가 나 있다. 때로는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고, 자신과 같은 상태의 사람을 보면 긍휼히 여기고,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삼 남매 첫째 기정(이엘 분)은 이성(짝)을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때 지치고 불만족스러운 삶이 회복되리라 믿으며 이성을 찾아 헤맨다. 둘째 창희(이민기 분)는 자신의 경제적, 지위적 조건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여기며 지금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셋째 미정(김지원 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묶여있음을 깨닫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관심과 사랑은 조건적이지 않은 진짜 사랑 ‘추앙’을 받을 때 가능하다고 믿고 누군가를 추앙하려고 한다. 이 가정에 초대된 외지인 구씨(손석구 분)는 생존을 위해 힘을 추구하고, 자신보다 힘 있는 자에게 충성하다가 지쳐서 삶을 회피하고 무력하게 살아간다. 이들은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살아간다. 생존, 사랑, 물질, 힘 그리고 행복을 갈망하는 삶은 인간을 매우 고단하게 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며, 절망하게 한다. 그중에서 셋째 미정이가 선택한 해방을 추구하는 삶이 드라마의 중심이다.  
미정이는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평범하고, 자신감 없고, 허기지고, 지치고, 외롭고 버려진 느낌을 지닌 허수아비 같다고 여긴다. 갇힌 것 같은 느낌, 늘 불안하고 슬프고 무감한 느낌에서 해방되고 싶어한다. 누군가로부터 무조건적 사랑과 지지를 받아서 특별해지는 꿈을 꾼다.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마음속에 희망을 품는다. 자신을 갇히게 하는 삶의 멍에에서 벗어나 ‘이게 사는 거지, 이게 인생이지’라는 인간의 본질 및 존재 이유를 추구한다. 
기독교 상담학자 로렌스 크랩은 인간이 자신을 가치 있다고 믿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첫째, 중요하게(Significance) 여겨지고, 둘째,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할 때(Security)이다.  
첫째 ‘중요하게 여겨지는’, 즉 존재적 의미는 실제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만한 삶의 목적과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내 삶의 목적이 생존일 경우, 생존을 위해 일하고 돈을 벌고 그것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 속 부모와 구씨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동물적 본능으로만 살게 된다. 늘 불만족스럽고, 허무하고, 무감하다. 크랩은 심리적 욕구를 포함해서 하나님을 갈망하는 욕구까지 충족될 때 존재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인간의 심리적 욕구는 매우 다양하다. 안전하고 싶고, 소속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싶고,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싶고, 돌봄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자기로서 존재를 만족하고 싶어 한다. 
첫째 기정이는 자신의 인정과 관심의 욕구가 채워질 때의 상태를 “알 수 없이 가볍고, 차분해지고, 기분 좋고, 힘든 일을 견딜 수 있다”고 표현한다. 심리적 욕구는 인간이 사는 데 꼭 필요한 본능이다. 여기에 영적 욕구, 하나님과 교제하며 연결됨을 이어갈 때 온전한 욕구가 채워진다. 삶의 목적이 있으면서 심리적, 영적 욕구를 모두 충족할 때 인간은 존재 의미가 있다. 
존재 의미를 찾는 과정은 꼭 단계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심리적 욕구만 채우려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데 머무르려 하거나 어느 부분에 결핍이 있거나 상처가 있을 때 혹은 자신의 심리적, 영적 상태에 대한 이해와 자각이 없어서 성숙이 멈출 때 인간은 자신의 상태에 갇히게 된다. 이런 상태를 성경은 “죄로 인해 방향을 잃은, 빗나간”이라고 하고, 심리학자들은 “고착, 미성숙, 신경증에 빠진, 오류에 빠진, 학습된, 미해결된, 자기실현이 되지 않은”이라고 진단한다. 
기독교 상담자들은 과정적이고 지향적인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과정적이고 지향적인 관점은 인간의 죄 된 상태와 구원된 상태의 모순과 긴장감을 의미하고, 그 자체를 수용할 때 성장이 일어난다고 여긴다. 사도 바울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듯(딤후 4:7),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르고자 하지만, 자신의 심리적 문제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말씀을 따르기 어렵게 느낄 때가 있다. 매 순간 자신과 씨름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과정적이고, 그렇지만 하나님 말씀을 향하려고 하기에 지향적이다. 
 
진정한 추앙이자 해방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둘째,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Security)은 미정과 구씨가 존재로서 서로를 수용하고, 수용할 때 변화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미정이와 구씨는 자신을 그리고 상대를 추앙하기로 한다. 드라마 속 추앙의 의미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서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행위이다. 심리학자 코헛은 타인의 인정과 공감은 인간의 자기(Self)를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조건 없이 인정해주고 공감해주는 행위는 보통 태어나서 몇 년 동안 양육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데 예외인 경우도 있다. 아이는 태어나 몇 년 동안 양육자로부터 “너는 정말 대단해”, “너를 관심 있게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있어”라는 말과 몸짓을 통해서 ‘나를 사랑하는 양육자는 대단해. 그리고 이 대단한 양육자가 괜찮다고 하는 나는 정말 괜찮구나!’라는 전능감을 경험한다. 마음속에 자기 구조가 생겨난다. 현실을 통해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며 전능감을 수정해나간 아이는 마음속에 건강한 자신과 이상과 포부를 갖게 되고, 자신이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부재할 때 혹은 현실에서 갑작스러운 좌절을 경험할 때 ‘나는 괜찮다’라는 느낌이 없어서 나를 인정해주고 대단하다고 말해주는 대상을 계속 찾게 된다. 상대가 괜찮은 것, 사회에서 괜찮다고 하는 무엇을 추구하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지만 공허하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공허함을 채우려고 계속 무엇인가를 먹거나 술을 마신다. 혹은 사랑을 주는 대상을 찾아 헤매거나 물질을 추구한다. 그러다 삶이 죽음으로 끝나기도 한다. 
수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다”(요 4:22)고 말씀하셨다.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은 사랑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때 채워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면서 보여주신 진정한 사랑이 우리를 채워지게 한다. 우리가 그 사랑을 믿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기 구조가 만들어진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너)는 때로는 잘못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참 괜찮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너)는 사랑스럽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우리는 진정한 해방(구원),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솟아나는 샘물을 마실 수 있다. 
자신의 존재 의미는 마음속 욕구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욕구를 채우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목적을 가지고 삶의 작은 목표를 이루며 살아갈 때 갖게 된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예배할 때 마음속에 하나님을 닮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고, 나와 너를 사랑스럽게 볼 수 있게 되며, 서로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 배시은 박사(온누리상담센터 슈퍼바이저, 개신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발문>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예배할 때 
마음속에 하나님을 닮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고, 
나와 너를 사랑스럽게 볼 수 있게 되며, 
서로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작성자  정현주